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감옥이 세워진 후 (1)
감정의 감옥에 내 자아를 가둬 놓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타인과 무언가를 함께 해야 할 때였다. 대학에 다니면서 조별 프로젝트가 참 힘들었다. 대학생이면 누구나 하게 된다. 조별 프로젝트를 한 번도 안 하는 학기는 위산이 역류할 일이 없는 학기. 근데, 참 피하기 힘들다. 협업능력을 강조하는 요즘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교수님들이 애용하신다. 학생 입장에선, 만나기 싫고 함께 하기 싫은 사람들끼리 어쩔 수 없이 협업해야 하는 공부이다.
물론, 현대인에게 협업능력은 필요하다. 그래서 조별 프로젝트는 대학생에게 중요하다. 모두가 알고는 있다. 나도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학생들과는 달리, 나는 타인과 어울리는 것을 더욱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조가 짜인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혔다.
감정의 감옥에 나를 가두기 시작했을 때부터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 두렵고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강의실에 들어가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기 마련이고, 그래서 고개부터 푹 숙였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그랬다. 특히 전공 수업이면 더욱 신경 쓰였다. 선배들이 소문이 안 좋았던 나를 알아볼까 봐, 나에 대해 수군댈까 봐 그랬다.
"쟤가 선배들 있는 데서 건방지게 앉아있던 애야?"
"동아리에서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단칼에 싫다고 했대. 신입기수들이 선배들한테 인사하는 자리가 몇 시간 안 남았는데 동아리에서 나가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
"선배들 하는 말 곧이곧대로 안 들을 때부터 알아봤다"
이런 얘기를 지나가면서 실제로 들은 것은 아니지만, 마치 뒤에서 할 것만 같아 불안했다. 실제로 내 얘기를 하는지 안 하는지에 상관없이, 왠지 내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괜히 사람 옆으로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서 고개를 떨궜다. 누군가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뒷목이 지릿지릿. 아는 얼굴이라도 보면 속으로 화들짝 놀라고, 눈을 밑으로 깔았다. 날 발견하지 못했으면 했다.
이런 내가 조별 프로젝트를 한다는 건 높은 산을 넘는 것과 같았다. 미리, 조별 프로젝트 없는 교양 수업으로 시간표를 채울 만큼 채웠는데도 전공 수업을 2과목은 들어야 했다. 그중 1과목이 문제였다. 수업 중 짧은 개인 발표를 해야 추가 점수를 받을 수 있었고, 조별 프로젝트 발표를 해야 높은 점수가 보장되었다. 아, 이 수업은 글렀구나.
난 첫 학기부터 학점 관리가 잘 되었었다. 학점이 생각보다 잘 나와서 조금 욕심도 생겼었다. 강의를 들으며 눈치로 깨달은 점이 하나 있었다. 조별 프로젝트를 잘해야 점수가 잘 나온다는 것. 조장을 하든, 수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하든, 교수님께 눈도장을 찍어야 유리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근데 가슴은 쿵쾅쿵쾅. 꿈도 꾸지 말란다.
문제의 그 강의를 듣다가, 교수님이 조별 프로젝트 발표를 할 3개 조를 뽑는다고 말씀하셨다. 조를 짜서, 수업 끝나고 알려달라고 했다.
'아, 저 안에 들어야 A 이상을 맞을 수 있다. 근데 누구랑 하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혼자 듣는 강의이면서, 선배들과는 두려워서 차마, 같은 조를 할 수 없었다. 내 소문에 대해 알고 있을까 봐 그랬다. 주변을 둘러봤다. 어떤 남자 선배는 옆자리에 앉아있는 후배 2명에게 웃으며 같이 하겠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뒤에서는 서로 친구인 2명이 서로 친구인 또 다른 3명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앞쪽의 여학생은 돌아다니며 혼자 수강하는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각각 물어봤다.
'저 사람들은 사회성이 참 좋구나. 사람에 데인 적이 없었나 보다.'
난 아무에게도 못 물어봤다. 그냥 멍하니 서서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자신감 있게 물어보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물어보기가 참 창피했다. 혼자 수업을 듣는 것이 창피했고,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물어보는 내 모습이 상상돼서 창피했다. 혹시 소문 때문에 나를 알아볼까 봐 두려웠다. 발바닥이 반만 바닥에서 떼어졌다. 단 한 걸음도 다가가지 못했다. 두려움이 등 전체를 휘감았다. 주저하면 이미 늦었다는 말이 있듯이, 3개 조가 금방 만들어졌다.
조별 프로젝트 발표가 끝나면, 발표를 들었던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거나 관련된 질문을 하게 했다.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손을 번쩍 들고 자신 있게 말해야 했다. 잘난 학생들의 발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또랑또랑한 목소리, 반짝이는 눈빛. 당당한 태도.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 있나 궁금했다. 주의집중을 어떻게 본인에게만 하는지 신기했다. 나라면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였을 텐데, 나에 대한 타인의 생각을 상상하느라 내 생각에는 집중하지 못했을 텐데. 생각만 해도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점수가 걸려있는데도 난 하지 못했다.
욕심보다 두려움과 창피함이 더 강했다. 감정의 감옥에 있는 나 자신이 창피했다. 앞으로도 혼자서만 지낼까 봐 두려웠다. 난 두려움과 창피함의 노예였다. 두려움이 시키는 대로, 미래를 기대하지 않고 걱정하기만 했다. 창피함이 시키는 대로, 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지 않고 비하하기만 했다. 발목에 족쇄가 채워져 있는 감정의 노예였다. 마음의 상처로 만들어진 그 족쇄 때문에 아무에게도 조별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고 말을 못 했나 보다.
결국, 그 수업 점수는 그 학기에 수강했던 강의 중에 가장 낮았다. 그 수업은 발가락에 박힌 가시 같았다. 티 나지 않게 계속해서 앞으로도 학점 평균을 깎아먹을 것이다. 티 나지 않게 내 기분을 나쁘게 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더 기분 나쁜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은근히 기분 나빴던 점수는 내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먹고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신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문제를 고쳐야겠다는 문제의식도 조금이나마 생겼다.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혼자 숨어있는 것이 창피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자신 있게 말을 못 거는 것이 창피하다고 느꼈다. 앞으로도 혼자서만 지낼 것 같은 내 미래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감옥에서 나오려고 노력하지 않는 나 자신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느꼈다.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두려움과 창피함은 또 다른 두려움과 창피함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감정의 전환이 아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길. 그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모든 감정에 앞면만 있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