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감옥이 세워진 후 (3)
감정의 감옥에 나를 가두게 된 후, 한 학기를 보내고 입대해 군생활을 하고 다시 학교에 다녔다. 약 4년의 기간 동안 나는 최대한 타인을 피한다고 피했지만, 어쩌다 보니 여러 명의 사람들을 마주치게 됐었다. 군생활과 학교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었던 사람들이었다. 사람과 부딪히며 살다 보면 우연히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친구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겐 그러한 새로운 사람이 생기지 않았다.
내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사람은 각자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듯이, 나를 관심 있게 바라보고 좋아해 주는 사람은 분명 있었다. 마음으로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그 감정에 내 마음 또한 반응했지만, 당시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호감을 가진 사람끼리 더 깊은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친해져야 한다. 친해지기 위해서는 관심을 가지는 것을 넘어, 계속 다가가야 한다. 자주 만나고 어울려야 한다. 내가 새로운 사람을 사귈 수 없었던 이유였다.
입대할 나이가 되었을 때 감정의 감옥에 나를 가뒀었다. 휴학할 수가 없어, 다니던 학기를 어떻게든 일단 다녔다. 그리고는 몇 달 뒤 바로 입대해버렸다. 좋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계급이 나눠진 채로 수많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붙어 지내야 했다. 전역 후에는 바로 복학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조별과제를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여러 사람을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짧게 스쳐 지나간 사람이 있는 반면, 꽤 오래, 그리고 친근하게 지나간 사람들도 있었다.
나와 마주쳤던 여러 사람들 중에서 다른 이들보다 특히 더 나에게 먼저 다가오고, 친근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장난도 잘 치고, 대화도 부드럽게 잘 통했다.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곧잘 나에게 전달되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내가 자신과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참 고마웠다. 나도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좋았고, 더 정이 갔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마음속에 품었었다. 상대방의 관심과 호감에 나도 알맞게 응하려고 했었다.
먼저 다가오는 사람에게 다가갈 줄 몰랐다.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확신이 서질 않아서 불안했다. 상대방이 내게 말을 걸어주고, 내 옆에 와주는 것은 기분이 좋았다. 반대로, 내가 말을 걸어주고 옆에 있어주는 것은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색해서 주저했고, 제자리에서만 늘 맴돌았다. 상대방은 내가 본인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본인만 먼저 다가간다고 생각하니, 계속해서 다가가긴 싫었을 것이다. 난 자신을 매력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한 겁쟁이였다.
호감을 표현할 줄도 몰랐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말하고, 장난도 치면서 편안한 관계를 만드는 법을 까먹어버렸다. 상대방과의 관계에 관해 의심이 생기니,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과의 대화도 불안해졌다. 상대방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어도, 티가 나지 않았다. 그저 그런 관계의 사람과 하는 대화와 서로 호감이 있는 관계의 사람과 하는 대화가 똑같았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구나'라고 나의 말과 행동에서 느낄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상대방을 그저 그런 관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나는 말하고 행동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오해할 만했었다. 나에게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도 난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감정의 감옥에서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관해 불안해하지 않기 때문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적극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적극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편파적인 생각이었다. 지극히 내 입장에서만 바라본 인간관이었다.
인간관계에 적극적인 사람이 있는 반면, 소극적인 사람도 있다. 헌신적으로 관심과 호감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상대방의 반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실은 자신의 관점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생각보다 세상에 인간관계에서 적극적인 사람이 많을 수도 있고, 소극적인 사람이 많을 수도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넓은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감정의 감옥에 갇혀있던 나는 조그만 쇠창살로 세상을 바라보듯이, 좁은 시각으로 사람들을 바라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오고, 호감을 표현해주기만을 바랬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통하는 줄 알았다. 말하든 말하지 않든 서로의 마음은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동기화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표현해야 한다는 조건이 존재한다. 나는 이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물론, 나에게 호감을 표현하던 사람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관심을 주고 호감을 표현해도, 내가 그만큼 관심을 주고 호감을 표현하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본인들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고 모두 떠나갔다. 서로 호감만 가지고, 깊은 관계가 되기 전에 끝나버린 것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 알았다. 그 당시에 참 안타까운 시간을 보냈었고, 그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 기회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