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반성문 : 팀장에서 두 번 잘리고 나서야 깨달은 것들』 EP.1
오랜만에 독서모임을 했던 지인들을 만났다. 희소식을 알렸다. 사회생활 8년만에 팀장이 되었다는 소식이다.
"요즘 우리 회사 직원들은, 다들 팀장 하기 싫어해."
꽉 막힌 정장을 입은 남자가 대뜸 찬물을 끼얹었다. 대기업 인사팀에 근무하는 지인이었다. 축하해 줘도 모자랄 판에 무슨 소리인가.
"팀원들은 툭하면 퇴사하지, 예전처럼 군기 잡기도 힘들지. 관리는 힘든데 시간은 배로 드니까."
나름 일리가 있다. 고등학교 동창, 대학교 동창, 심지어 인적성 동창까지 만나면 모두 자기 회사를 욕했으니까. 그러나,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양귀자, 모순≫
당시 막연한 걱정보다 승진의 기쁨이 더 컸다. 불평 없이 야근한 지난날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애써 웃음을 지어보았다.
"에이, 무슨 초 치는 소리야. 좋은 일이잖아. 양생아 축하해!"
또 다른 지인이 내 눈치를 보더니 술잔을 들었다. 서로 다른 잔들이 어긋나듯 부딪혔다.
나는 그렇게 첫 팀장이 되었다.
내가 받은 초봉은 거의 최소 임금 수준이다. 대기업 공채에 모두 떨어져 자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돈'보다는 교육자였던 '부모님의 체면'을 살리는 선택을 했다. 엄마는 틈만 나면 대기업에 들어간 친척의 안부를 전해줬다.
원래는 스펙 한 줄을 채우고 공채에 재도전하고자 했다. 그러나 회사가 배치한 팀이 변수였다. 팀장, 대리, 사원 3명만 모인 신규 부서였다. 여느 회사가 그렇듯이 팀의 존재 이유는 실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전적이 없으니 해야 할 일은 산더미였다. 인턴임에도 내 책임은 대리급 만큼 늘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책임이라는 향에 홀린 듯이 회사를 다녔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나를 간절히 필요로 해준 곳이었다.
매일 남들보다 일찍 왔고, 늦게 갔고, 팀이 필요한 일은 거절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창문 너머 눈발이 내리고 있었다. 어느새 여름이 겨울이 되고, 나는 정규직이 되었다. 추운 겨울을 한 번 더 넘고 나니, 동급에서 인사고과 1위를 받았다. 특진 대상이 되었고, 입사 동기보다 연봉을 조금 더 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기껏해야 몇백만 원인데, 초봉이 배로 높은 또래가 길바닥에 널렸는데, 부끄럽게도 자부심을 느꼈다.
'이렇게 먹고살면 되겠다.'
그저 철 없이, 막연히 생각했다.
'매일 남들보다 일찍 오고, 늦게 가고, 더 열심히 하면 돈을 벌 수 있겠다.'
몇 년 후 규모가 더 큰 회사에 이직했다. 한 번 더 인사고과 1위인 S를 받았다. 연봉도 배로 올렸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밥벌이 수단이 안정적인 회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시대는 반대로 변해갔다. *디지털 트랜스 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 가속화되고 있었고, 선망의 기업은 삼성전자에서 *네카라쿠배로 이동하고 있었다. 나보다 어린데, 벌써 *스톡옵션으로 몇 억을 벌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모두 파도가 되어 바다로 나아가는데 나만 돌덩이처럼 우두커니 박힌 기분. 초조함은 늘어만 가는데, 사무실에 여기저기 소문낼 수도 없었다. 무력한 나날들이 익숙해질 즈음, 우연히 근처 회사에 다니는 대학 동기와 재회했다. 그녀 역시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팀을 벗어나 자주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무엇을 주로 먹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음식을 뒤로하고 회사의 조직문화, 일하는 방식, 정체된 사업 등 현재의 불안함을 토로하기 바빴으니. 가장 불안한 요소는 우리 스스로였다. '시키는 일만 잘하는 사람.'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학습하고, 해결한 경험이 부족했다. 우리는 회사를 벗어나면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에 불과했다.
동기와 만나지 않을 때는 판교의 황량한 공용 주차장으로 갔다. 구석에 자리한 중고 승용차에 들어가 유튜브 영상만 봤다. 홀린 듯이 이미 바다로 나아간 사람들의 성공담을 반복 재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기가 영상 하나를 보내줬다. 지금은 카카오 대표가 된 '정신아 대표'의 인터뷰였다.
https://youtu.be/2dAuX6e7xO0?feature=shared
처음에 *케이큐브 와서, "스타트업을 제가 잘 모르니까 스타트업 많이 만나자."
그래서 한 일주일에 30개 이렇게 만났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심지어 영역을 정의했어요.
이 영역될 것 같은데? 이 사업 모델 될 것 같은데? 이런 가설들이 있었어요.
근데 "가장 중요한 거는 정말 사람이구나"를 몇 번의 실패를 통해서 되게 뼈저리게 느꼈는데요.
사업 모델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그거를 이뤄내는 건 사람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커머스 사업을 한다고 하면 몇 년의 커머스를 경험했어.
혹은 학력, 무슨 대학 나왔어. 이런 게 생각보다 별로 안 중요하고요.
빠른 학습 곡선.
맨땅에 헤딩할 수 있는 기질,
지치지 않는 그릿(GRIT)의 정신.
끊임없이 집착해서 포기하지 않는 무언가.
이게 정말 중요하구나를 많이 느꼈어요.
≪정신아 대표≫
스마트폰을 덮고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N사 사옥 위, 판교의 널따란 하늘이 보인다.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세상은 이렇게나 넓었구나...
아, 스타트업에 가야겠다.
곧 같은 팀의 과장님에게 계획을 털어놓았다. 과장님은 전자담배를 물고 단호하게 내뱉었다. "나 아는 친구는 스타트업 갔다가, 망해서 놀고 있어." 안정적인 상장사에서, 내일이면 망할 수도 있는 스타트업에 간다는 선택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나는 채울 수 없는 갈증에 스타트업 면접을 봤다. 몇 번의 고전 끝에 이직에 성공했다. *시리즈 B 단계의 스타트업이다.
이곳은 시키는 일만 잘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기획하고,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충분한 훈련이 되지 않았기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랬듯 잘 이겨낼 거라 믿었다. '매일 누구보다 일찍 오고, 늦게 가고, 더 열심히 하면' 못할게 없다고 생각했다.
나 아는 친구는 스타트업 갔다가, 망해서 놀고 있어.
그리고 3년 뒤, 나는 팀장에서 두 번이나 잘린 신세가 되었다.
과장님의 예언대로, 망해버린 것이다.
*디지털 트랜스 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 디지털 기술에 의해 나타나는 비지니스 모델, 산업 구조 및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변화.
*네카라쿠배 :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 민족 등 떠오르는 IT 유니콘 기업을 빗대어 이르는 말
*스톡옵션 : 기업이 임직원에게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도 일정 수량의 주식을 일정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해 영업이익 확대나 상장 등으로 주식값이 오르면 그 차익을 볼 수 있게 하는 보상 제도.
*케이큐브 벤처스(K-Cube Ventures) : 스타트업 투자사
*시리즈 B : 스타트업 성장 과정에 따른 투자 단계 중 하나. 시드, 시리즈 A,B,C (...) 로 이어지며 IPO 혹은 M&A로 엑시트(exit) 할 때까지 계속된다. 시리즈 B 단계의 스타트업은 제품이 성공적으로 출시되었고, 사업 확장 및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경우가 많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요즘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