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잃는 법적인 과정 (3)
민사소송은 생각보다 금방, 쉽게 끝났다. 아무렇지 않게 합의하고, 재빠르게 각자의 길로 가버렸다. 한 학기 넘게 진하게 유지되던 친구와 나 사이의 관계는 순식간에 끝이 나버렸다. 그간의 마음고생은 1시간도 안 되는 시간만에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끝이 안 보이는 다른 유형의 마음고생이 시작되었다. 감정의 감옥을 걸어 잠가버린 것이다.
당시, 나에겐 선택지가 두 개밖에 없었다. 상처 받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묵인하면서 인간관계를 계속 형성하고 유지하는가, 아니면 그냥 편하게 다 포기하고 혼자 지내는 걸 선택하는가. 둘 중 직감적으로 후자가 편해 보였다. 인간관계가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느껴졌고, 오래 묵은 불만도 폭발한 상황이었다.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그래서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만들어진 감정의 감옥 속에 나를 가두고, 사람과 어울리기를 아예 포기한 것이다.
사건번호 ~~, 원고 OOO 피고 OOO, 자리에 앉아주세요.
드디어 내 차례였다. 판사가 정면으로 보이는 테이블로 향했다. "피고"라는 표찰이 놓여 있는 자리의 의자 앞에 섰다. 푹신한 검은색 가죽 의자에 살포시 앉았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죄를 지어서 앉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았다. "피고"라는 단어의 힘이었다. 수많은 시선들이 나를 향했다. 괜히 고개를 푹 숙이며 의자에 앉았다. 참 편한 의자였는데도, 뼛속까지 불편했다.
재판이 시작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앉고 나서, 판사는 다른 말을 꺼냈다.
원고와 피고, 조정 절차 진행하세요.
그러자,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나타나 나와 친구에게 다가오며 따라오라고 안내했다. 법정 밖으로 나오고, 계단을 내려가 사람이 없는 조용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회의실처럼 생겼었다. 마치,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서 남녀 두 명이 나란히 앉아있고, 옆쪽에 사람들이 앉아 있으면서, 맞은편에서 배우 신구가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고 말할 것 같은 회의실이었다. 드라마에 나온 그 공간은 이혼조정을 진행하는 공간인데, 내가 들어간 곳도 이혼조정은 아니지만, "조정"을 진행하는 공간이었다.
"조정"이란 정식 재판을 진행하기 전, 당사자 간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진행하는 법적 절차이다. 원만한 화해를 이끌어내고,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를 안내했던 그 할아버지는 조정 절차를 진행하는 "조정인"이었다. 쉽게 말하면, 서로 화해시키고 합의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사랑과 전쟁'에서의 부부가 앉는 자리처럼 정면을 바라보는 두 자리가 나란히 있었다. 그 자리에 나와 친구가 앉았다. 조정인은 맞은편 바로 앞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조정인은 본인 소개부터 했다. 자신은 이름과 나이가 어떻게 되고, 어디에서 직장생활을 했었으며, 현재는 법원에서 조정인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원고가 누구고 피고가 누구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확인부터 했다. 내가 피고인 걸 알고 나서는 나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내 왼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았다.
조정인이 무슨 일로 법원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친구들이 이런 곳에 벌써 오면 안 된다고 우리에게 얘기했다. 잘잘못을 가리지 않는 절차답게 누가 잘못했고, 누가 피해자인지에 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대신 법원에는 절대로 오면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더군다나 친구끼리 법원에 와서 싸우는 것은 더더욱 안된다고 말했다. 사소한 일로 법원을 왔다 갔다 하는 건 안 좋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원고가 달라고 하는 돈을 그냥 다 줘버리고 화해하라고 나를 설득했다. 금액을 보고 큰 금액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내 손을 꼭 잡고 간절한 눈빛으로 친구가 달라는 대로 주고 빠르게 소송을 끝내라고 말했다. 누구 책임인지 따지는 건 복잡하고 오래 걸리니까, 그냥 돈 줘버리고 빨리 끝내라는 말처럼 들렸다.
처음부터 난 별말 없이 가만히 듣기만 했다.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이런 일로 왜 여기 와 있나 싶었다. 계속해서 원고가 원하는 금액을 주는 걸로 합의하라고 조정인이 나를 설득하자, 열 받은 표정으로 한마디를 꺼냈다.
제가 전부 책임질 필요가 없는데 이 금액을 그냥 다 줘야 해요? 그러기엔 금액이 너무 커요!
