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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밥 May 14. 2022

프로퇴사러는 공백기에 무얼 했나

이것저것 찔러보고 있는 전직 마케터의 퇴사병 치료기 #1


3월에 퇴사 후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한가로운 여유로움 사이로 불쑥 다시 불안한 마음이 한구석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포트폴리오라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전 회사 입사할 때 제출한 포트폴리오를 화면에 띄웠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회사에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자꾸 몇 달 전 일들이 자꾸 떠올랐다.

나를 향한 뾰족한 말들만 기억나고 그때를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좋은 기억만큼 싫었던 순간들도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데 아직 그게 어렵다.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들 때마다 몇 번의 퇴사 후 쉬어가는 동안 했던 일들을 적어본다.

뻔할 수도 있지만 적당한 성취감을 주면서 기분을 좋게 해 주었던 일들.

나쁜 기억들 위에 좋은 기억을 다시 쌓아간다.  



#1 영화보기 

퇴사를 하면 통과 의례처럼 꼭 봐야만 할 것 같은 영화 리스트가 있다.

그중에서 내가 특히 위로를 많이 받았던 영화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김씨표류기


영화 속에서 나에게 적당한 위로의 한마디를 찾아보는 게 때로는 큰 위로가 된다.


#2 유화 클래스 듣기

주 1회 한 달 동안 유화 클래스를 들었다.

작품 2개를 완성할 수 있었는데 그리는 순간도 좋았지만 다음엔 뭘 그리지 생각하고 기대하는 게 특히 좋았다. 비록 내가 가지고 간 레퍼런스 작품과 내가 그린 결과가 조금… 많이… 달라 보였지만.. ^^


잘 못 그려도 유화는 뭔가 느낌 있다.



#3 밥 지어먹기

의식주 중에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식’이다. 퇴사 후 가장 먼저 작은 솥을 구매했다.

쌀을 불리는 시간까지 족히 30분은 넘게 걸리는 솥밥 짓기는 배가 고픈 상황에서

인내심 테스트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는 시간이 많다.

집안에 밥 냄새가 풍기는 것만으로도 잠시나마 뭔가 풍요로워진 기분이 든다.

 

그리고 즉석밥을 먹고 난 후 플라스틱 용기를 배출하며 언제부턴가 스스로 죄책감이 들었는데

지구에 내가 다녀간 흔적을 조금은 줄일 수 있어 좋다.



#4 혼자 여행 가기

취준생 시절 혼자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군산.

본가에서 두 시간 거리로 적당히 가깝고 멀었으며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초봄의 바닷바람이 생각보다 매서웠지만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뭐 먹고살지… 라는 고민을 했다.

꽤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같은 고민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걸 보면 혼자 여행을 간다고 갑자기 고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퇴사를 하면 이때다 싶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래서 이번에도 즉흥적으로 강릉행 티켓을 끊었다.



퇴사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정의 단계를 거치는 것 같다.

처음 1-2주 정도는 무한할 것만 같은 자유와 뭔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한껏 가벼워진 마음이 든다.

그 기간을 지나면 불안함과 자유가 절반씩 교차하는 지점을 지나 점점 불안한 마음이 커져간다.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퇴사라는 결말과 결심을 맞이한 수많은 이들이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공백이 비어있다는 의미라면 무언가 채울  있는 상태이기도 하지 않을까.

나 자신에게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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