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혁재 Oct 26. 2022

회사에서 행복하다?

I love working at this company.


사내 이런저런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직급이나 직책에 상관없이 매일처럼 듣는 말이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게 너무 좋다. 우리가 만든 제품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 최고의 솔루션으로 고객들의 성공을 도울 수 있어서 항상 보람차다. 이런 비슷한 말들과 함께.


물론 미국인들 특유의 화법에 유의해서 들을 필요는 있다. 적어도 내가 겪어본 바로는, 많은 미국인들이 별거 아닌 사소한 사실이나 감정을 풍선처럼 부풀려서 과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심심하면 '자기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다'거나 '자기가 본 것 중에 최고'라며 너스레를 떠는 식이다. 좋은 말도 너무 자주 듣다 보면 가끔은, 아니 자주 진의를 의심하게 된다. 영어로는 bullshitting이라고 하는데, 이런 문화는 미국인들이 링트인LinkedIn에 올리는 손발 오그라드는 포스팅들을 보면 저절로 이해가 되니 참고하면 좋겠다(어쩜 그렇게들 열정적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지).


아무튼 자기가 일하는 회사나 업계, 또는 팀이 너무 좋아 죽겠다는(?) 이 사람들의 말은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거 꽤 만족스럽고 좋아요" 정도로 번역하면 무리가 없겠다 싶다. 정도의 차이일 뿐 어쨌든 결론은 좋다는 말이다.


미국에 오기 전에 내가 한국에서 알던 '애사심'은 신입사원들의 전유물이었다. 취업 준비과정에서 고생을 더 많이 했을수록, 회사 이름 앞에 '삼성'이라는 글자가 들어갈수록, 초봉이 높을수록, 안정적이라는(이게 뭔 소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공기업일수록 충성심은 커진다. 연수원이라 불리는 곳에 입사 동기들과 둘러앉아 회사의 역사와 창업주의 위대하신 업적에 대해 배우고, 팀을 나눠 마지막 날 밤에 있을 경연을 준비하다 보면 애사심은 정점을 찍고, 앞으로 회사를 위해 이 한 몸 다 바쳐 일하겠다는 결심이 굳어진다. 이때부터 남은 건 내리막 길뿐임을 깨닫기 시작하는 데에는 채 100일이 걸리지 않는 게 보통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곳 미국 실리콘밸리는 뭐가 그렇게 다르고 특별하길래 사람들이 직급과 연차에 상관없이 애사심을 가지고 또 그걸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걸까? 돈을 많이 줘서일까? 복지제도가 뛰어나서일까? 자사주를 많이 나눠줘서일까? 워라밸이 좋아서일까? 그냥 문화 차이 때문일까?


예일대학이 업무 만족도에 대해 연구한 내용에 따르면 업종이나 직책을 불문하고 높은 업무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한다. 창의력(creativity), 자율성(control), 영향력(impact)이 그것이다. 창의적인 생각을 현실화할 수 있는 문화, 자기 업무를 상당 부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환경, 일의 결과물이 회사와 사회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보람이 업무 만족도를 결정한다는 설명이다.


셋 중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자율성을 고르겠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시키는 와중에 창의력이 발휘될 수 없고, 자율성에 따르는 책임감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영향력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거 너무 좋아요" 같은 말을 왜 실리콘밸리에서는 매일 들을 수 있고 한국에서는 그럴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하루하루 출근이 힘든 직장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단순히 몇 백만 원의 월급 인상이나 마사지 복지 따위가 아니다. 어른답게, 프로답게, 시간과 장소를 제한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게 먼저다. 회사가 우리를 프로로 대할 때, 우리도 회사를 프로처럼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이전 12화 지금 회사에 만족하십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