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생이 Oct 18. 2024

팀장에서 잘린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팀장 반성문 : 팀장에서 두 번 잘리고 나서야 깨달은 것들』 EP.2

팀장 경질 혹은 보직 해임. 혹자는 면팀장이라고 말한다. 통보받은 그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창문 너머 하늘은 야속하게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비라도 오면 좋을 것을. 날씨가 해맑아 눈물을 내뱉기도 민망했다.  


살다 보면 '심장이 죄여오는 느낌'을 한 번쯤 경험한다. 누군가는 그 경험을 좌절이라 부른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이런 좌절을 처음 겪지는 않았다.


부모님이 이혼의 위기를 겪었을 때. '내가 좀 더 착한 자식이었다면 서로 사이가 좋아졌을까?'

오래 만난 연인과 이별을 했을 때. '내가 좀 더 성숙했다면 헤어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더 자주했다면 이렇게 슬프지 않았을까?'


그리고 '팀장의 자격이 없다'라고 평가받은 30대의 어느 날. 나는 좌절감으로 몇 날밤을 뒤척였다. 어디서부터 후회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간 힘들었을 팀원들을 떠올리니 더 괴로웠다. 사실, 수치심에 가까웠다.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의미한다.





양심적인 사람이라 수치심이 든 게 아니다. 경질은 각각 다른 회사에서 진행되었는데, 거짓말처럼 한 달 전, (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지금 잘 하고 있습니다. 다른 회사들이 우리 팀을 벤치마킹하고 싶어합니다."

"맨땅에 헤딩하여 새로운 성과를 만들어냈고, 매출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산길을 따라 차근차근 내려오면 '하산'이 된다. 그러나 최정상에서 절벽을 따라 떨어지면 '사고'가 된다.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느낌이었다. 불과 한 달 만에,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팀의 상황을 감지하지 못해서 부끄러웠다.




첫 번째 경질을 맞은 날엔, 남 탓을 많이 했다. 회사 탓, 대표 탓, 팀원 탓.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대표님께 애원도 해봤고, 엄마에게 전화해서 목놓아 울기도 했다.


하지만 두 번째 경질을 당한 날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통보를 하는 리더의 뒤편에 맑은 하늘이 보였다. 작은 승용차에서 올려다 본 판교의 하늘이 생각났다. 순수하게 성장하고, 성공하고 싶었다. 그 맑은 마음이 까맣게 매연으로 뒤덮인 기분이었다.


'이제 멈춰야 할 때구나.'


경주마처럼 달리는 나를 세워야 한다.

뒤돌아보지 않으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회사는 '당신이 버거워 보여 연봉은 올리고, 직책만 내려놓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새까만 마음으로 일하면 모두에게 독이 되어버린다. 결국, 손에 가득 쥐고 있는 현실을 내려놓고 퇴사를 결정했다.






이후 일주일 동안 빠짐없이 술을 먹었다. 리모컨을 괴롭히며 유튜브를 돌아다니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실패, 좌절, 역경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검색했다.


https://youtu.be/U0gRyWqyZ0Y?feature=shared

"시간이 지나갑니다. 우리도 알어."


'시간이 약입니다 모두 지나갑니다.' 비슷한 위로를 반복해서 들었지만 유효시간은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았다. 침대에 누우면 심장이 죄여와 잠을 설쳤다.


그날도 술이 덜 깬 채로 청소를 했다. 스마트 TV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돌아갔다. 문득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학창 시절 인터넷 강의를 통해 들었던 목소리. 몇 년 전, '논문 표절 논란'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던 역사 강사 '설민석'이다.  


https://youtu.be/jLAFCfo5JwQ?feature=shared 


꿈인가? 아...꿈이었으면...

논란 이후, 그는 하루아침에 뒤바뀐 세상을 체감했다고 한다. 강의, 사업, 교육, 학생, 신뢰. 그가 쌓은 모든 게 무너져버렸다.


오늘 아침 내 마음과 같았다. 꿈을 꾸고 일어났는데, 지금이 정말 꿈인가 싶었다. 불과 지난주만 해도 차곡차곡 모은 적금을 보며 '내년에는 아파트를 사야지' 다짐했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백수 신세라니. 물론, '전국 스타강사의 몰락'과 비교하면 한낱 작은 일이지만 '한순간에 삶의 계획이 무너지는 느낌'은 너무나 공감이 갔다.


무엇보다 그는 공황장애, 대인기피...모든 것을 이 악물고 견딜 수 있었지만 단 하나. '본인을 믿어준 어린이 팬들'이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위가 취소된 대학원에 재시험을 봤다. 그리고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나의 잘못을 '정면돌파'하자.

그가 좌절을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내가 가장 마음에 걸린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 만화 '슬램덩크'를 좋아했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어중이떠중이들. 외인 구단이 모여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승리를 함께 만드는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만화의 영향인지, 대학교에서 조장을 도맡아 했다. *프리라이더 때문에 조모임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나는 요상하게 조모임이 참 즐거웠다. 한 사람이 모든 영역을 잘할 수 없다. 각자 타고난 재능을 살려,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때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어찌 됐든, 좋은 팀을 만들지 못했다.
내 마음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펜을 든다. 앞으로 펼칠 이야기는 흔한 팀장의 성공담이 아니다. 험난한 스타트업에서 살아남는 노하우도 아니다. 지리멸렬한 회사의 인간관계를 욕해주는 글도 아니다.


'좋은 팀을 만들지 못한' 어리석은 팀장의 후회담이다.

'회사의 인간관계도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서야 깨달은 30대의 자기반성이다.


이제 막 팀장이 된 초보 팀장님에게,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반면교사가 되기를.

직장에서 힘든 관계를 겪는 분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프리라이더 : 학교에서 조별 과제를 할 때 아무런 노력이나 참여를 하지 않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