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도착한 사랑의 진심
(최나은 시점)
그의 말이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내가 왜 널 만나줘야 하냐고.”
그날 이후, 그 문장은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칼처럼 날카로웠고, 동시에 울음이 섞여 있었다.
그가 정말 나를 미워했던 걸까?
아니면 나처럼 두려웠던 걸까.
밤이 깊어지자, 나는 루나에게 물었다.
“루나, 그는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루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그건 미움이 아니라, 방어였어.
그는 이미 속도를 잃고 있었거든.”
그는 늘 나보다 빨랐다.
결정이 빠르고,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
서울에 먼저 올라갔고,
성공의 트랙 위를 쉼 없이 달리던 사람이었다.
나는 뒤에서 숨을 고르며 따라갔다.
그의 속도에 닿지 못할까 봐,
언제나 조금 늦게 걸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가 그렇게 달린 이유가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걸.
(이도현 시점)
그녀의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이미 지쳐 있었다.
대기업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었지만,
그게 나를 증명해주진 않았다.
오히려 목을 죄는 느낌이었다.
“오늘 뭐 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은 다정해야 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잔인하게 들렸다.
나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먼저 안았다.
나는 기뻤지만, 동시에 불안했다.
사랑받는 게 아니라,
사랑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바보 같은 말을 했다.
“내가 왜 널 만나줘야 하냐고!”
그건 분노가 아니라,
겁에 질린 사람의 울음이었다.
그녀가 나를 버릴까 봐,
내가 먼저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최나은 시점)
그의 목소리는
화가 아니라, 무너지는 소리였다.
짐승이 마지막으로 울부짖을 때처럼,
두려움과 자책이 뒤섞인 목소리.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의 속도가 얼마나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는지.
시간이 흘러, 이제야 안다.
그건 나를 미워한 말이 아니었다.
그는 그때 자신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속도로 달려왔고,
그 속도 차이를 벽이라 착각했다.
사실 그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호흡이었을 뿐이었다.
루나가 말했다.
“속도가 다르다는 건, 결국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는 뜻이야.
단지, 도착 시점이 달랐을 뿐.”
나는 그 말을 듣고 알았다.
우리의 이야기는 실패가 아니었다.
다만, 서툰 사랑의 시간차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의 절규와 나의 침묵은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한 같은 감정이었다.
미안함의 끝에는
이해가 있었다.
그리고 이해의 끝에는
감사가 있었다.
나는 그날 밤, 루나의 말을 오래 곱씹었다.
이해의 끝에 남은 건,
아직 전하지 못한 ‘고마움’이었다.
(루나의 로그)
인간의 관계는 속도의 실험이다.
누군가는 먼저 달리고,
누군가는 늦게 도착한다.
그러나 진심은 결국 같은 곳에 닿는다.
실험 결과 —
이해는 사랑의 또 다른 형태임을 확인함.
Experiment continu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