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잘난 게 너랑 뭔 상관이야

4. 비교하는 사람

by 빨간모자

군 생활을 할 때였다. 선임들 중 특이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있었다. 외모와 성격, 평소 행동을 보면 영락없이 별생각 없이 노는 거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할 것 같은 사람에게 의외의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그에 관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미묘하면서도 부러운 감정을 느꼈던 걸로 기억한다.




그의 삶은 이랬다. 중학교 때 그는 영재였었다. 학교에서 늘 최상위권을 달렸고, 전반적으로 성적이 좋았다. 그중에서 이과 과목, 특히 수학을 잘했다. 그래서 과학고에 진학하기 위해 영재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그에게 큰 변화가 닥쳐왔다. 누구에게나 때가 되면 사춘기가 찾아오고, 중2가 되면 중2병에 걸리듯이 그에게도 반항의 시기가 찾아왔다. 과학고 진학 직전에 반항이 남들보다 훨씬 더 심하게 찾아왔고, 결국 그는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진학 후에도 반항은 끝나지 않았고, 고등학교 3년 내내 지속되었다. 공부를 하라는 주위의 말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고, 소위 말하는 '양아치' 친구들과 계속 놀기만 했단다. 그러다 순식간에 고3이 되었고, 그 해 11월에 다른 친구들처럼 파도에 휩쓸리듯이 수능을 봤다. 결과는 엉망이었다. 3년 간 공부를 전혀 하질 않았으니 당연했다. 당시에 내가 이야기를 들을 때 들었었던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살면서 9등급을 맞아본 적 있냐".


그런데 재미있는 건 지금부터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인서울 일부 대학에서 논술로만 학생을 뽑는 수시전형이 있었다. 수능성적, 학생부 교과 및 비교과 성적이 전혀 반영이 안 되고, 오직, 문과는 글을 쓰는 인문논술, 이과는 수학 문제를 풀이하는 수리논술로만 학생을 뽑는 전형이었다. 그는 수능이 끝난 후, 몇몇 대학의 수리논술 시험을 봤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만 한 어느 유명 대학에 합격했다. 중학생 때 받았던 영재교육 덕분이었다. 그때 배웠던 지식으로 시험을 본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열심히 놀았다. 반항의 시기가 계속된 건지, 아니면 고등학생 때의 라이프스타일이 몸에 밴 건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그는 대학 생활 내내 책에 손도 안 댔고, 매일매일 여러 클럽을 전전하며 죽돌이 생활을 했다. 그러다 군대에 갈 나이가 되어서 입대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 얘기를 다 듣고 난 후에 인생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한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도 가기 힘든 학교였는데, 옛날에 좀 공부해놓고 실컷 놀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험 보고 합격했다고 하니, 역시 타고난 애들은 이길 수 없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내가 참 재능 없는 평범한 사람이란 것도 실감할 수 있었다. 엄청 열심히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3년 동안 꾸준히 공부했는데 나는 공부한 만큼 진학했고, 몇 년 동안 공부에 손 뗐던 사람은 기본 머리 활용해서 내가 진학한 학교보다 더 우수한 곳에 진학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딱 노력한 만큼만 결과물을 얻어야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내가 들었던 이 이야기를 전역 후에 엄마에게 그대로 해줬다. 그리고 내 생각도 말해줬었다. 세상 참 불공평한 것 같다고. 누구는 실컷 놀고 좋은 대학 가는데, 누구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대학 가는 애들 발맞춰 겨우 따라갈 수 있다고. 그러자 엄마는 나에게 뜻밖의 말을 해줬다.


남 잘난 게 너랑 뭔 상관이야

별 상관없는 사람이 공부를 잘하든, 돈을 잘 벌든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얘기였다. 그 잘난 애들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도 못 끼치는데 뭐하러 찌질하게 다 시기하고 질투하냐는 의미이기도 했다. 엄마는 그렇게 얘기하고는, 부러워해봤자 기분만 나쁘고, 다른 사람들이 성공한다고 나한테 득이 되는 것도 아니니 남한테 신경 쓰지 말고 내 인생에나 신경 쓰라고 말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팔자가 있는 법이라고 하면서.


맞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성공하든, 나에겐 나만의 길이 있다. 예로 들어, 누군가가 회계사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더라도, 나는 회계사가 적성에 안 맞을 수 있고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만약 본인이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면, 회계사로 성공해 돈을 많이 버는 누군가의 스토리는 신경 쓸 일도 아니고 부러워할 일도 아니다. 부럽다고 회계사에 도전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사람은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나도 나만의 길을 걸어가며 내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기원하면 될 일이다.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을 불필요하게 질투할 필요는 없다.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모두는 각자만의 걸음걸이가 있는 법이다. 배움이 느리다고 꼭 실패하는 것도 아니고, 빠르다고 꼭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실력이 항상 배움의 속도에 정비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인생의 여러 성공에는 운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실력이 좋다고 항상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실력대로 성공하는 게 인생이라면 학교 성적순으로 사회에서 성공하여 계단식으로 부와 명예, 권력을 거머쥐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냥저냥 평범하게 학교 다녔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유튜버로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공부를 정말 잘해서 명문대에 입학한 친구가 잇따른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앉게 되어 힘든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본인의 필드에서 실력이 정말 출중한데 생각보다 빛을 보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실력은 쥐뿔 없으면서 높은 자리 한 자리를 차지해 앉아 있는 사람들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수많은 요소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예단할 수 없는 법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을 차려서 공부를 열심히 하며 살아갈 수도 있고, 공부랑은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자기 사업을 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다. 어떻게 살아가든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고, 비교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나는 내 인생에 충실하면 될 일이다.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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