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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al Young May 29. 2023

침묵이라는 것의 무게

엉터리 "신점"을 보러 다녀오면서 깨달은 것들

어떤 사람과 마주보고 앉아 있을 때의 나는 침묵이 가져다 주는 무거운 공기의 무게를 못 견디는 타입의 사람이다. 나를 스스로 새털같이 가벼운 사람인 듯 포장하여,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없으면서 두서없이 아무말이나 막 호들갑스럽게 떠들면서 온 몸으로 "난 어색하지 않아. 난 어떤 사람과도 잘 어울릴 수 있는 굉장히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이야." 라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그 침묵을 깨버리고 대화를 쉼없이 이어간다. 그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 사람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을만큼 지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떠한 것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시간이 못 견디게 불편했던 기억만이 남아 다시는 그 사람을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침묵"의 중요성과 이유 그리고 방법을 알게 되었다. 바로 "용한 느낌의 점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친구랑 여행 도중 밤 6시가 되어 가는데 우연에 이끌려 점집을 찾으면 뭔가 굉장히 "용한 점집"으로 우리의 운명이 우리를 이끌어 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검색을 하기 시작했고, 가까운 곳에 "용한 느낌의 점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신내림을 받으신 무속인 분이 하는 점집이었다. 많은 경험을 해 보지 못한 영역이어서 무서움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묘한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나와 반대의 성격을 가진 친구가 이야기 했다. "나는 점집에 가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그래야지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을수가 있거든. 그럼 그 사람이 용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거든!"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점집에가서도 호들갑스럽게 점을 봐 주시는 분이 하나를 이야기 하면 내가 먼저 더 많은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침묵으로 일관해 보기로 결심했다. 침묵을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나는 대화의 모든 역량과 스킬이 없는 사람인 듯 들어가서 단 한가지 "침묵"만을 유지하기로 결심했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침묵이 주는 무거운 공기와 그리고 그 장소가 주는 묘한 긴장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어서 '난 이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아! 나는 겁먹지 않았어!' 라는 표현을 온몸으로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 거렸지만 오로지 "침묵"하나만을 지키기로 했기 때문에 의외로 쉽게 차분히 나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아저씨가 묻는 말에 단답으로 대답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더니 어느 순간부터 아저씨가 느끼고 있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내가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점을 봐 주시던 분께서 나에게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 여기는 왜 왔어? 라며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아무말이나 뱉고 있는 모습이 침묵이 싫어서 말을 막 뱉어내는 나의 모습과 똑같아 보였다.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고,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때부터는 모든 상황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 느껴졌고, 그 사람의 말에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나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 해 주는 아저씨의 입과 눈과 표정과 손동작을 찬찬히 살피며 차분히 점괘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알고 싶어서 왔어요! 저는 미래에 이 두가지 내용에 대해서만 듣고 싶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나니 더욱 더 선명해 졌다. 내가 질문한 두 가지의 결과는 이 사람이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만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구나! 이 아저씨가 해 줄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저씨는 일어서는 나를 보며 "다시는 점보러 오지 마세요. 답을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나한테 와서 물어? 나한테 오는 사람들은 이런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이렇게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10만원 올려놓고 나가요" 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비싼 것 같아, 5만원은 어떠실까요? 라고 이야기 했더니 헛웃음을 치시며 5만원을 놓고 가라고 하셨다. 주도권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사람을 마주하여 대하는 순간들을 꽤 많이 경험한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큰 관심이 없이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현저히 떨어져있었다. 성선설이라는 그늘 아래 모든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라는 순수한 마음만 가져야지! 라고 결심한 채 , 늘 나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포장해서 각인시킬지에 대해서만 고민해 왔다. 이것이 내가 침묵을 못 견딘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 사람이 나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어떠한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 내가 주입하는 나의 이미지를 그 사람에게 각인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성격 좋은! 털털한! 순수한! 이라는 이미지로 말이다.


이렇게 살아와서 내 대인관계는 엉망진창이었던 것 같다. 아니 멀리서 보는 나의 이미지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처럼 즐거운 것 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가 바라보는 나의 대인관계는 엉망진창이었다. 사람에 대해 알 수 없어서 암흑 속을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었고, 어두운 곳에서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있는 불안함과 무서움이 항상 존재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늘 나의 고민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침묵으로 어떤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 그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인지 어떤 마음인지 미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관계의 주도권이 나에게 왔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마주한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그 침묵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남녀가 만날때, 선생님을 만날때, 입학해서 친구를 처음 만나는 순간에도, 어떤 물건을 사거나 팔때, 계약 성사를 위해 비즈니스를 할 때, 면접을 볼 때 등이다. 침묵을 그 누구보다도 불편해 하는 나였지만, 침묵은 의외로 많이 어렵지 않았다. 생각보다 쉬웠다. 그 무거운 공기를 무시하면 사람이 보였다. 세상에 갑을 관계는 계약서에만 존재하는 것 같다. 갑을 관계를 만드는 것은 관계의 주도권이고, 관계의 주도권을 만드는데 침묵은 꽤나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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