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반성문 : 팀장에서 두 번 잘리고 나서야 깨달은 것들』 EP.7
초보 팀장의 직업병이 있다. TV도, 팟캐스트도, 유튜브도 리더십 교육으로 들린다. 무도 키즈인 나에게 재밌는 PD였던 <김태호>도 선배가 되었다. 팀장을 맡은 뒤에는 "이렇게 몇 명도 힘든데, 어떻게 수십 명을 데리고 일하지?" 궁금증이 들었다.
마음을 귀신같이 읽는 유튜브 알고리즘. 어느 날 김태호, 나영석, 이명한, 신원호 등 스타 PD 모두와 일해본 <김란주 작가>의 인터뷰를 추천해 줬다. 꽤 오래된 영상인데, 갑자기 눈에 띈 걸 보니 나는 '리더십병 말기'였던 듯하다.
각자 특징이 있냐는 MC의 질문에, 그녀는 스타 PD의 공통점을 말했다.
이런 질문들을 가끔 받는데 특징은 잘 모르겠고, (스타 PD들의) 공통점을 발견했어요.
회의를 하거나 의견 충돌이 있을 때, 그걸 계속 듣고 있기가 쉽지 않거든요.
근데 그분들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진짜로 들어요.
유재석 님도 김태호 PD, 나영석 PD 님과 똑같아요. 조세호 님 얘기도 다 들어주시잖아요.
≪유퀴즈온더블럭, 49화 중 발췌≫
경청.
당연한 거 아닌가?
경청을 안 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이 글을 보는 직장인이라면, 당연한 명제다. 팀장은 더 중요하게 생각할 테다. '제발 경청하지 마세요. 경청하면 리더십 작살납니다.' 외치는 책은 어디에도 없다. 요즘같이 '수평적 리더십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는 사회는 더더욱.
나 역시 팀장을 하면서 경청을 휘두르려 노력했다. 단, 애석하게도 타율은 낮았다.
최초의 경청은 대실패였다. 상사가 전수해 준 <질문 스킬>을 자주 썼었다.
"D팀원님은 어떤 목적으로 이 업무를 하셨어요?"
"E팀원님이 이렇게 처리한 이유가 따로 있으실까요?"
팀원이 잘못된 방향으로 일을 하고 있으면, 이유를 스스로 답하고 깨닫게 하려는 의도였다. '나는 팀원들의 의견을 모두 듣는 팀장이다.' 링크드인에서 유행하는 수평적 리더십을 실천하고 싶기도 했다.
결과는 역효과였다. 나중에 들으니, 어떤 팀원은 꽤 속이 탔던 모양이다.
"차라리 Z를 원하면, Z를 하라고 말했으면 좋겠어요."
"이미 원하는 게 있으신데 왜 제 의견을 물어보시나요?"
한 마디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인데, 왜 불필요한 소통을 하냐는 거다. 팀원 입장에서는 본인이 '잘못한 것'만 말하는 셈이니, 자신감이 낮아질 수 있다. 특히 '인정 욕구'가 큰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신기하게도, 타율이 좋았던 기간은 '내 본성(기질)이 가장 죽어있을 때'였다. 동료들이 다면 평가를 통해 '소통 역량' 최고점을 줬다. 첫 번째 팀장 경질 후 협업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든 상태였다. 당시 한 마디 한 마디 큰 힘이 되었다.
"그만두면 절대 안 돼요."
"진심으로 팀을 생각해 줘서 든든하고 감사해요."
"향상 업무를 할 때 상대방을 배려하고, 의견을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었다. 나는 팀을 진심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매일 아침 경청을 다짐하지도 않았다. 이직 후 적응을 위해 동료 의견을 먼저 묻고, 수렴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직한 회사는 어때?"
"좋아. 좋은데... 뭔가, 무채색 인간이 된 기분이야."
학창 시절 도화지에 여러 색깔을 계속해서 덮어씌웠더니, 검은색을 마주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마치 그런 기분이었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을 후순위로 두니, 동료들의 의견이 뒤섞여 정작 나라는 사람의 색깔이 완전히 죽어버린 기분.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스타트업에 도전했다. 그런데 여러 의견을 취합하고, 결론을 조율하는 역할만 하는 느낌이었다.
경영진은 <의견수렴형 의사결정>을 강하게 지적했다. 일리가 있다. 각자 다른 생각을 억지로 기워 맞춰 옷을 만들면, 스케치와 다른 옷이 완성될 수 있다.
