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반성문 : 팀장에서 두 번 잘리고 나서야 깨달은 것들』 EP.5
사수(師授). '스승에게서 학문이나 기술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마다 사수를 만난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직장에서는 먼저 입사한 선배, 출산을 하면 육아를 한 친구. 최근 유튜브라는 독학 도구가 있다지만, 아직 사람들은 도제식 교육에 익숙하다.
나도 '사수'를 적극 활용하는 편이었다.
채팅 API SaaS, 샌드버드(sendbird) 김동신 창업자는 '회사에서 본인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방법'으로 <추상화 레이어>를 언급한다.
본인의 직책뿐만 아니라 직책의 관점을 오가면서
일을 해야, 속도와 의사결정 퀄리티를 높일 수 있다.
1) 실무자는 매니저가 어떤 관점에서 팀을 운영하고 있는지,
어떤 항목의 우선순위를 높게 보는지 바라보면서 일을 해야 한다.
2) 매니저는 실무자와 디렉터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3) 디렉터는 실무자, 매니저, 총괄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김동신, 회사에서 본인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방법 - People Scaling≫
실무자의 '사수'를 매니저라고 간주해 보자. 매니저 관점을 파악하는 법은 심플하다. 중간 공유를 자주 하고, 수시로 의사결정을 받으면 된다. 직급 혹은 직책이 올라갈수록 시간이 부족하다. 이해관계자가 배로 늘어난다. 때문에 후배 혹은 팀원이 자발적으로 찾아오면 귀찮기 보다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든다.
비단 사수가 아니어도, 먼저 질문을 하면 싫어하는 상사는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세월을 아낌없이 공유하는 데 보람을 느낀다.
나는 이 '사수'가 팀장이 되어서도 여전히 존재할 줄 알았다.
여느 때처럼 적극적으로 찾아가면 되리라 생각했다.
첫째, 어느 누구도 팀원들을 팀장보다 많이 알지 못한다. 문제상황에 팀원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조언자가 아닌 팀장 스스로이기 때문이다.
팀장을 맡고 얼마 되지 않아 신규 입사자 C팀원을 받았다. 수습 기간 피드백을 줘야 하는데, 쓴소리도 있는지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막막했다. 먼저 직책을 맡았던 선배들의 조언을 구했다. 모두 비슷한 의견을 건넸다.
"우리 회사는 투명성이 중요해요. 그대로 얘기하세요."
"숨기면 나중에 탈이 납니다. 본인 스타일대로, 솔직하게 피드백 해주세요."
나는 곧이곧대로 C의 '장점과 단점'을 정갈하게 쌓아 보여줬다. 당신의 장점은 이러하니 적극적으로 살려보고, 단점은 저러하니 좀 더 보완해 보라고.
평소 한 쪽으로 치우친 '칭찬 혹은 비판'을 잘 믿지 않았다. 장단점 모두가 시소 양쪽에 올라가 균형을 이뤄야 마음이 편했다. 준비한 피드백은 투명하고, 솔직하고, 균형 있었다. 나라면 충분히 납득할 것 같았다. 그러나 C팀원에게 피드백을 준 다음날, 메시지 한 통이 왔다.
<C팀원 : 양생이님, 잠깐 시간 되세요?>
메신저를 보고 심장이 쿵 내려앉은 경험이 있는가? 직책을 맡았던 분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희소식으로 시간을 달라는 팀원은 드물기 때문이다. 순간 사무실에 스산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양생이 : 네! 물론이죠. 회의실에서 뵐까요?>
애써 태연한 척 키보드를 두드렸다. 역시나 회의실에서 마주한 건, C의 퇴사 통보였다.
C는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전 직장에서 겪은 트라우마로, 단점을 극복하는 회복 탄력성이 약해져 있었다. 또한, 사람이 극도로 스트레스받는 환경이 '이사'와 '이직'이라고 한다. 회사가 '내 편'이 아닌 '남 편' 같은 상황에서 본인의 단점을 들으면 더욱 불안해졌을 테다. C에게는 언론보도 같은 사실보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격려가 더 강하게 필요했었다.
칵테일 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라는 심리학 이론이 있다. '파티 참석자들이 시끄러운 주변 소음이 있는 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만 선택적으로 듣는 현상'을 의미한다. 팀원도 마찬가지다. 각자 겪어온 삶이 다르기에 귀에 꽂히는 이야기도 다를 수밖에 없다.
