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맛'이 이런 거구나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정 (3)

by 빨간모자

한국이 낯선 유학생들과의 첫 만남

내가 다니는 대학의 유학생들 중, 한국에 온 지 1~2달 정도밖에 안된, 한국어를 이제 배우기 시작하는 '한국어연수생'들이 있었다. 그들이 학교 및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멘토링 봉사활동을 올해 1학기에 한 달 동안 했었다. 사람을 상대해보는 것을 넘어, 함께 어울려보는 것도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미술관 전시지킴이 봉사활동을 틈틈이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것 하나만으로는 학점을 받기 위한 필요 봉사시간을 채우기에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빠르게 채우기 위해서는 다른 봉사를 병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경험에 대한 필요성도 절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어연수생 멘토링'을 진행할 멘토를 모집한다는 글을 학교 공지사항에서 우연히 발견했을 때 바로 신청했다. 이전에 전시지킴이 봉사활동 신청을 한 번 해봐서 그런지, 신청하는 게 불안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 마음에 들었고, 강의가 없는 시간에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더욱이, 유학생과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뜨기도 했다. 잘하면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했었으니까.


합격한 후, OT에 참석했다. 유학생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는 건물에서 진행했었다.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고 소강당처럼 생긴 공간으로 들어갔다. 다른 멘토들과 함께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봉사활동에 대한 설명을 담당 선생님께 듣고, 조금 있다가 한국어연수생들이 쏟아지듯이 들어왔다. 우르르 들어오는 학생들에 처음엔 흠칫 놀랬다. 낯선 외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그랬다. 어떤 학생이 같은 팀이 될까 한 명 한 명 살펴보며 상상해봤다. 모두 아시아인들이었다. 국가는 총 3개국이었다. 중국, 몽골, 우즈베키스탄. 군데군데 무섭게(?) 생긴 학생들이 있어서 겁을 먹기도 했었다. 솔직히 몇몇 친구들을 보고는 '저 친구들과는 같은 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덩치가 크고, 남자답게 생긴 남학생들과는 어떻게 어울려야 할지 감이 안 잡혀서 그랬다. 왠지 만날 때마다 술을 진탕 마셔야만 될 것 같았다. 술을 못 먹는 나로서는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팀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몽골 유학생들과 한 팀이었다. 나를 포함해 한국 학생은 2명, 한국어연수생은 3명. 나만 남자였고, 모두 여자였다. 몽골 학생 2명은 한국어가 기초적으로 가능했고, 1명은 꽤 유창하게 구사가 가능했다. 건물 로비의 구석에서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하고 팀장을 정했다. 그중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면서 남자인 내가 자연스럽게 맡게 되었다. 연수생들이 통화가 불가능해서, 대신 단체 카톡방을 하나 만들었다. 우리는 4주 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 1시, OT가 진행된 건물 입구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날은 시간이 서로 맞지 않아서 곧바로 헤어졌다.



'다들 이런 맛에 사는구나'

여러 여자들과 함께 어울려본 경험도 없고, 팀장 같은 리더 역할을 해본 적도 없는 나는 부담감이 꽤 컸었다. 게다가 나는 먼저 만나자고 청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친구들과 만날 때도 늘 친구들이 먼저 주도적으로 약속을 만든다. 어떤 친구가 오랜만에 나에게 연락을 하고 만나자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콜!"이라고 말하며 뛰쳐나가곤 한다. 먼저 만나자고는 절대 하지 않는다. 이런 내가 팀장으로서 "오늘 만나서 이거 해요!"라고 말해야 한다니.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만나서 뭘 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도저히 떠오르질 않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어봤다.


나 : 연수생들하고 이번 토요일에 뭐하지?
엄마 : 뭐하긴, 놀러 가면 되겠네
나 : 어디로?
엄마 : 보니까 벚꽃 활짝 폈던데, 벚꽃 구경 가면 되겠네.


만나기로 한 날이 4월 첫째 주 토요일이었다. 이맘때쯤은 벚꽃이 한창 절정일 때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하천의 주변에 벚꽃 거리가 있다. 매년 4월 초가 되면 하천변 양쪽에 일렬로 줄지어 심어져 있는 벚꽃 나무에서 꽃이 활짝 핀다. 소소하게 벚꽃 축제를 하기도 한다. 축제 규모에 비해 사람들은 정말 많이 모인다. 내가 고민하던 날이 딱 그즈음이었다. 슬슬 사람들이 벚꽃 구경을 가기 시작하는 시기.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는 꽃을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연수생 중 2명은 울란바토르, 1명은 다른 대도시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 한국에서는 길거리에서 의외로 꽃을 흔하게 볼 수 있어서 우리에게 꽃은 친숙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몽골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볼거리이다. 게다가 몽골에서는 벚꽃을 거의 볼 수가 없다고 한다. 물어보진 못했지만, 태어나서 처음 보는 벚꽃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벚꽃 구경이 꽤 괜찮은 선택지인 것처럼 느껴졌다.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어서 벚꽃 구경을 가는 게 괜찮은지 단톡방에서 물어봤다. 울란바토르에서 온 2명 모두 흔쾌히 괜찮다고 말해줬다. 다른 대도시에서 온 연수생은 사정이 있어 함께 하지 못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약속시간에 약속 장소에 모인 4명은 함께 벚꽃이 핀 하천 향했다. 버스 안에서 우리는 이야기 꽃을 활짝 피었다. 차가 정말 막히는 날이었다.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화분에 꽃이 무수히 심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연수생들은 꽃을 보며 감탄했다. 오랜만에 꽃을 본다며 즐거워했다. 날씨만 흐렸지, 맑았다면 모든 게 좋았을 날이었다.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 하천변으로 향했다.


