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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생이 Oct 20. 2024

흑백요리사 팀전, 정지선 셰프가 말하는 패배의 원인

『팀장 반성문 : 팀장에서 두 번 잘리고 나서야 깨달은 것들』 EP.6

생일을 앞둔 쌀쌀한 가을, 나는 첫 팀장이 되었다. 당시 상사가 생일을 축하한다며 초보 팀장의 바이블 도서, ≪팀장의 탄생≫을 선물했다.

"이제 양생이님은 본인이 아닌, 팀의 성과로 평가될 거예요."


금융 도서 ≪레버리지(Leverage)≫는 돈(자본)을 지렛대처럼 활용하여 자본을 배로 늘리자고 주장한다. ≪팀장의 탄생≫은 돈이 아닌 사람을 활용하여 성과를 배로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기린 팀장은 시간당 레모네이드 20잔을 팔 수 있다고 해보자.
돼지 팀원과 악어 팀원은 각각 시간당 15잔을 팔 수 있다. 일일 영업시간은 네 시 간이다.

기린 팀장이 셋 중에서 레모네이드를 가장 잘 파니까
내가 판매대를 맡는 게 시간을 효과적으로 쓰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기린 팀장은 하루에 80잔을 팔고 돼지와 악어 팀원은 60잔을 판다.

그런데 만일 기린 팀장이 다른 일에 시간을 쓴다면?
돼지 팀원과 악어 팀원에게 "레모네이드를 잘 파는 요령"을 가르친다고 해보자.

만일 교육에 30시간이 걸렸다면,
기린 팀장이 레모네이드 600잔을 팔 수 있었을 시간이다. 매출을 많이 포기한 셈이다.

하지만 교육을 통해 돼지 팀원과 악어 팀원이 시간당 15잔이 아니라
16잔을 팔 수 있게 된다면 하루에 두 사람이 총 8잔을 더 팔게 된다.
판매량이 소폭 증가했을 뿐이지만 석 달도 안 돼서 기린 팀장이 팔지 못했던 600잔이 채워진다.

그들이 1년 동안 일한 다고 치면
기린 팀장이 30시간 동안 레모네이드를 팔지 않고
교육을 한 결과로 2,000잔 이상이 추가로 판매된다!

기린 팀장이 레모네이드만 판다면 사업에 ‘덧셈’ 효과만 줄 뿐 ‘곱셈’ 효과는 생기지 않는다.
관리자보다는 *개별기여자에 가깝기 때문에 형편없는 관리자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줄리 주오, 팀장의 탄생≫ 요약글 중 발췌


이제 나만 잘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도 함께 잘해야 한다. 가슴이 떨렸다. 당시 나는 그 떨림이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처음 팀장이 되고 나서 착각했던 4가지

첫째, 팀장은 완벽해야 한다.

둘째, 팀장은 승진의 결과다.

셋째, 팀장도 사수가 있다.

넷째, 팀장은 성과가 가장 중요하다.



팀장의 숙명, 성과 VS 리텐션


IT 스타트업에는 숙명의 밸런스 게임이 있다. '속도 VS 안정성'. 투자 받은 만큼 매출을 내기 위해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 한편 속도가 빨라질 수록 미처 챙기지 못하는 *기술 부채가 쌓인다. 두서 없이 부채가 쌓이면 제품 안정성이 저하되고, 감당하기 힘든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


팀장도 숙명이 있다. '성과 VS 리텐션'. 인사(HR)용어로 리텐션(Retention)은 '구성원이 이탈(퇴사)하지 않는 유지율'을 의미한다.


팀장을 하며 들었던 경영진의 조언 중 공통점이 있다.


"리더는 팀원에게 성공 경험을 주면 됩니다. 리더의 의사결정을 따라 해서 성공하면, 팀원의 신뢰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산업 구조를 바꾸고, 수백억 투자를 받은 경험이 낳은 교훈. 의심할 수 없는 명제다. 다만 한 가지 내가 간과한 점이 있었다. 성공에 이르는 과정도,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요리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의 <흑백 팀전>이 화제다. 심사위원 100명이 보는 앞에서 백수저 <조은주 팀>과 흑수저 <트리플스타 팀>이 요리를 만든다. 요리 선정부터 완성까지 모든 과정을 심사위원이 지켜본다. 결과는 흑수저팀의 승리. 백수저팀 요리에 45명, 흑수저팀 요리에 55명이 투표했다. 간발의 차이다. 백수저팀의 요리도 충분히 맛깔스러워 보였다.


https://youtu.be/ofVWprA4uwM?feature=shared


백수저 팀원 <정지선 셰프>도 인정했다. "과정은 엉망이었지만, 음식 완성도는 정말 좋았어." 그러나, 완성도가 높아도 그 과정이 패배의 원인이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끝나고 반성 되게 많이 했어.

아 이렇게 하지 말걸.
좀 더 단합을 해서 뭔가를 의견 조율을 많이 할걸.

되게 아쉬웠어.

위에서 심사위원들이 봤을 때 진짜 비교가 많이 됐겠다.
저쪽은 단합이 되게 잘 됐는데,
우린 왜 이래? 약간 이런 느낌.

≪정지선의 칼있으마 유튜브 발췌≫


과정을 지켜보는 심사위원은 강남 한복판에도 존재한다. 2화에서 말했듯 내가 맡은 2개의 팀 모두 성과는 좋았지만, 리텐션에 문제가 생겼다. 퇴사를 한 팀원도 있고, 설득을 통해 붙잡힌 팀원도 있다.


