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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생이 Oct 19. 2024

완벽주의 팀장의 함정

『팀장 반성문 : 팀장에서 두 번 잘리고 나서야 깨달은 것들』 EP.3

엄마는 경상도 출신이다. 기쁨이 100이면 20밖에 표현하지 않는 60년대생. 살면서 그녀에게 칭찬을 들어본 적이 손에 꼽는다.


엄마의 성격은 나에게 완벽주의를 선물했다. 한 번은 호기심에 *TCI 검사를 해봤다. 전문 상담사가 결과를 분석해 주는 심리검사다.


 “양생이님은, 지나치게 완벽하기 위해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사무실에서 완벽주의는 나의 무기였다. 일례로 상사가 100을 기대하면, 120을 가져갔다. 리서치를 원하면, 시키지 않은 아이디어를 함께 가져갔다.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책을 2개 이상 보고했다. 스스로 머리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부족하면 열심히라도 해야 한다.


가끔 어떤 동료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주무신 거 아니죠?" 둘만 있는 이른 오전의 사무실. 사람은 달랐지만 항상 같은 질문을 받았다. "적당히 해요. 그러면 오래 못 버텨요." 그들은 늘 번아웃을 걱정했다. 머리로는 알겠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이 완벽주의는 팀장이 되고 나서야 나에게 독으로 돌아왔다.



처음 팀장이 되고 착각한 4가지

첫째, 팀장은 완벽해야 한다.







완벽주의는 계륵도 취해버린다.



한때 우리 팀에 '계륵'인 업무가 있었다.


'계륵'은 삼국지 에피소드로 유명하다. <유비>와 <조조>의 한중공방전에서, <조조>가 한창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계륵'을 언급한다. '계륵'은 '닭갈비'를 뜻하는데, 장수들은 갑자기 '닭갈비'가 등장하는 이유를 알 턱이 없었다. 단 <양수>라는 장수는 달랐다. 총명했던 그는 <조조>의 뜻을 바로 알아챘다.


"닭갈비는 버리기는 아까우나, 먹을 것도 없습니다. 지금 <유비>와 다투고 있는 한중을 의미하니, 모두 철수할 준비를 합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업무. '계륵 업무'는 장기적으로 회사에 필요했으나, 아직 매출과의 연관성이 증명되지 않았다. 당장 이번 분기 성과를 낼 수 없었다. 스타트업은 투자자에게 매출 성장을 항시 증명해야 한다. 이 압박 속에서 '계륵 업무'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지 판단이 필요했다.


어느 날, 대표가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허덕이는 초보 팀장에게 혜안을 발휘한 셈이다.  


"양생이님. '계륵 업무' 말입니다."

"네."
"굳이 양생이님 팀에서 가져가지 않아도 됩니다."


100점 만점에 120점을 원했던 나는, 습관처럼 계륵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언제나처럼 열심히만 하면 못할 게 뭐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하시겠어요?"

"네,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계륵 업무'를 맡았던 A팀원은 나와 성격이 달랐다. 하드 워킹(Hard working)과 거리가 먼 사람. 회사에게 지적을 받기도 했다. 계륵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에 A팀원도 있었다. 사 측과의 신뢰를 회복했으면 했다.


"A님, 왜 퇴근을 안 하세요."

"아직 이 업무가 안 끝나서요."

"어떤 게 문제예요. 제가 도와드릴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진심이 닿았던 걸까. A팀원은 내가 팀장이 된 이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매일 같이 야근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간절함이 보였다.


당시 나는 안쓰러움보다 기대감이 컸다. 어쨌든 회사에 필요한 업무고, A팀원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A에게 나쁠 게 없다. 한심하게 코너에 몰린 팀원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만 꽂혀있었다.


분기가 끝났다. '계륵 업무'는 역시나 쓸모가 있었다. 팀의 목표 달성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 일부 아티클에 게재될 정도로 유의미한 사례가 되었다. 그러나, A팀원에게 계륵은 어떤 의미였을까?





모든 일은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 후유증이 남는다.



목표를 달성했어도, 마치 전쟁의 후유증처럼 우리 팀은 번아웃을 겪었다. 지속 가능성은 낮아졌고, 팀장 경질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팀원의 에너지가 분산되면 근무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직장인이라면 회사에서 크게 인정받는 업무에 집중하고 싶지, 적당히 인정받는 업무만 여러 개 하고 싶지 않았을 테다. 한편, 팀에 새로운 과제 역시 꾸준히 찾아왔다. 상반기에 100을 계획했다면, 예상치 못한 20이라는 업무가 반드시 끼어들었다. 결국, 팀은 120을 해야 한다. 완벽주의 팀장은 120을 계획했을 테니, 우리는 결국 140을 했어야 했다.


대표님이 말했던 '굳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못난 완벽주의를 채우기 위해, A팀원의 어깨는 항상 축 처져 있었다.





팀에도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메타인지>라는 말이 있다. 발달심리학자인 존 플라벨(J. H. Flavell)이 만든 용어로, 스스로 자기 역량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을 말한다.


돌이켜보면 놓아야 했던 것이 참 많다. 나는 우리 팀의 메타인지에 실패했다.


"양생이님.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하시겠어요?"

"양생이님. 이걸 왜 그 팀에서 붙잡고 있어요. 다른 팀에게 부탁하셔야죠."


팀이 메타인지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시간>이다.

<시간>이 모자라면, <역량>도 모자라다는 뜻이다. 팀원 대신 근무시간을 갈아 넣으면서 과도한 업무를 버텨내는 팀장이 있다. 나도 그런 케이스다. 그러나 팀장의 낮은 컨디션은 어떤 식으로든 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지속 가능성이 낮다. 팀원의 이탈이든, 팀 분위기가 나빠지든 꼭 탈이 났었다.  


<시간>이 모자라면, <거절>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성과를 내라'는 압박을 받다 보면, '병렬의 유혹'에 시달린다. 한정된 시간에 결과를 내기 위해 최대한 많은 업무를 동시에 하고 싶어진다. 특히 요즘처럼 '우연이 결과를 만들어내는 시대'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팀은 각자 다른 사람이 모인 곳이다. 사람마다 집중이 잘 되는 환경이 과연 같을까? 희영이는 카페에서 일이 잘되고, 민재는 사무실에서 일이 잘 된다. 미나는 1개씩 순차적으로 하는 게 편하고, 정현이는 여러 개를 동시에 하는 게 편하다.



[완벽]
‘흠(欠)이 없는 구슬’이라는 뜻.
결함(缺陷)이 없이 완전(完全) 함을 이르는 말.



팀장은 완벽해야 할까? 아니, 완벽하면 안 된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전제를 놓치게 된다. 오히려 '흠'과 '결함'을 찾아, '구슬'이 더 빛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진정한 나의 본분이지 않았을까.


*TCI 검사 : C.R.Cloninger의 심리생물학적 인성모델에 기초하여 개발된 검사로, 한 개인의 기질과 성격을 구분하여 측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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