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피해자, 현재는 가해자

그놈의 바른 자세가 뭐라고 (3)

by 빨간모자

상처 받지 않기 위한 이기적인 마음

나에게 동아리를 소개해준 선배가 나를 따로 불렀다. 내가 힘들어 보여서 해줄 말이 있다고 했다. 예의를 강요하고, 똥군기를 펼쳐서라도 후배의 기를 죽이려고 하는 선배들이 왜 그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아리 선배들은 학창 시절에 타인에게 많이 데었던 사람들이었다. 괴롭힘 당하고 무시당하는 학교 일상을 살아왔던 사람들이라 후배가 선배에게 기어오르는 것에 상당히 예민하다고 했다. 사람에게 데인 상처가 다른 사람에게 던져지는 폭탄이 되었던 것이다.


다들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니, 내가 이해하고 참아보라고 했다. 왜 그런 문화가 만들어졌는지 이유를 알면 내가 더 쉽게 참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난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반대로, 일종의 반발심이 올라왔다.


사람에게 데었던 사람이, 남에게 화상을 입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더욱 실망했었다. 자신이 과거에 사람에게 데었으니, 또 데이기 싫다는 마음. 나도 그 마음을 잘 알았다. 나도 학창 시절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으니까.


더욱 동아리를 나가고 싶어졌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선배들 사이에서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본인이 상처 받았었다고 자신이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남들은 상처 받아도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 그 생각을 나도 가지게 될 것 같아 진심으로 피하고 싶었다. 선배들처럼 억울한 피해자이면서 가혹한 가해자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생전 처음 느껴봤던 차가운 온도의 언어

그래서 며칠 후, 동아리 나가는 것과 관련해서 따로 만나자고 윗 기수 팀장 선배에게 얘기했다. 직접 만나 의사를 전달하는 게 예의에 맞다고 생각했다. 예의를 그렇게 중요시하니, 예의 있게 전달하려고 했다. 학교 근처 카페에서 따로 만나 1대 1로 얘기를 나눴다. 나는 이미 마음을 굳히고 있었기에 동아리에서 나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처음에는 다시 생각해보라고 설득했다. 내가 힘들어한 거 안다고, 다들 과거에 힘들었기에 그렇게 행동하는 거라고. 앞으로 도와주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난 계속 거절했다. 수직적 관계에 신물이 나있는 상태였고, 권위적인 문화도 상당히 싫었다. 그리고 특히, 나에게 꼰대 짓 했던 그 선배가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제일 나가고 싶게 만들었던 원인이었다.


내가 계속 "저는 나가야 될 것 같다, 힘들어서 못 있겠다"는 얘기를 하자 더 이상 말이 안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설득해도 내가 마음을 돌리지 않자, 결국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순간, 선배는 나에게 딱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박차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래, 앞으로 다시는 보지 말자."


싸늘한 표정, 신경질적인 말투로 이 말을 나에게 툭 던지고 사라졌다. 살면서 그렇게 차가운 온도의 언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놀랐다. 내가 남들한테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이 되었구나 싶어서. 난 타인에게 항상 예의 있고 신중하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남들한테 미움은 안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 날, 그 생각이 처절하게 부서졌다.


그 이후로, 난 그 동아리에서 나오게 되었다. 자연스레 같이 들어갔던 동기들과도 멀어지기 시작했고, 동아리 내 선배들과는 인연이 끊겼다. 나가겠다고 말했던 당시가 선배들에게 신입 기수를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되기 2~3시간 전쯤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왔다.


기수 동기들이 내 소개를 PPT에서 빼면서 내 험담을 엄청나게 해댔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을 수 있었다. 특히 그 꼰대 선배가 제일 화를 냈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 타이밍이 그렇게 된 것도 있지만, 사실, 속으로 엄청 꼬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들 나를 미워하더니, 고생 좀 해보라고, 잘 됐다고 생각했다. 내가 했던 소심한 복수였다.


스토리가 여기서 끝났으면 그래도 참고 살만 했을 텐데, 현실은 아니었다.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과 내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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