회사는 이 성장통을 이해해 주지 않았다. 직원 한 명을 입사시키려면, 평균 천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짧은 근속연수는 회사의 손해가 된다. 팀의 불안은 회사의 리스크가 된다. 팀장 경질은 당연한 처사였다.


 출처 : 사람인





 1 + 1 = 2

수학공식처럼, 사람의 마음도
원인과 결과가 딱 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없기에 서점에 수많은 리더십 책이 있을 테다. 나 역시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가장 아쉬운 점으로 '시간 분배'를 꼽고 싶다.



이제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16세기 세상을 뒤집은 논쟁이 있었다. 천동설과 지동설. 과거 많은 사람들은 '지구를 모든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했다. 우주의 행성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믿었다. 그 믿음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이 갈릴레이다. 그는 지구가 주인공이 아니라고 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와 여러 행성들이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21세기, 새로운 세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변했다. 과거 부모님은 가족이나 회사를 우선시했지만, 90년대 이후 출생한 친구들은 더 이상 집단에 희생하지 않는다. 사무실 안에서 '지킬'이 되고, 사무실 밖에서 '하이드'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캐가 하나 이상은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가장 중요하고,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

생각의 수용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다양한 개인의 삶인데 자꾸 하나의 방식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정상성’을 강요하면 출발부터 대화가 어렵습니다.

집단주의적 사고가 힘을 얻은 이유는 효율이 최고의 기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는 본인의 욕망을 표출하는 것을 금기시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교류의 대상이 넓어지고 접점이 커지며
다양성을 고려해야 하는 사회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인식한 핵개인들이 다양성을 원하고 있기에
다양성을 배제한 채 말하는 순간 새로운 세대와의 커뮤니케이션에 벽이 생깁니다.

조직에서도 이쪽과 저쪽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사람,
복잡하고 어려운 말을 쉽고 간결하게 해주는 ‘통역자’가 뜰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최적화를 향한 추세와 부합합니다.
그동안 무시했던 구성원의 개개인의 선호를 모두 맞춰주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수직적 관리자를 뜻했던 ‘매니저’의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수평적 조력자를 뜻하는 ‘퍼실리레이터’의 역할이 부상할 것입니다.

권위가 전문성과 쌓아온 과정에 대한 보상이라면
핵개인의 시대에 권위 획득의 주체는
점점 더 조직이 아닌 개인이 될 것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송길영, 핵개인의 시대≫


기업은 이미 알고 있다. 복지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지 않나. 하지만 일 평균 10시간 이상 사무실에 살았던 나는 거시적인 사고가 어려웠다. 생각이 몇백 평 사무실 안에서만 맴돌았다.


내 시간은 '채용', '성과', '팀원'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었는데,어리석게도 시간이 모자라면 '팀원'에 대한 시간을 가장 후순위로 두었다.


팀원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

오늘은 어떤 기분이고, 내일은 어떻게 하고 싶은지.

팀원들도 각자의 세상이 있었을 테다. 나는 그 세상에 입성하지 못했다.

서로 다른 후유증을 예방하는 방법은 물론이고, 치료 방법조차 알기 어려웠다.  






양생이님 때문에, 우리 회사 직원들이 모두 나가면 어떡할 겁니까?


아직도 이 질문이 가슴에 못처럼 박혀있다. <MZ 세대의 줄 퇴사>. 90년대에 태어난 나와 친구들도 흔히 하는 거였으니 언론 기사를 봐도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내 책임이 되니 아틀라스처럼 거대한 퇴사의 무게를 지고 사는 기분이었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어 더 무거웠다. '퇴사'라는 단어를 꺼낼 때까지 얼마나 자신의 미래를 재어보고, 재어보고, 또 재어봤을까. 유튜버니, 스마트스토어니 유행한다지만 '남들만큼 살라' 교육받은 우리들은 시작조차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다.


사무실 밖이 무서운 걸 알아도, 사무실 안이 숨이 막혀 나가고야 마는 심정. 나는 십분 이해한다. 알면서도 그 지경까지 이르게 한 스스로가 한심하고, 미안했다.




이제 팀장은 실적뿐만 아니라, 달성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과정이 매끄러우려면, 시간을 들여서 팀원 개개인을 모두 들여다보아야 한다.


팀장이 되기 전에는, 회사의 인간관계가 참 힘들고 싫었다. 회사는 '일하러 오는 곳'인데 왜 '사람에게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극히 오만한 생각이었음을 깨닫는다.


래퍼 빈지노는 '결혼 생활도 엄연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결혼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 결혼 생활도 나는 일 같더라. 커리어처럼 해야 된다. 이걸 내가 결혼한 집이라고 여기를 그냥 내가 혼자 살듯이 와서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


결혼도 노력이 필요한데, 하물며 생계가 오고 가는 직장은 어떠한가. 회사의 '인간관계'도 '일'이고, 결국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 편부터 'MZ 세대의 퇴사를 통보받고 깨달은 교훈 3가지'를 통해 부족했던 내 노력을 회고해 보고자 한다.


*기술 부채(technical debt) : 현 시점에서 더 오래 소요될 수 있는 더 나은 접근방식을 사용하는 대신 쉬운(제한된) 솔루션을 채택함으로써 발생되는 추가적인 재작업의 비용을 반영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한 관점

*부캐 : 부 캐릭터. 자신이 사용하는 주요 캐릭터 외의 캐릭터를 이르는 말.

*개별기여자 : individual contributor, 관리 책임 없이 실무에 매진하는 사람으로, 줄여서 ‘IC’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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