수많은 커플과 가족, 친구 무리가 벚꽃을 등지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활짝 핀 벚꽃을 보며 연수생들은 계속 웃었다. 처음 보는 꽃이라며, 신기하게 생겼다고 하면서.


나 : 이 꽃 이름은 벚꽃이에요
연수생 1 : 벗..꼳?
나 : 벚.꽃.
연수생 2 : 발름이... 조긍 어렵워요 하하


수많은 사람들이 찍는 것처럼 연수생들도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나는 원래 먼저 사진 찍자고 말하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사람이다. 사진 찍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얼굴이 커서 그런지, 소위 말하는 사진빨이 안 받아서 그렇다. 평소에 셀카도 안 찍는다. 연수생들은 찍어달라고 말하지는 못하고, 벚꽃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번갈아 보며 머뭇머뭇거렸다. 사람들을 리드할 줄 모르고, 자신감 있게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못하는 나였지만, 먼저 벚꽃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찍고 싶어 하는 눈들을 보니, 차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곳곳에 사진 스팟이 있었고, 우리는 그중 한두 개를 골라 포즈를 잡았다. 셀카로 4명이 모두 나오게 찍기도 했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찍기도 했다. 벚꽃을 배경으로 몇 컷, 하천 쪽으로 계단을 내려가면 펼쳐져 있는 개나리를 배경으로 또 몇 컷을 찍었다. 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는 것조차 익숙지 않던 나에게는 한 컷 한 컷이 참 묘하면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함께 찍은 사진 속 핑크빛 벚꽃과 노란빛 개나리는 실제로 보는 것보다 훨씬 눈부시게 이뻤다.


벚꽃 거리를 여유롭게 한 바퀴 돌고 시계를 봤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팀장으로서 나는 이제 뭘 하며 놀지 결정해야 했다. 밥을 어디서 먹을지, 어디 가서 놀지 아이디어를 내는 일에 젬병인 나는 이것저것 얘기하지는 못하고 고민만 했었다. 계속 머뭇거리다가는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것 같아서 내가 근처에 있는 번화가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식상하지는 않을까, 별로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되게 걱정되었다. 그래도 의외로, 괜찮다는 반응이 나왔다. 근처 룸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놀자는 의견도 나왔고, 우리는 진득하게 얘기를 해보기 위해 룸카페로 향했다.


룸카페에서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한국에는 왜 유학을 왔는지, 한국에서 뭘 해보고 싶은지 물어봤다. 연수생들은 몽골이 어떤 나라인지 동영상을 통해서 보여주기도 했다. 몽골에서 학사 졸업을 한 두 연수생은 우리 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딴 후, 기업에서 경력을 쌓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앞으로 한국생활을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팁을 알려주기도 했다. 중간중간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섞어 사용하면서 어떻게든 정확하게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과의 대화는 역시 어려웠다.


어느 정도 대화를 하고 나서는 보드게임을 했었다. 카드게임의 일종인 '할리갈리'를 했었는데, 연수생들이 정말 좋아했다. 말을 많이 할 필요 없이, 카드에 있는 그림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단순한 게임이어서 선택했다. 연수생들은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많았는데, 게임을 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아이였다. 처음 보는 게임이라며, 재미있다며 그들은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즐거움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의외로 괜찮았다. 생각보다 더 즐거웠다. 누군가는 이런 즐거움을 친구, 누군가는 애인 또는 자식을 통해 느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다들 이런 맛에 사는구나'


2시간 정도 룸카페에 있었다. 한 한국 학생은 약속이 있다며 먼저 갔다. 움직일 때가 다가온 것 같아 룸카페에서 나왔다.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번화가를 구경시켜줬다. 학교생활하면서 자주 놀러 오라는 의미였다. 연수생들도 저녁에 일이 있어, 저녁을 함께 먹지는 못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 학교로 돌려보내 줬다.



능동적인 만남으로 기억하게 된 삶의 행복

그 후로 짧게 딱 한 번 더 만나고는 만나질 못했다. 서로 시간이 잘 맞지 않았다. 자주 만나고 싶어도, 연수생들은 나름대로 바빴고, 다른 한국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좀 더 자주 만났으면 더 친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팀장으로서 어떻게든 서로 만나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참 아쉽게 느껴졌다.


능동적으로 누군가와 만나본 것은 최초였다. 나는 늘 수동적으로 사람을 만나왔다. 감정의 감옥에 나를 가둔 이후로는 더욱더 사람을 피했다. 마치 잠수 탄 것처럼 말이다. 사람을 만난다는 행위 자체가 나에겐 어색했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사람을 만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복보다는 상처 받기 싫고, 불행해지기 싫다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그만큼 내가 겪었던 과거의 사건들은 나에게 매우 아프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타인에게 먼저 만나자고 제안해보는 것. 타인과 어울리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타인을 즐겁게 해 주고,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즐거워하는 것. 감정의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잊고 있었던 행복이었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마음의 문을 닫아놓고 누군가가 다가와주기만을 바랐다.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감정이 감옥을 나가지 못하게 막아서,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은 생각도 하질 못했었다.


멘토링을 진행하면서,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은 의외로 괜찮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타인과 어울리는 일이 그렇게 나쁜 일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조금 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함께 어울리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진심으로 느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세 번째 발자국을 내딛게 되었다.


나는 '사는 맛'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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