지적을 받고, 경청을 과감히 포기했다. 마침 성수기가 코앞이라 목표 달성을 위해 주말을 반납하고 일을 했다.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할 일은 늘어만 갔다. 여러 의견을 수렴해서 돌아갈 여유가 없었다.
당시 나는 '빠른 성과'가 가장 중요했다. 이미 답이 있는데 예의상 의견을 물으면 답정너가 된다. 진심으로 각자 의견을 수렴하면 시간이 걸린다.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매번 내 기준 최선의 전략을 가정하고, 서면으로 업무를 요청했다. 반대에 부딪혔을 때, 예전에는 좋게 좋게 넘어갔다면 (결과가 좋을 거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질문하기도 했다. 상대방의 의견이 맞는지 실시간으로 판단하면서 들었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말을 끊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슬랙(메신저)으로만 툭, 툭, 얘기하니까 숨이 막히고 답답해요."
"평소에는 괜찮지만, 이따금 심각한 문제가 생길 때 소통하기가 어려워요."
이후 다면 평가에서 돌아온 팀원의 평가는 '답답하다'였다. 모두 예전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라고 말했던 사람들이다. 평가가 끝나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미안함을 전달했다.
"미안해요. 일을 하면서 바로 나한테 말을 해줬으면, 고치기 위해 노력했을 텐데. 왜 솔직히 말을 못 했어요."
"... 양생이 님이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시니까... 차마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팀원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한때는 한 명 한 명 의견을 구하고 반영했다. 돌아가는 길인 줄 알면서도 그랬다. 당시에는 '성과'를 위해 '경청'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일본 전국통일 일대기를 그린 ≪대망≫에서는, "리더는 모름지기 부하를 감탄시켜야 한다"라고 말한다.
전장에서 이길 뿐만 아니라, 그들을 감탄시키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게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부하란 녹으로 붙들어도 안되고, 가까이해서도 안되며,
화나게 해서도 안되고, 방심시켜서도 안된다.
부하란 대장의 인품에 반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고,
다른 말로 심복이라고도 하는데, 심복이란 사리를 초월한 데서 생겨난다.
감탄시키고 감탄시킴으로써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게 만들어가는 거야.
체력도 가신보다 뛰어나야 한다.
참을성과 아끼는 것도 가신보다 더하고,
생각하는 바도 가신을 넘어서야
겨우 가신들이 너한테 반하고 존경하며 떠나지 않지.
≪대망≫
'성과'를 위해 '경청'을 꼭 포기해야만 했을까?
지금은 냉정하게 핑계였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경청'은 사실 나에게 힘든 일이었다. 나의 납득보다 남의 공감이 먼저여야 한다. 한 명 한 명 의견을 구하는 게 시간도 많이 들었고, 알면서도 최선의 결과를 포기하는 경우도 생겼다.
나는 내가 벅차니 힘든 일을 포기했을 뿐이다. 진짜 경청을 하면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리더의 역할인데도 말이다.
모든 폭풍이 끝나고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어떤 이는 경청을 공감이라 말하고, 어떤 이는 수용이라 말한다.
내 생각은 하루키와 같다.
저는 최대한 내 쪽의 기척을 아래로 가라앉히고
상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수용하려고 합니다.
특히 인터뷰를 할 때가 그렇습니다.
철저히 집중해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나 자신의 의식의 흐름 같은 건 죽여버립니다.
그런 전환이 되지 않으면 정말로 진지하게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상대방이 말하는 그 순간만큼은, 나를 죽이는 것.
남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나를 죽이는 것이다.
남의 말이 맞는지 정말 생각하려면, 그 순간만큼은 내가 없어야 한다.
비록 내가 온갖 색깔에 뒤덮여 검은색으로 잠식될지라도.
수동적이고, 영혼이 없는 태도일 수 있다. 한시가 바쁜 회사에서 비효율적인 회의를 만들 수 있다. 스스로 효능감, 자신감이 줄어들 수 있다. 극단적으로 성과를 일부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까지 해야 상대방은 '경청'을 했다고 느꼈다.
경청이 당연하다고? 나를 죽이는 '진짜 경청'은 당연하기 힘들다.
살면서 나는 '진짜 경청을 이만큼이나 했습니다' 단언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