그놈의 바른 자세가 뭐라고 (4)
동아리 선배들이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우리 과는 사람이 많은 과이다. 그런데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돌고 돌아 내 귀에 들어오게 되었다. 선배들이 뒤에서 내 욕을 하고 다닌다고 동기들이 얘기해줬다. 예의 없고, 싸가지없고, 선배한테 버릇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동아리 내에서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에게는 선배들이 피해자가 되고 난 가해자가 돼있는 상태였다.
소문이 퍼지고 나서 과 내에 있는 친목모임인 소모임에 나갔다가 핀잔을 들었다. 자기소개할 때, 먼저 다가와달라는 뉘앙스의 말을 선배들에게 했다는 이유였다. 내 입장에선, 선배들이 먼저 다가와준다면 친근하게 대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핀잔 준 선배 입장에선 친해지고 싶으면 선배들이 먼저 다가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보다.
사실, 친해지기 전에는 후배들이 선배들을 불편해해서 말을 걸기 힘들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선배가 먼저 말을 걸어주는 것도 괜찮은 미덕이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선배가 후배한테 먼저 말 걸고 관심 가져주면 자존심 상하는 일인 건가 싶었다. 신입생의 경우는 특히 더욱, 선배들이 먼저 다가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집주인이 새 식구를 환영해야지, 새로 온 사람이 남의 집에서 집주인을 환영하나? 내 집에 새 식구가 들어오면 집주인으로서 격하게 반기는 것. 이건 사람 접대의 기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뒤풀이 때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한 선배에게 선배들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라고 혼났다. 옆에 있던 동기들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그들은 놀래기도 했고, 긴장해하기도 했다. 모두가 나와 그 선배를 보며 당황했다.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죄송하다는 말밖에 못 했다. 그리고 급하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 이후로 소모임에 나가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어떤 말을 하든 꼬투리 잡혀서 혼날 것 같아 가만히 있었다. 말을 최대한 삼갔고, 마음은 항상 불안했다.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 불편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자연스레 소모임에 참석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소문은 계속 퍼졌고, 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몇몇은 자기들끼리 욕을 하고 다니면서 대놓고 싫어했다. 대부분은 모른 채 했다. 그래도 난 알았다. 모두가 나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타인을 조금씩 피하게 되었다.
길 지나다니면서, 수업 들으면서 선배들의 눈치를 정말 많이 봤다.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일부로 피해 다니기도 했다. 항상 떨면서 학교를 다녔다. 다들 그런 내 모습을 알게 모르게 보는지,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아 불쌍하다는 얘기가 조금씩 들려오기도 했었다.
그래도 다들 나를 피했다. 소문이 안 좋은 녀석이니, 어울리면 본인이 엮일 것 같아 겁나서 그랬을 것이다. 난 나를 멀리하는 사람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내 주변은 휑해지기 시작했다.
소문의 영향은 군대에 가기 전까지 강하게 존재했었다. 소문이 퍼지면서 우리 과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졌다. 동아리 방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손에 땀이 났고, 땅바닥을 쳐다보며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곤 했다.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길 속으로 바랐다.
대부분은 소문을 듣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테고, 일부는 나를 싫어하고, 일부는 나를 불쌍히 여겼을 것이다. 지금 와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크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이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불안함의 정도가 강했고, 매일매일 지속되었다.
그 불안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발생했다. 모든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나에게 해코지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싫은 티를 내며 행동하는 것을 정말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사람에게 심하게 상처 받았는데, 앞으로 더 상처 받을까 봐 두려웠다. 또 상처 받았다가는 회복불능 상태가 될 것만 같았다.
동아리 내에서 선배들에게 상처 받았을 때는 마음의 벽을 세웠다. 타인과 나를 분리하는 심리적 벽을 세우며 내 마음을 보호하려 했다. 그때는 그 사람들에게서만 나를 보호하면 되었기 때문에 마음의 벽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소문이 퍼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고 예상되는 수많은 타인들에 대해 내 마음을 보호해야 했다. 내가 알았거나 혹은 몰랐지만 소문 때문에 알게 된 사람들의, 악감정이 담겨있는 나에 대한 말과 태도, 행동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누가 나에게 해코지를 할지 알 수는 없었기 때문에 엄청 불안했다. 그래서 수많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수많은 마음의 벽을 세웠다. 그 마음의 벽은 너무도 많았기에, 하나의 심리적 건물이 되었다. 나는 그것을 '감정의 감옥'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 감옥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세워지고 운영된다. 타인에게 또 상처 받지는 않을까 두려워서, 더 상처 받으면 내 마음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지지 않을까 두려워서 만들어졌다. 마음의 벽은 몇몇 사람을 피하기 위해 세워진 반면, 감정의 감옥은 모든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고립시키기 위해 세워진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되고, 나도 다른 이의 공간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단지, 안심이 되는 소수의 인물만 나와 교류할 수 있다.
내가 믿지 못하는 모든 사람과 마주치기도 싫고 어울리기도 싫어서 수업도 가려 들었다. 같은 과 사람들을 전공 수업에서는 마주칠 수 있었기 때문에 조별과제가 없는 전공 수업 1~2과목에 나머지는 교양 수업을 혼자 들었다. 입대하기 전까지 이런 패턴은 계속 유지되었다.
그리고 학교 내에서 몇몇 동기들하고만 어울렸다. 나를 상대로 어떤 소문이 퍼지든 신경 쓰지 않는 소수의 동기들만 나와 어울려줬다. 정말로 고맙게 생각했고,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그 동아줄만 잡고 겨우겨우 학교 생활을 해 나가고 있을 때, 한 동기와 사이가 갑작스럽게, 심하게 나빠지게 되었다.
이 일로 인간에 대한 믿음이 부정적으로 변했고, 내 감정의 감옥은 더욱 견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