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 Jan 13. 2020

너무나 익숙해져 잊어버린 일상의 엄청남

꿈꾸던 바닷가에 살고 있어요

나는 바다를 정말 좋아한다. 바다를 좋아한다고 하면, 바다에 들어가서 수영하는 모습과 모래사장을 떠올리시는데,  수영도 안 좋아하고(특히 바다에서는 더더욱) 모래사장에서 노는 것도 안 좋아한다(좀 싫어하는 쪽에 가깝다). 어릴  아토피가 심했던 터라 긁어 상처 난 부위 때문에 부모님께서 바닷물에  들어가게 하셨고, 흙이 상처를  악화시킬까 흙도 만지고 놀지 말라고 하셨었다. 유년기를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탓인지 아토피가  나은 지금도  바닷물에서 수영하는  찝찝하고 싫으며, 모래가 피부에 닿는 것도 어색하고 껄끄럽다.


그렇긴 하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좋아한다. 사실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어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22 때쯤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바닷가에 살고 싶은 열망이 커졌다. 유명하다고 하는 여러 바닷가를  다녔지만,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바다는 제주도 남쪽에 위치한 작은 곳인데, 관광지도 아니고 사는 사람이 많이 없어 솔직히 여행 갔을  다녀갈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  친척 할머니가   그곳에 살고 계셔서 부모님과 함께 잠시 들렀다.


정말 작은 마을이었다. 바닷가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유독 검은 모래를 갖고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오래된 식당에 들어갔다. 오래되어 낡은 회색 건물이었다. 간판의 스티커는 군데군데 떨어져 간신히 메뉴를 알아맞힐  있었다. 우리는 할머니와 기쁜 인사를 하고, 할머니는 가장 자신 있는 메뉴인 전복죽을 끓여주셨다. 전복죽을 좋아해 많이 먹어봤지만, 난생 그렇게 맛있는 전복죽은 처음 먹었다.  순간 맛있는 전복죽   뜨는데 주방에서 예쁘게  김치를  오시는 할머니와    너머로 보이는 검은 모래의 바다가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우리는 전복죽을  먹고 식당 앞으로 나와 바다를 구경했다. 이틀 차였던 그때, 사람이 많은 위쪽 제주의 바다만 다니다 와서였는지, 우리  밖에 없는  순간의 바다가 너무 친근하게 느껴졌다. 마치 누구도 오지 않는  곳에서 홀로 우리를 계속 기다렸다는 마냥 파도가   가깝게 치는 듯했다.


 뒤로 바다(보는 ) 사랑하게 됐다. 바닷가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리고 내가 바닷가에서 조용히 바다 보면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때마다 주위에선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맨날 봐봐라 그게 좋은가.  똑같지.”라는 말로  꿈이 환상이라고 얘기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것도 그렇지? 그냥 가끔 놀러 가는 걸로 만족해야겠지?”라고 인정을 하기도 했다. 그 말도 맞다며.


그런데 어쩌다 동티모르로 해외봉사를 오게 됐고, 지금 문을 열고  발자국만 나가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살고 있다. 심지어 내가 일하는 학교는 바닷가 바로 앞에 위치한 곳이라, 출퇴근 길에 시간마다 다른 바다의 모습을  수도 있다.  외에, 노을이   쯔음엔 돗자리 하나 들고 바닷가로  명상을 하기도 하고, 그냥 누워있기도 하고, 노래를 듣기도 하면서 바다랑  살고 있다. 근데 그때  지인들이  말이 맞긴 맞다. 바다 보면서 좋은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막상 매일 보다 보니 이게 내가 꿈꿔왔던 엄청난 생활이라는  잊고, 너무 당연시했다.


그러다 요즘 우기로 인해, 항상 먹구름이 잔뜩 껴있어 노을도 제대로 안 보이고 하늘이 어둡고 파도가 너무 세게  며칠 바다에 가지 않았다가, 어제 해가 쨍하게 났길래 심심하기도 해서 돗자리를 들고 바다에 다녀왔다. 돗자리를 깔고 노을로 물들어가는 높고  하늘 아래 살살 치고 있는 파도를 보니 이걸 누리고 있는  정말 엄청난 일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게 바로 내가 꿈꾸던! 바닷가에 사는 생활인 건데. 그토록 꿈꾸던 생활을 하고 있었으면서 이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는  깨달으니 역시 인간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잃어버린다는 명언이 떠올랐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순간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 작은 모래알들과  위에 박혀있는 예쁜 돌멩이들도,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을   없는  끝의 모습도 대단하지 않은  하나가 없었다. 꿈꾸던 생활을 하고 있단 걸 깨달으니  순간만큼은, 일주일에   정전이 되는 것도, 가끔 단수가  생수병으로 씻는 일도,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영상 하나를 보기 위해 오래 기다리는 수고스러움도, 고기를 일주일에   있는 장날에 밖에   없는 것도, 나쁜 수질로 인해 생수를 사서 모든  해결해야 하는 불편함도, 이제는 우리 집에서 같이 사는 건지 구분이 안 가는 도마뱀들까지  괜찮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좋은 곳에 살아도 금방 그게 익숙해지고 하루 이틀 좋지  후엔  똑같다는 말이 맞긴 맞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 우리는 이렇게 깨닫지 않을까? 내가 있는  순간이 사실 엄청 감사한 순간이라고, 내가 갖고 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그냥   하나 없다고,  익숙함에 속아 간사해질 뻔했다고. 그걸 깨달으며 평생을 살아가는  같다. 아무리 좋은  옆에 있어도 내가 깨닫지 못하면 그저   아닌  된다는 . 누리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아닌  하나 없다는 . 그래서  모든  긍정하며 다시 바다를 보러 나간다. 나가면서 스스로에게  말할 거다. 이건 내가 꿈꾸던 생활이었다고, 바다랑 같이 사는  엄청난 일이라고, 당연한  어느 하나 없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5개 국어를 공부하는 동티모르의 학생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