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 난 원래부터 해오던 건데요?

5. 거 리 두 는 사 람

by 빨간모자

여전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되고 있다. 수도권은 2.5단계, 지방은 2단계가 진행 중이고, 일부 지역은 수도권과 비슷하게 2.5단계가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실내 50인 이상, 실외 100인 이상 집합 금지 등 여러 방역 조치들이 시행되고 있지만, 결국 쓸데없이 여럿이서 물리적으로 가깝게 어울리지 말라는 것이 핵심이다. 모이지 말고 서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것이 방역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인 셈이다.


학교에 다닐 때 늘 바랐던 점이 하나 있었다. 한 학급 당 학생 수가 40명 정도 될 때 학교를 다녔었는데, 인원수가 절반으로 줄었으면 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책상 배치가 싫었다. 옆 짝꿍과 딱 붙어있는 것이 싫었고, 책상과 책상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누군가와 몸을 스쳐야 했던 것도 불편했다. 비켜주지 않으며 내 어깨를 툭 치면서 거만하게 지나가는 몇몇 애들이 엄청 꼴 보기 싫기도 했었다.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빈 공간 없이 애들로 꽉 찬 교실이 불편했었다.


나에겐 사회적 거리두기가 원래부터 인생의 철학이었다. 너무 가까워도 안되고 너무 멀어도 안된다는 것이 인간관계의 기본 원칙이었고, 친하지 않은 사람과는 몸이 서로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왔다. 타인의 사적인 일상과 공간에는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정과 사랑도 좋지만 프라이버시도 그와 비슷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각자에게는 각자만의 삶이 있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모두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 서로가 적당히 거리를 둬야 하는 게 정상이라고 믿고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예민하면서 사회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하하곤 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탈 때 뒷사람이 내 신발 뒷부분을 툭툭 치는 게 싫다. 내가 탈 때 조금 떨어져서 들어오면 되지, 왜 내 신발을 건들 정도로 가깝게 붙어서 들어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영화관에서 모르는 사람과 붙어 앉아 있는 것도 불편하다. 맞대고 있는 팔걸이에 팔을 못 올리기도 하고, 옆사람이 시야에 들어오다 보니 영화를 보면서 괜히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식당에서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낯선 사람이 시끄럽게 떠들면 내 앞사람에게 집중이 안된다. 소리가 겹치다 보니 시끄러워서 정신이 사납기도 하고, 쓸데없이 옆사람 대화에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기도 한다.


꽉 찬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살을 맞대며 서있는 것도 싫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정해진 짧은 시간 동안 한꺼번에 출퇴근, 등하교를 하게끔 시스템을 만들어놨을까 의문이 저절로 생긴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이 꽉 찬 버스, 지하철 안에서 답답함을 호소하게끔 대중교통 시스템을 짜 놨는지도 불만이다. 왜 직장과 학교는 다닥다닥 붙어 있어 가지고 우리를 다닥다닥 붙어서 다니게 하고 거주하게 하는가. 불편할 정도로 사람들은 너무 가깝게 붙어있고 모여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여럿이 모여있는 모습을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한다. 예전에 결혼식에 다녀온 아빠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늦게 들어온 아빠에게 엄마는 누구 결혼식에 갔다 왔냐고 물어봤다. 아빠는 친분이 별로 없는 회사 사람이라고 했고, 곧이어 엄마는 잘 모르는 직장동료인데 돈만 주고 오지 뭐하러 직접 갔다 왔냐고 말했다. 그다음에 아빠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았다.


"내가 많이 다녀야 빨간모자(나) 결혼할 때 많이들 오지"


이 얘기를 듣고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엄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돌려받길 기대하고 경조사 열심히 챙기다 보면 서운할 일 많이 생긴다고 아빠에게 얘기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아빠를 비롯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에 꼬박꼬박 찾아가는 이유가 나 또는 내 자식의 결혼식이 북적북적거리길 바라기 때문인 것 같다. 결혼식에 하객이 많이 찾아와야 미덕인 것일까? 하객이 적으면 초라해 보이고 무능력해 보이는 것일까?


이런 경우는 회식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1차가 끝나고, 2차를 갈 사람을 구한다. 부서장이나 팀장과 같은 높으신 간부들은 모두가 참여하길 은근히 바란다. 많은 부하직원들이 2차에 빠진다고 하면 알게 모르게 서운함을 표현한다. 가끔은 직접적으로 핀잔을 주거나 술에 취해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행동들 또한 회식자리가 북적북적한 것이 보기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방에서 술을 마시며 신나게 흔들어야 활기차 보이고 재미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꼭 사람이 많아야 분위기가 밝고 재미가 있을까? 마음이 맞는 소수가 함께 해도 활기차게 재미있을 수 있지 않을까? 혹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니까 눈치껏 분위기 맞추라고 누군가에게 강요하지는 않는가?


아직도 사회 내의 많은 사람들이 집단 문화가 아름답고, 옳다고 생각한다. 결혼식, 운동회 같이 규모 있는 행사에는 사람이 최대한 많이 북적북적 참여하는 게 보기 좋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마치 권력자인 것처럼 행세하고, 모두가 그 사람을 권력자로 떠받들기도 한다. 대신, 소수의 깊은 친구들을 옆에 두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열등한 사람으로 치부되곤 한다. 왜 비즈니스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대다수의 인간관계에 우리는 목매달아야 하는 걸까. 부질없는 것에 너무 힘을 빼고 있는 건 아닌지 반문해보고 싶다.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인데, 직장을 관두면, 사업을 접으면 자연스레 휘발되어버릴 인맥들에 많은 이들이 너무 높은 가치를 매겨놓고 아등바등하며 사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혼자 또는 소수의 사람들도 재미있게 지낼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있다. 점점 사람들은 자신과 주변에 있는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달아가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일하느라 정신이 없고 변화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치 없는 것들은 조금씩 가지치기를 하듯이 다듬어나가야 한다. 평생 우리는 마치 방 정리를 하듯이 인생을 정리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정신없는 세상 속에서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살아갈 수 있다.


코로나 이전의 삶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우리는 코로나 19의 유행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고, 여러 방면에서 멈춰있고 고립되어 있는 우리의 일상도 최대한 빨리 복구되어야 할 것이다. 대신, 거리두기 문화는 이후에도 지속되었으면 한다. 일적인 관계, 가치가 낮은 관계, 낯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는 거리를 두고, 가깝고, 가치 있는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는 거리를 좁히는 문화. 세상이 변화하고 있는 방향이자, 현재 우리가 연습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건강하게 적당한 거리를 두는 사회가 코로나 사태가 해결되는 과정 속에서 성공적으로 형성되었으면 한다.



일러스트 출처: 정책브리핑(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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