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용기를 내야 하는가?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정 (2)

by 빨간모자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생애 첫 봉사활동 수행하기

4학년 1학기 직전 겨울방학, 이수학점이 생각보다 너무 적었다. 이대로라면 4학년 막 학기에 강의를 많이 들어야 했다. 학교 공부 때문에 취업준비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강의를 안 듣고 학점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다. 내가 재학 중인 대학에는 봉사활동을 일정 시간 이상 수행하면 학점을 주는 제도가 있다. 봉사활동은 학점 취득과 함께, 취업 때 스펙으로도 쓰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시도하기가 너무 망설여졌다. 봉사활동도 사회활동의 일종이고, 사람과 마주쳐야 하는 일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스킬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주저했다. 알바 지원을 망설였던 것처럼 많이 흔들렸다.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래도 해야 되는 의무처럼 느껴졌다. 당시에는 어떻게든 적시에 취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했다. 그래서 막 학기에는 취업준비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만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 강박관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알바야, 돈 쓸 일이 별로 없어서 필요성이 좀 떨어진다고 해도, 봉사활동은 학점 때문에라도 필요하다고 나 자신을 설득했었다. 두려움과 강박 사이를 수천번은 오고 간 것 같았다.


공공 미술관에서 모집하는 봉사활동을 발견했었다. 미술전시 관람을 가끔 즐겨서 그런지 나에게 미술관은 친숙한 공간이다.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과 '하기 싫다'는 두려움이 대립했다. 여러 봉사활동 중 가장 나에게 적합했다. 할지 말지만 결정하면 됐었다. 신청 버튼을 누를까 말까 여러 번 고민을 했다.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얽혔다. 감정의 감옥에 있는 내 자아는 뭐라도 해야 한다고 울부짖었다. 맞는 말이었다. 취업을 위해서라도, 정상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라도, 난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눌러버렸다. '될 대로 돼라',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못해서 욕먹으면 다음번엔 안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도전했다. "에라 모르겠다"라고 말하며 용기를 겨우 냈다.



삼엄한 보물창고 안에서 울리는 마음의 소리 '선생님, 그거 하지 마세요'

떨리는 마음으로 미술관 근처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개관한 지 3달도 안된 공공 미술관이었고, 규모가 상당히 컸다. 폐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만들어진 미술관이었다. 예전에 봤을 때는 허름한 건물이었는데, 내·외관이 깔끔해져서 놀랬었다. 입구까지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주차장은 공사 중이어서, 옆쪽에 돌을 깔아놓은 임시 주차장이 있었다. 그 임시 주차장을 가로질러 가다 보면 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는데, 1층의 모습이 특이했다. 미술관 1층은 통유리로 되어있어서 내부가 훤히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그 통유리는 상당히 두꺼운 강화유리였다. 유리벽 앞으로는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통로가 있었고, 그 앞에는 튼튼해 보이는 금속 셔터가 올려져 있었다. 가게 셔터문과는 차원이 달랐다. 관람시간이 끝나면, 바깥에서 침입하지 못하도록 내리는 것 같았다. 금속 셔터와 강화유리라니... 미술관이 아니라 무슨 보물창고처럼 보였다.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생각보다 삭막한 모양새였다. 미술관이라고 하기에는 보안이 너무 철저해 보였다. 헬스 트레이너인가 싶을 정도로 덩치가 좋은, 양복을 입은 남자 직원들이 입구 옆에 서 있었다. 낯설고, 어색하고, 두려웠었다. 잘못 왔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안내데스크에는 상당히 친절해 보이는 여성 직원분이 한 분 계셨었다.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말을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용기 내서 말을 걸었다.


나 : 저기.. 자원봉사하러 왔는데요...
직원 : 잠시만요~ (어떤 명단을 보며) OOO씨 맞으신가요?
나 : 네 맞습니다
직원 : 아직 봉사 시작 시간이 안 되어서요. 잠시만 저쪽에 앉아계시겠어요?
나 : 네...


이 대화가 나에겐 얼마나 긴장되고 무겁게 느껴졌는지... 미친 듯이 뛰어대는 심장을 정수기 냉수로 다스렸다. 화장실에 갔다 오고 몇 분이 지났을까, 다리를 달달달 떨면서 앉아있던 찰나에, 그 직원은 나를 불렀다.


