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이 두려워졌다

감정의 감옥이 세워진 후 (2)

by 빨간모자

알바도 지원 못하는데 나중에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까 싶었다

나는 카페, 편의점 등의 대학생들이 많이 하는 알바를 최근까지 해본 적이 없었다. 감정의 감옥을 세워 타인과 단절하며 살기 시작한 때가 대학생 신입생 때였다. 대학생들이 알바를 막 시작할 즈음, 나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멀리하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 밑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기가 두려웠다. 어떤 일이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혼나더라도 참을 수 있다는 자존감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보잘것없고, 만만한 사람이라 무시당할 것이라 생각해서 누군가에게 나를 내세우기가 정말 어려웠다. 알바를 한다는 건 나에게 두려운 일이었다.


타인과 단절하며 사는 삶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돈이 절약된다는 것이었다. 밖에 나가서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으니 돈 쓸 일이 적었다. 문화생활은 물론이고, 옷을 살 일도 없었다. 누군가와 밥을 밖에서 같이 먹을 일도 거의 없었다. 집-학교만 오갔기에 최소한의 필수적인 비용만 지출하게 되었다. 그래서 또래에 비해 적은 용돈을 받으며 살아갔다. 집이 부자는 아니지만, 가난한 것도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없었다. 학교는 본가에서 통학하며 다녔다. 등록금은 성적장학금을 받아서 따로 마련할 필요는 없었고, 성적이 높다고 학교에서 소정의 추가 장학금도 줬었다. 용돈 같은 돈이었는데, 그 돈이 있어서 한 학기는 여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돈이 필요한 일이 딱히 없었고, 수입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알바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적었다.


그래도 돈을 벌고 싶다는 욕구는 있었다.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돈을 벌고 싶어 한다. 나도 그랬다. 단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돈을 벌고 싶다는 욕구보다 더 강했을 뿐이었다. 사람을 피해 혼자 있고 싶다는 감정, 사람에게 상처 받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훨씬 강했다. 그래서 선뜻 알바 지원을 하질 못했었다.



마음의 상처가 나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이상하게 간단한 이력서를 작성하는 것부터 힘들었다. 나 같은 사람이 내세울 게 뭐가 있겠냐는 나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봐야 했지만, 지나치게 주관적이었다. 두려움, 불안이라는 감정이 이유 없이 나를 방해했다. 한 글자 한 글자 타자를 치는데 손가락이 너무 무거웠다. 문장은 읽히지 않았고, 어떤 내용을 쓸지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못하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쓰고 지우고를 수십 번 반복했다. 식은땀이 나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사회에 발을 들이기에는 아직 적당한 때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강한 의지로 이력서는 어느 정도 겨우겨우 작성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알바 앱에서 차마 '지원'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정말 못하겠다'라고 한숨을 쉬곤 했다. 지원 버튼을 누르고 나서 벌어질 일들이 두려웠다. 알바를 채용하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면접을 보는 것. 만약 뽑히면 해당 사업장에 가서 일을 하는 것. 상상을 하니,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강하게 다가왔다. 통화를 하고 면접을 볼 때 상대방이 무례하게 행동할까 봐, 일을 할 때의 많은 꾸짖음 또는 손님의 언행 때문에 상처 받거나, 혹여나 임금 체불 같은 불상사를 겪을까 봐 불안했다. 비이성적인 과도한 걱정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 단지 그렇게 감정이 느껴질 뿐이었다.


처음에는 소심해서 그런가 보다 싶었다. 하지만 알바를 열심히 하고 있던 친한 친구를 보고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소심하고, 낯 가리고, 사람 사귀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점에서 나와 닮은 친구였다. 그 친구는 주변에 친구가 적었고, 연애도 못하고 있었고, 사회성이 좋아서 활발한 사람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알바는 꾸준히 했었다. 대학을 다니며 음식점과 유통매장에서 서비스직 알바를 했었다. 사람 상대하기 참 어렵다고 가끔 말하곤 했지만, 곧잘 사람 상대를 잘하고 있었다. 휴학하고 나서는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음향 관련 일을 돕는 알바를 꽤 오랫동안 했었다. 성격과는 다르게,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해내고 있었다. 그 친구를 보니, 내가 성격 때문에 알바를 못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비슷한 성격인 친구도 문제없이 도전하는데, 내가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불안해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성격이 아닌, 다른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에 겪은 사건들이 내 감정에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알바 지원을 하려고 할 때마다 여러 생각들이 겹치곤 했었다. 나에게 무례하게 행동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가 만만한 사람이어서 공개적인 장소에서 선배에게 망신당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처럼 또, 누군가가 나에게 무례하게 대할 것 같아 두려웠다. 나에게 상처를 줬던 타인의 몇몇 언행들이 떠올랐다. 내가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어서 '앞으로 다시는 보지 말자'는 말을 들었던 것이라 생각했다. 마음이 약해서 누구나 참을 수 있는 말인데도 상처를 받은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과 잘 못 어울리고, 일을 잘 못해서 말과 행동으로 또 상처 받을 것 같아 두려웠다. 내가 겪었던 흔치 않지만 타격이 큰일이 떠올랐다. 내가 바보 같은 사람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지 않는 소송을 당했었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알바와 관련한 불상사도 내게 생길 것만 같았다.


내가 겪은 모든 안 좋은 일들이 다 내 탓이라 생각했다. '내 탓이오'는 낯선 이와 전화 통화도 못하게, 얼굴을 보며 대화도 못하게, 어떠한 노동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감정의 감옥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상처 받을 일은 피할수록 좋다

이 일로 마음의 상처가 파급력이 강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비수가 되어 꽂히는 말들, 무시하는 듯한 태도와 행동, 감당하기에 힘든 심각한 사건들을 겪으면 누구나 큰 변화를 겪을 수 있다. 자존심이 공격당하면 감정이 상한다. 이것이 만약 강하다면 마음의 상처가 된다. 마음의 상처는 다시 나쁜 감정을 만들어낸다. 나쁜 감정은 나쁜 감정을 계속해서 이끌어낸다. 감정의 악순환이다. 감정은 마치 파도와 같다. 점점 커지는데, 방향을 바꾸기는 어렵다.


'역지사지를 통해 상대방을 배려합시다', '타인을 존중하는 언행을 사용합시다' 등의 교훈을 제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난 '상처 받을 일은 최대한 피합시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마음의 상처는 정말 오래간다. 경우에 따라 평생 가기도 한다. 상처 받으며 사는 게 인생이라 하고, 상처 받으며 깨달음을 얻어가는 것이라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없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마음고생 좀 해봐야 정신 차린다'라고 하지만, 최대한 진심을 다해 말리고 싶다. 마음고생의 흔적은 흉터처럼 선명하게 몸과 마음에 남는다. 비슷한 상황이 되면 아픈 기억이 되살아난다. 일상생활에서 나쁜 감정을 툭하면 불러일으킨다. 이겨내는 과정은 길고, 험하다. 끊임없는 열정과 고뇌가 필요하다. 앞으로, 과거의 상처를 덮어두고 예전보다 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싶다. 마음고생과 행복은 비례관계가 아니다.


이왕 사는 인생, 상처 받지 않고 살기를.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될 수도 있는 불상사를 최대한 피하면서 살기를 바란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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