피드백도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이 필요하다. 커뮤니케이션은 발신자의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수신자가 나쁘게 받아들이면 끝이다. C의 수습기간 피드백은 명백한 실패였다.
몇 달 후 평소 존경하는 멘토와 *소프트 스킬(Soft Skill)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과거 저질렀던 <솔직함의 오류>를 그제야 깨달았다.
보통 사람들은 솔직함이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정감을 동반하지 않은 솔직함은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사람들은 정말 기가 막히게 관계를 맺습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편다'라는 말이 있죠.
사람들은 생각보다 신기할 정도로 누울 자리를 잘 찾습니다.
내가 안전한지,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지, 믿을만 한지를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것 같습니다.
둘째, 팀장이 상담을 많이 하면 회사는 '불안한 팀워크'로 해석한다. C팀원은 종국에 오해를 풀고 회사를 다니기로 했지만 해프닝은 고스란히 내 실수로 남았다. 어리석게도, 나의 사수찾기는 멈추지 않았다. 팀원 관리에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나만의 사수'를 찾아 조언을 구했다.
정답을 찾기 위해 많은 리더들을 찾아다녔다. 경영진, 임원진, 팀장급. 평소 친분이 없어도 거침없이 메시지를 보냈다. 그들의 조언을 하나하나 필기하고, 적용했다. 어떤 분은 차분하게 원인을 추론했고, 어떤 분은 따뜻하게 위로했다. 하지만 경영진의 마지막 평가는 차갑고 서늘했다.
"양생이님은 손이 많이 가는 관리자입니다. 여기저기 양생이님이 힘들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순수하게 '잘하고 싶어서' 요청했던 상담은, 스스로 '부족한 관리자'임을 널리 알리는 스피커가 되었다.
춘추전국시대, 진시황제의 중국 통일 과정을 그린 전쟁 만화 <킹덤>이 있다. 주인공 <이신>은 병사로 시작하여 전장에서 공을 세우며 진급해나간다. 진급을 하면 거느리는 병사의 숫자가 배로 늘어난다.
<십장>은 10명의 병사를, <백인장>은 100명의 병사를 거느린다. <천인장>은 1,000명, <오천인장>은 5,000명까지 다스린다. <장군>은 여러 <오천인장>들을 총괄한다.
만약 우리가 <병사>라고 가정해 보자. 10명이 함께 적을 향해 돌진한다. 가까이 있는 <십장>에게 물어보며 칼을 휘두를 수 있다.
드디어 공을 세워 <십장>이 되었다.
어제처럼 <백인장>에게 일일이 물어보며 싸울 수 있을까?
역으로 <백인장>은 <십장>에게 무엇을 원할까?
<천인장>은 <백인장>에게 무엇을 원할까?
<오천인장>은 <천인장>에게 무엇을 원할까?
<장군>은 <오천인장>에게 무엇을 원할까?
사람이 많을수록 전장과 전장 사이의 거리는 넓어진다. 판단이 안될 때마다 물어볼 수 없다. 즉,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승리하는 부대를 원할 것이다.
솔직히 속상한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책임을 다하고 싶기에, 내 시간을 들여 여기저기 조언을 구한 거니까. 하지만 회사는 수백 명, 수천 명의 먹고사는 문제를 책임지는 곳이다. 전쟁터나 다름없다. <장군>이 매번 찾아가서 해결해 줘야 하는 <오천인장>은 승리에 방해가 될 뿐이다.
몇몇 독자는 '공감을 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많은 리더십 책이 '초보 팀장은 주변에 조언을 구하라'고 말한다. 스스로 '팀장은 사수가 없다고 치자. 그래서 어디에 물어보라고?'라는 의문도 들었다. 아쉽지만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다.
2024년에 회사를 다닌다면, 최소 9,840시간 이상 동료들과 함께하게 된다. 거의 1만 시간에 육박한다. 나의 팀장 방식은 틀렸다. 그러나 가슴 깊이 깨달았다. 팀원 한 명 한 명의 1만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고. 사실,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정현종님의 시를 남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 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 고객이 기호에 따라 제품을 요구하면 생산자가 요구에 따라 제품을 만들어주는 일종의 맞춤제작 서비스.
*소프트 스킬(Soft Skill) : 기업 조직 내에서 커뮤니케이션, 협상, 팀워크, 리더십 등을 활성화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함. 생산, 마케팅, 재무, 회계, 인사조직 등의 일련의 경영전문지식은 '하드 스킬(Hard Skill)'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