직원 : 오늘 혼자 3층 전시실에서 봉사활동을 하실 거예요. 일단 봉사자 명찰을 거시고.. 몇 가지 안내사항과 주의사항 알려드리겠습니다...(이것저것 설명설명)


미술관에선 전시지킴이 봉사자를 모집했었다. 전시지킴이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봉사자로서 어떤 점들을 주의해야 하는지 등의 설명을 듣고, 곧장 3층으로 올라갔다. 전시실 입구를 보고 놀랐다. 문이 강철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는데, 영화에서나 보던 은행 금고 같았다. 상당히 두꺼운 두께, 동그란 손잡이... 휘둥그레 한 표정으로 중얼중얼 댔다.


"여기는 문이랑 창문이 왜 죄다 두꺼워?"


창고처럼 생긴 공간에 여러 회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각 작품들은 역시나, 두꺼운 강화유리와 튼튼해 보이는 금속 액자 안에 있었다. 여기는 강화유리와 금속을 선호하는 듯했다.


내가 맞게 들어가는 건가 긴가민가한 채로 이리저리 공간을 둘러봤다.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관람객도 아무도 없었다. 공기청정기에서 바람 나오는 소리만 조용히 흐르면서, 작품들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당황했다. 설마 직원 없이 자원봉사자만 세워놓는 건가 싶었다. 처음 해보는 내가 혼자서 이 넓은 공간을 담당해야 한다니... 불안감이 올라왔다.


일단 관람객들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내 역할은 작품과 관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행동을 관람객들이 하지 못하게 막고, 미술관에 관한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해주는 것이었다. 몇 가지 예로 들자면, 작품을 만지려고 하면 "눈으로만 봐주세요", "한 발자국 떨어져서 관람해주세요" 등의 정중한 멘트를 날려서 제지하는 것. "물품 보관소는 어디 있어요?"라는 질문에 "1층 안내데스크 주변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 등등.


불길하게 예상한 대로 넓은 공간에서 나 혼자 있게 되었다.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직원을 완전히 채용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중에 몇 번 더 해보고 알았지만, 내가 혼자 관리했던 그 공간은 원래 2명의 직원과 3~4명의 자원봉사자가 배치되는 곳이었다. 첫 경험을 참 고달프게 하겠구나 싶었다.


시간이 몇 분 흐르고, 관람객이 조금씩 조금씩 들어왔다. 별문제 없이 조용히 관람한다면 내가 입을 열 일이 없다. 단지 근처에 서서 지켜보기만 해도 되니까. 하지만 세상에 조용한 사람만 있지는 않은 법. 제지해야 하는 분들이 몇몇 생기기 시작했다.


어르신 한 분은 셀카봉으로 셀카를 찍으셨었다. 휘두르다가 작품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셀카봉은 전시실 안으로 반입이 불가능하다. 이리저리 휙휙 작품 앞을 빠르게 걸어 다니시며 촬영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긴장했다. '아, 저거 못하게 말려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못 본 채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자원봉사자로서 할 일을 해야 했다.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일단 다가갔다. 머쓱하고 부끄러웠기에 살짝 미소 지으며 말을 했다.


나 : 선생님, 셀카봉 들고 들어오시면 안 되십니다.
어르신 : 그럼 어떡하라고?;;


어르신은 갑자기 당황하였고, 빠르게 바깥으로 나가셨다. 당황해서 나가신 건가 싶었고,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기에 셀카봉을 보관함에 놓으러 가신 줄 알았다. 조금 있다가 옆 공간으로 건너가 보자 그 어르신이 계셨었다. 작품들 사이 가운데에서 역시나 사진을 찰칵찰칵 찍으시며 촬영에 열중하셨다. 나는 또 당황했다. 이마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또 안된다고 말해야 하나. 아, 말 못 하겠는데...'