말도 없이 그냥 넘어가면 달라는 대로 다 줘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 일방적으로 원고 편만 드는 조정인이 조금 밉기도 했다. 하지만, 빠르게 화해하라는 의미로 느껴졌다. 빨리 소송을 끝내버리고 싶었다. 그 답답한 곳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빨리 그 친구의 눈 앞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금액이 크다고 하는 나에게 조정인은 얼마를 주는 게 좋겠냐고 되물었다. 내가 바로 답을 안 하자, 조정인은 금액을 제시했다. 소송금액의 3분의 1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그 친구가 자전거를 도난당한 직후에 내가 친구에게 주려고 생각했던 금액보다 다소 높은 금액이었지만, 빨리 끝내고 법원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승낙했다. 조정인은 바로 합의서를 꺼냈다.
합의서엔 원고와 피고에 대한 정보, 합의한 금액과 약속 기한, 각자의 서명을 적게 돼있었다. 모든 내용을 적고, 마지막에 각자 서명을 하고, 조정인은 합의서를 챙겼다. 약속된 날짜까지 약정 금액을 주면 된다고 알려줬다. 그리고는 친구끼리 서로 화해하고 앞으로 친하게 지내라는 덕담을 남겼다. 그렇게 조정 절차는 의외로 빠르게 끝이 났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조정실에서 나와 복도를 걸어갔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는데, 애써 그걸 외면하려는 건지 마음은 멍해졌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걸어가다 보니 법원 출입문 앞에 다다랐다. 그러자,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크게 웃는 것이었다. 도망가듯이 빠르게 내 앞으로 지나가면서 그 친구는 "하하하" 하고 크게 비웃었다. 그리고는 쾌활한 목소리로 놀리듯이, 주는 돈 잘 쓰겠다고 말하며 사라졌다. 그렇게 민사소송은 종료되었다.
출입문 앞에서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친구는 순식간에 내 앞에서 사라졌다. 분노가 끓어오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욱 강했던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왜 내가 이런 말과 비웃음을 들어야 하는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는 근본적인 의문이 이어졌다.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행동하고 사라졌는가가 궁금해졌다.
나에게 했던 그 '비웃음'과 그 '말'은 사람의 숨겨진 본능을 보는 것 같았다. 타인과의 승부에서 이겼을 때 느끼는 짜릿함과 해방감이 행동으로 표출된 것 같았다. 이겼다는 생각에 상대방을 자신보다 하찮은 존재라고 여겨서 무시하고 조롱하고 싶어 하는 본성을 내포하고 있는 듯했다. 소름이 돋았다. 적어도 한때 친했던 친구와의 소송에 대해 진지하게, 엄숙하게 생각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상식 밖이었다.
법원의 출입문 앞에 서서 멍하게 있던 그 순간이, 그때는 몰랐지만,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내재돼있던 불만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사람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또 집단으로 미움을 받거나, 친구에게 상처를 받을 것 같아 두려웠다. 나를 좋아해 주고, 챙겨주고, 배려해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가족 외에는 없다고 느껴졌다. 타인과 함께 어울려봤자, 내가 손해보고 상처 받는 관계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가 편해졌다. 더 이상 사람을 좋아할 이유가 없어졌다.
한순간의 감정으로 시각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가지고 있긴 했었다. 학창 시절, 새로운 학년이 돼서 새로 친구를 사귀어야 할 때가 되면 늘 내가 먼저 다가갔다. 소심한 성격 때문에 친구 사귀기를 원래 힘들어했다. 하지만,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먼저 말을 걸고, 장난을 치면서 친해지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했다. 그래야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었다. 부적응자가 되기 싫어서,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난 항상 먼저 다가가고, 좋아해 주고, 맞춰줬다.
반면에, 나에게 맞춰주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진심으로 좋아해 주고, 배려해주는 친구가 필요했지만, 내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 사랑받고 싶어서, 외로운 것이 싫어서 다른 사람에게 늘 잘해줬다. 매일 누군가를 갈망했다. 혼자라는 외로움을 잊고 싶었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을 떨쳐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나 자신을 타인에게 항상 낮추는 사람이었다. 서로가 좋아하고 배려하는 건전한 인간관계는 나에게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였다. 그런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항상 부러워했다.
난 타인을 좋아해 주고 맞춰주는데, 왜 나에게 그렇게 해주는 사람은 없는지가 불만이었다. 그 불만은 계속 누적되어왔고, 결국 그 날 터져버렸다. '더 이상은 남을 좋아하지 않겠다', '맞춰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다. 상처 받은 영혼을 감정의 감옥 속에 넣어버렸다. 누군가가 꺼내 주지 않는 한, 나올 생각은 없었다.
이 일 때문에 함께 어울리던 친구 무리가 와해되었다. 나와 소송을 건 친구와의 관계가 나빠지자, 다른 친구들과도 관계가 어색해졌다. 소송을 건 친구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고, 난 친구들과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서로서로 관계가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더 이상 함께 모여 어울리지 않았다.
학교는 늘 혼자 다녔다.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다가가지 않았다. 어차피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거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사람을 피해 다녔다. 본격적인 고립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끝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