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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생이 Oct 21. 2024

스몰토크 포비아가 팀장이 되면 생기는 일

『팀장 반성문 : 팀장에서 두 번 잘리고 나서야 깨달은 것들』 EP.8

설익은 사회초년생 겨울. 저녁 약속이 있는 날마다 상사들이 비슷한 질문을 했다. 


"이렇게만 입으면 안 추워요?" 

"오늘 평소랑 다르네. 데이트 가는 거야?" 


패딩 대신 코트만 입었을 뿐인데, 온갖 걱정을 귀에 집어넣어야 했다. 심지어 좋아했던 사수조차 한 마디씩 보탰다. 어렸던 나는 은근히 마음에 퍼지는 거부감이 틀린 줄만 알았다. 때마다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고 넘어갔다. 


"좀 추워 보이죠? 제가 오늘 잘못 입은 거 같아요. 약속도 없는데...


지금 사수를 만나면 솔직히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제 옷 평가하시는 게 싫었어요."  
"헤어질지도 모르는 데. 사적인 연애사를 회사에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추워 보인다고 굳이 코트를 갈아입고 싶지도 않았어요." 





직장을 다니면서 '스몰토크 공포증'에 걸려버렸다.


경험 탓일까. 나는 유독 '일과 무관한 대화'가 싫었다. 대학 시절 누구보다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전공, 교양, 인적성까지 '단체 스터디'부터 만들 정도로 사람을 좋아했는데. 회사생활을 하면서 MBTI가 외향형(E)에서 내향형(I)으로 변해갔다. 


사람이 좋은데, 싫었다. 

외롭긴 한데, 매일 점심을 같이 먹기는 싫었다. 

인간적으로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대에게 억지로 웃는 시간이 아까웠다. 


나는 그렇게 *스몰토크 포비아(Small Talk phobia)가 되어갔다.


*스몰토크(Small Talk) : 일상에서 나누는 가벼운 대화
*포비아(phobia) : 공포증 


다음에 이직한 회사는 더 보수적이었다. 팀에는 '나는 꼰대입니다.' 대놓고 선전포고한 과장님도 있었다. 가끔 그의 흡연 시간에 스몰토크도 나눠줘야 했다. 그날도 우리는 별스럽지 않게 서로의 첫인상을 주고받았다. 


"사실, 초반엔 대리님이 좀 무서웠어요." 


이 꼰대에게 내가 얼마나 무섭게 했으리라고. 당시 업무가 손에 익어 두려울 게 없는 대리급이었지만, 그렇다고 하극상을 하지는 않았다. 기안 같은 행정 업무를 어려워하니, 짬처리도 열심히 해드렸다. 


"제가 과장님한테 얼마나 예의 있게 했는데요. 과장님 기안도 대신 다 써드리잖아요." 

"에이... 그런 게 아니라" 


과장님은 억울한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더니, 답답한 듯이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양생이 대리님한테는... 쉽게 말을 못 걸겠더라고요. 아침에 왜 웃으면서 인사를 안 받아줘요?" 





쾅! 


생맥주 잔이 테이블과 세게 부딪혔다. 잔이 깨지면 물어줄 각오를 하고 내리친 거다. 


"아니, 내가 무슨 북한에 있는 기쁨조야? 업무교통비 기안까지 다 써주는데 매일 아침마다 억지로 웃어주기까지 해야 돼? 회사에서 일이나 하지 왜 본인의 즐거움을 나한테서 찾는 거야?" 


가끔 치맥과 함께 회사 욕을 하던 친구들은 십분 공감해 줬다. '네가 꼰대들 사이에서 고생이 많다.' '좀만 참아라. 화내면 너만 손해다.' 


주인공은 나뿐이 아니었다. 꼰대 상무, 꼰대 부장, 꼰대 과장. 이미 검증된 '빌런 보존의 법칙'답게 그들의 직장에도 한 명씩 인류애를 뺏는 빌런이 존재했다. 우리는 돌아가며 서로를 위로했다.  


나는 다짐했다. 

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들에게 불편한 스몰토크 따윈 하지 않기로. 

그들이 밝은 인사를 하지 않아도 절대 서운해하지 않기로. 


