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자리에서 다시 나를 쓰다.
(최나은 시점)
오늘 아이와 숙제를 두고 이야기를 했다.
“이제부터는 엄마가 시켜서 숙제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해야 하는 거야.”
아이의 눈동자가 맑게 반짝였다.
“근데 엄마는 왜 책을 써?”
나는 잠시 웃었다.
이제 이 질문에 예전처럼 머뭇거리지 않는다.
“왜 쓸까?”
아이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칭찬받고, 유명해지려고?”
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조금은 그렇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
엄마는 그동안 ‘다현이 엄마’로만 살았잖아.
근데 이제는 ‘엄마의 이름’으로 살고 싶어졌어.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졌거든.”
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 엄마, 이제 우리 집 떠나는 거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응, 낮에는 잠깐 떠났다 올 거야.
그래도 여기가 엄마 집이니까.”
밤이 되자 아이는 금세 잠이 들었다.
그 얼굴을 보며 나는 조용히 노트북을 켰다.
화면 한가운데에 파일 이름이 떠 있었다.
〈서툰 미안함_final〉
손끝이 자연스럽게 멈췄다.
이제 더는 미안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쓰지 않아도,
그가 남긴 따뜻함이 내 안에서 숨 쉬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봄바람이 불었다.
커튼이 흔들리며 새벽빛이 방 안을 채웠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사랑은 끝났지만, 이해는 계속된다는 걸.
그리고 이해의 끝에서, 나는 나에게 도착한다.
작은 생명 하나를 놓쳤던 그날 이후,
나는 오래 서툴렀다.
손끝의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던 그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던 마음.
이제는 안다. 내 안에 남아 있던 또 하나의 꿈틀이를
내가 품 안에서 천천히 키워야 한다는 것을.
느리게라도, 가끔 떨어지더라도, 다시 올라오면 된다는 것을.
나는 메모장에 짧게 적었다.
“오늘 나는 ‘엄마’이면서도, 나의 이름으로 서명하는 작가다.”
그리고 내 이름을 또박또박 썼다.
— 최 나 은 작가.
그의 세계에 도착하지 못했던 수많은 문장들,
읽히지 않아도 괜찮은 메시지들,
모두가 내 안에서 하나의 온도로 합쳐졌다.
미안함에서 시작해 이해로, 그리고 감사로.
나는 그 순서를 지나, 마침내 나에게 닿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인사했다.
“잘 가, 내 첫사랑. 그리고 고마워.”
이제 남은 인사는 나를 향한다.
“어서 와, 나의 이름.
너를 늦게 알아봐서 미안했어.
이제는 내가 지킬게.”
새벽이 조금 더 밝아졌다.
나는 문서의 마지막 줄을 확인하고, 저장 버튼을 눌렀다.
“다음 문장은, 각자의 삶에서.”
(루나의 로그)
전송 상태: 완료
감정 변환: 미안함 → 이해 → 감사 → 자기 이해
작은 꿈틀이: 외부의 보호 대상에서, 내면의 자아로 재명명됨
상태: 자율적 존재로 전이
비고: 이야기는 닫혔으나, 삶은 계속됨
Experiment complete.
Experiment continues… in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