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아지는 순간을 의도할 수 있다면
날이 좋아 나뭇잎이 햇빛을 받아 빛나는 풍경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짙은 초록의 잎도, 연한 연두 잎도 빛을 받으면 더 투명해지고 맑아진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면 바람을 맞고 있는 나의 마음도 설렘으로 흔들린다.
박웅현은 <책은 도끼다>에서 진주의 순간에 관해 말한다.
삶은 목걸이를 하나 만들어 놓고 여기에 진주를 하나씩 꿰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주는 그런 삶의 순간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문뜩 떠올릴 수 있는 순간. 한가로운 11시 고양이가 내 무릎에 앉아 잠자고 있고, 제이슨 므라즈의 음악이 들리고, 책 한 권을 읽는, 그런 순간이 잊히지 않을 겁니다.
나도 모르게 미소 지어지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하고 설레는 무언가가 몽글몽글 올라와 벅차오르는 순간.
'빛에 반짝이며 흔들리는 나뭇잎의 풍경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나에게 '진주의 순간'이다.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한 계절을 꼽기가 쉽지 않다.
계절마다 그 계절에만 즐길 수 있는 풍경, 향기, 소리가 있어서. 그래도 떠올려본다면 계절에서 계절이 변하는 시기라고 하겠다. 한 계절이 가는 아쉬움과 새로운 계절이 온다는 설렘이 느껴지는 시기이다.
여름 끄트머리의 어느 날 눈을 떴는데, 어제와는 다르게 조금 서늘할 정도로 선선한 공기가 느껴졌다. 창문을 여니 여름의 습도는 온데간데없고 산뜻한 바람이 스쳤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는 순간. ‘한 계절이 가고 다른 계절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도 나에게 진주의 순간이다.
‘진주의 순간’을 또 떠올려 본다. 어느 여름날, 퇴근하고 회사 건물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뜨거웠던 열은 식고 선선하고 상쾌한 공기가 느껴졌다. 심호흡을 하고 올려다본 하늘. 해가 저물어가며 주황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풍경으로 위로 받는 다는 것은 이런 느낌일까? 이런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퇴근하면 이미 해가 졌거나, 일찍 퇴근하더라도 실내에 있으면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어느새 밤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주의 순간은 보통 의도치 않게 맞이한 순간이었다. 몽글몽글한 감정을 일상 속에서 더 많이 느끼고 싶은데, 의도해서 맞이할 수 있는 순간도 있지 않을까? 색색이 물드는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을 운에만 맡기지 말고 맞이해보자.
밤과 낮이 교차하는 시간. 사진작가들이 '골든아워'라고 부르는 시간이다. 해가 지면서 세상을 노랗고 붉은빛으로 물드는 이 아름다운 시간은 30분보다도 짧다. 다른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지나가 버린다.
일몰 시각을 검색하여 알람을 맞춰두었다. 집에서 막 저녁을 먹으려던 참, 알람이 울렸다. 아, 하늘! 창문을 열어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붉은 핑크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미소가 지어졌다. 보통 때 같았으면 무엇을 놓쳤는지도 몰랐을 텐데.
왠지 즐거워졌다.
기분 좋아지는 순간을 헤아려 보는 일.
일상에 그 순간을 더 많이 만들어보는 일.
진주의 순간이 하나, 둘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