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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다 Aug 18. 2020

도대체 낚시는 왜 하는 걸까

인생 첫 배낚시를 다녀왔다.

새벽 4시. 나는 전남 고흥으로 향하는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전날 저녁 퇴근 후 서울에서 네 시간을 걸려 친구가 살고 있는 광주에 도착했고, 짧은 잠을 청한 뒤 다시 오른 여정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아침 6시경 출항하는 낚시 배를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대학 남자 동기들의 모임 자리에서 나온 배낚시 이야기는 그날 자리에서 끝날 줄 알았다. 30대 후반쯤 되면, 친구들이 꺼내는 ‘학교 다닐 때 생각하며 엠티 가자’ ‘가족들 동반해서 캠핑 가자’ ‘여행 경비(회비)를 다달이 모아보자’ 등등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흐지부지 되곤 한다. 사는 게 그랬다. 시간 한 번 내는 게 어려운 일이었고, 친구들 다 같이 시간을 맞추는 일은 더 어려웠다. 게다가 귀찮은 일은 절대 하지 않는 녀석들이었다.     


이번 배낚시는 달랐다.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친구가 있었고, 하필 그 친구가 일주일에 이틀은 꼬박 낚시 가는 ‘낚시광’이었다. 게다가 준비는 그 친구 혼자 하기로 했으며, 나머지는 회비만 들고 참석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가족과 함께 가도 상관없고 꼭 가족 동반이 아니어도 괜찮은 것으로 의견을 모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동반 인원 하나 없이 친구들끼리만 가게 됐다.   

   

기억도 나지 않는 십수 년 전 그 옛날 이후 처음으로 다 함께 떠나는 여행. 여름이 본격 시작한 지난 7월의 일이었다.     

 

도착지는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항이었다. 배를 타고 근해로 나갈 것이었다. 목표 어종은 민어. 여름 보양식으로 알려진 그 물고기였다. 다들 낚시는 초짜였는데 언감생심 커다란 민어 한 마리씩은 잡아 집에 가져갈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밤길을 달려 새벽 5시 30분 즈음 외나로도항에 도착했다. 선장님을 만나 인사 나누고, 낚시광 친구의 리드로 간단히 브리핑을 가졌다. 낚싯대 쓰는 방법, 채비의 종류, 미끼에 바늘을 끼우는 방법, 입질이 왔을 때의 행동방법 등 일장 연설이 펼쳐졌다.   

  

친구는 낚시 초보인 우리를 위해 선장님에게 “난이도를 고려해 포인트를 이동해 달라”는 요청도 빼놓지 않았다. 민어는 포인트에 따라 난이도가 다르고 크기도 달라진다고 했다. 대어를 잡지 못할지언정 작은 손맛이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또 한 마리씩이라도 잡아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배를 통째로 예약했기에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포인트를 이동할 수 있었다. 커다란 배에 선장님과 사무장, 우리까지 달랑 아홉 명뿐이었다.     


민어낚시는 바닥 가까이 붙이는 게 중요했다. 나는 30호 봉돌을 사용했고, 낚싯대는 선장님의 것을 빌려 썼다. 미끼는 생새우였는데 팔딱거리는 새우의 머리 부분을 바늘로 찔러야 했다.     


포인트에 도착해 봉돌을 바닥까지 내렸다. 새우는 봉돌에서 약 40cm 윗부분 미끼 줄에 매달려 있다. 바닥 가까이 서식하는 민어는 새우의 움직임을 보고 덥석 물것이었다.


오전 내내 이어진 낚시에서는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입질이 왔음에도 이것이 입질인지 모르고 넘어갔거나, 민어가 새우만 뜯어먹고 달아나버리기 일쑤였다. 마음만 앞선 초보 실력이 어디 갈까.