이 다짐은 경질이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팀장이 되고 나서도 다짐을 철저히 지켰다. 팀원들과 점심을 억지로 같이 먹으려 하지 않았고, 깔끔하게 일로서만 대하려 노력했다. 서로 출퇴근 인사도 꼬박꼬박 하지 않았다. 


물론, 감사 인사나 독려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사적인 선을 넘지 않았을 뿐이다.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간절히 원하던 환경이었으니까.


"양생이 님, 죄송해요. 시간 괜찮으세요?" 
"네, 물론이죠. 죄송하지 않아도 돼요." 


그러나 팀원과 나 사이에도 스몰토크처럼 반복되는 대화가 있었다. 


"양생이 님, 이런 부탁드려서 죄송한데..."

"죄송하다는 말 정말 하지 마세요. 이건 제 일이잖아요." 


그들은 나에게 말을 걸 때마다 '죄송하다'를 귀신같이 붙였다. 팀원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는 것만 같았다. 당장 넘을 수 있지만, 차마 넘을 수 없는. 만약 그 장벽을 적기에 해결했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테다. 






사람은 어쩌면 친한 게 다일지 몰라.


첫 번째 경질을 겪고 난 후, 오래된 친구를 불렀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동창이다. 10년 넘게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였다. 



친구는 기가 죽어있는 나를 끝도 없이 위로해 줬다. '이것 때문에 잘렸을까? 아니, 저것 때문에 잘렸을까?' 선생님답게 정답이 없는 질문을 하나하나 대답해 줬다. 좁은 테이블에 소주병이 하나둘씩 쌓여갔다. 


"요즘 반성하려고 리더십 책을 계속 보고 있는데. 이런 말이 있더라. 팀원들은 내가 사무실에서 무의식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걸 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평가한대."


리더는 광범위한 대인 기술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사고과정, 경험, 편견, 선입견, 감정, 행동 등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그가 어떤 리더인가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인생의 대부분이 그렇듯 리더십은 접촉 스포츠다.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상대가 필요하다.

≪수잔 애쉬포드, 유연함의 힘≫ 


"내가 인간적으로 매력이 없나? 왜 팀원들은 나를 어려워한 걸까? 말을 걸 때마다 자꾸 죄송하대.

"..."

"내가 쉽게 다가가기 힘들고, 바빠보인대."


염치없어 보일까 입 밖에 꺼내지 못한 말들. 경질을 당했다고 억울한 게 아니었다. 정말 이유를 몰라서, 바보같이 이해가 안 돼서 억울했다. 친구는 조용히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근데 그거 알아? 우리 반 애들도 너네 팀원들이랑 똑같다? 나랑 덜 친한 애들은 내 말을 잘 안 들어줘." 

"..."

"나도 마찬가지야. 유독 힘들게 하는 친구들이 매년 한 두명은 있는데."

"..."

"그 친구의 가정환경이나, 저학년 때 겪었던 일들을 알게 되면. 미웠던 게 사라지기도 해." 


아이들도 각자 사연이 있고, 원하는 것들도 다르더라. 

근데 이 모든 것들을 한 번에 알 수는 없어. 
학부모나 아이들이 모두 솔직한 건 아니니까. 
 
그래서 매일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대화하고, 관찰해야 해. 
내가 관심을 많이 가져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더라. 


"... 어쩌면 그냥, 사람은 친한 게 전부일지 몰라." 


 




인간은 어리석게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두 번째로 팀장이 되고 나서는, 팀원들과 자주 점심을 먹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딱 한 달. 개인적인 이유로 혼자 점심을 먹었었다. 얼마 가지 않아, 나는 두 번째 경질을 맞게 된다. 


온갖 동료들과 웃으며 인사하던 과장님이 생각난다. 꼰대스러운 담배 연기. 거북했지만, 그 연기 속에 고민을 내뱉고 나면 그날 하루만큼은 참 편했다. 과장님은 특히 다른 부서에 '곤란한 부탁'을 잘했다. 다른 팀원이 거절당한 일도, 과장님을 통하면 한 번에 해결됐다. 나는 부탁할 일이 생기면 그의 등부터 두드렸다.


"과장님, 이거 재무팀에 대신 말해주시면 안 돼요?" 

"아 왜 또 귀찮게~"

"과장님이 한 마디만 하면 끝나잖아요. 빨리 해주세요 빨리." 


돌이켜보니, 과장님께 '죄송하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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