내가 주저하는 사이, 어르신은 볼일을 다 보셨는지(?) 전시실 바깥으로 나가셨다. 지나가던 직원이 어르신과 마주쳤고, 셀카봉을 물품 보관함에 맡겨두고 오시라고 쫓아가며 설득했다. 난 한시름 놓았고, 긴장을 놓을 수 있었다. 잠시 주저했던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다시 내 원래의 본분으로 돌아갔다. 관람객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떤 어르신들은 전시관 안에서 시끄럽게 통화를 하시기도 했다. 쩌렁쩌렁 울리는 벨소리와 목소리에 나는 또 당황했다. 주의를 줘야 했다. 이번엔 손에 땀이 나면서 긴장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다리를 후들거리며 다가갔다. 어르신들의 통화가 너무 길어진다 싶을 때쯤, '에라 모르겠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나는 용기를 냈다.


"선생님, 통화는 전시관 밖에서 해주세요"


의외로 그 어르신들은 잘 따라주셨다. 내가 주의를 주자, 목소리를 조금 낮추시고 순순히 바깥으로 나가셨다. 나는 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 가지 일을 또 치러냈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실내공기는 시원하게 유지되고 있었는데, 온몸에 땀이 안 난 곳이 없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관람객들이 오고 갔다. 아빠와 딸로 보이는 어느 관람객들은 액자에 보관되어 있는 작품에 기대어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었다. 나는 작품에서 조금만 떨어져 달라고 요청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어드렸다. 감사의 인사가 오고 갔다. 어떤 아이는 발목 정도 높이의, 통행을 제한하는, 길고 얇은 회색 줄을 못 보고 그냥 걸어가다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그래서 발 밑을 조심하라는 말을 건넸다.


자원봉사는 총 4시간 동안 이루어졌고, 그 시간 동안 말을 건네는 것은 나에게 참 부담스럽고 두려운 일이었다. 참 많은 말들을 관람객들에게 건넸다. 낯선 사람을 어색해하고, 두려워하던 나는 그 날만큼은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이전의 내 찌질한 모습은 잠깐 접어두고, 마치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봉사를 하기 전에는 실수할 것 같다고, 잘 해내지 못할 것 같다고 불안해했었다. 하지만 해보고 나니, 생각보다 쉬웠고, 잘 해낸 것 같아 뿌듯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사람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성이 있는, 누군가와 어울릴 수 있는 정상인인 것처럼 느껴졌다.


끝날 시간이 되었고,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1층 안내데스크로 내려갔다. 수고했다는 말과 감사하다는 말이 직원과 서로 오가고, 나는 출구를 빠져나왔다. 바깥으로 나오면서 얼마나 발걸음이 가볍고 당찼는지,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나도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3월의 어느 날, 미술관 밖 공기는 참 시원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며 난 계속 미소를 지었다.



용기 있게 정면으로 걸어가기

그 이후에도 5번을 더 했다. 4시간씩 총 6번을 했으니 24시간을 봉사시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부터는 마음이 좀 더 편해졌다. 한번 해봐서 그런지, 여유도 생겼다. 전보다 더 자신 있게 관람객에게 말을 건넬 수 있었다. 표정이 더욱 편해졌고, 더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목소리도 조금 더 커졌고, 상냥해졌다. 내 몸이 가장 먼저 변화했다. 감정의 감옥 속에 있던 내 자아는 내가 따로 말해주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변화했다. 나보다 먼저 나의 성장을 받아들였다. 조금씩 조금씩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졌다.


봉사시간이 누적될수록 내 사회성도 누적되어갔다. 나는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발표 도전에 이어, 두 번째 걸음은 타인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결국 두 번째 걸음도 내딛을 수 있었다.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으려 했었지만, 현실을 계속 외면하고 있었다. 해결책을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사회성을 높이고 싶으면 어떠한 조직에 소속되어서 사회생활을 해봐야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싶다면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도전해봐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른 묘수, 비책 따위는 없다. 원하는 것을 얻고 싶다면 정면으로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현재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면으로 부딪혀봐야 한다. 감기에 걸리면 항생제를 통해 원인균을 제거하여 치료하는 것처럼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직면해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용기가 필요하다. '에라 모르겠다'하면서 눈 한번 찔끔 감고 저질러보는 용기 말이다. 이게 참 어렵다. 평생 숙제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기를 내야 한다. 현재의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다면 변화해야 하니까. 언제까지고 본인을 감정의 감옥 속에 가둬두고 살 수는 없다.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단지,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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