요즘은 유튜브가 교육방송 같다. 다들 이미 수일 전부터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민어 공략법을 공부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오후를 맞았다. 배 위에서의 점심은 사실 큰 감흥이 없었다. 갓 잡은 물고기를 회 썰고 또 라면에 잡어를 넣어 끓여 먹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뜨거운 여름날 출렁이는 배 위에서 우아하게 먹고 앉았을 상황이 되지 않았고, 다들 한 마리라도 더 잡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나머지 대충 때웠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선장님이 준비한 밥과 밑반찬으로 간단히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오전의 실수가 경험이 됐는지 오후에는 한 명 한 명 민어를 올리기 시작했다. 크기는 모두 달랐지만 기쁨은 하나같이 거대했다. 그러던 사이 내게도 입질이 왔다. 힘껏 챔질. 그리고는 줄을 감아올렸다. 첫 물고기는 조기였다. 꽤 큰 크기였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목표는 민어였기 때문이다.      


낚시는 기다림이라고 했던가. 친구들이 민어를 하나둘 잡아 올릴 때에는 나도 어서 잡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이 이어졌다. 그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때를 기다려야 한다. 여름 바다의 잔잔한 파도에 배가 출렁거리며 내 몸을 흔들어댔다.      


생각은 마음을 지배한다. 다들 낚시에 집중한 나머지 고요해진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낚싯배의 기계 엔진음과 파도에 흔들리는 선체의 삐그덕거림만이 존재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거나 멍하니 있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함께 였지만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다.     


낚시의 목적이 민어잡이에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고, 빤한 술자리에 변화가 필요했다. 민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잡으면 좋은 일이고, 못 잡아도 속상할 일은 아니었다. 웃고 떠들며 (놀리기도 하고 장난치며)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소중했다. 두고두고 이날의 시간을 술안주 삼을 것이었다. 요동치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낚시라는 게 그날의 운도 중요했지만 어종에 따라 또 결과가 달라진다. 민어는 자주, 또 많이 잡히는 어종이 아니라고 한다. 초보의 경우 더욱 그렇다. 선장님은 한두 마리만 잡아도 성공이라고 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툭툭. 묵직한 입질이 찾아왔다. 이건 분명 물고기다. 순간 ‘지금 챔질을 해야 돼’라는 판단이 섰다. 낚싯대를 잽싸게 들어 올렸다.      


히트!      


낚싯대 끝이 요동친다. 낚시광 친구가 내게로 왔다. “낚싯대 들지 말고 그대로 천천히 끌어올려.”

자칫 민어가 줄을 끊어버릴 수 있었다.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조금씩 조금씩 줄을 당겼다. 힘겨운 줄다리기는 금세 끝났다. 민어가 수면 위로 모습을 보이자 선장님은 잽싸게 뜰채로 민어를 잡아 올렸다.      


길이를 재보진 않았지만 한 40센티 되어 보이는 민어였다. 보편적으로 크기가 큰 것은 아니었지만 내게는 고래보다 큰 대어였다. 이게 바로 낚시구나.


항구를 떠난 지 약 8시간 만에 드디어 목표를 달성했다. 모든 근심과 걱정, 초조함과 아쉬움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후 한 마리의 민어를 더 낚아 올렸다. 두 마리나 잡다니. 놀라운 결과였다.


항구에 돌아와 배에서 내렸을 때, “조만간 한 번 더 오자”는 친구의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 채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한 번 가는 일이 쉽지 않을뿐더러, 비용도 꽤 들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새벽에 배에 올랐을 때와 달리 물고기로 두둑해진 양손만큼 내 마음도 묵직함으로 채워졌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활동에 대한 도전은 솔직히 두렵다. 겁도 난다. 대단한 성취감이 있는지도 사실 모르겠다.


10시간 고생해서 기껏 두 마리 잡았으니 경제적인 측면에서 나의 배낚시는 참 비효율적인 행동이다. 또 욕심을 내려놓고 기다려야 하는 답답함도 감내해야 했다. 물론 기다린다고 잡는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이날의 10시간은 앞으로 10년 또 그 이상 두고두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숫자에서는 보이지 않는 높은 가치는 그곳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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