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볼 게 많은 구도심 & 탈린 여행 시 알아두면 좋은 내용들
지난 글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TENET 영화 촬영지를 중심으로 탈린 여행기를 풀었다면, 이번 글에서는 둘째 날 아침에 탈린 구 시가지를 구경했던 후기와, 탈린 여행 전에는 잘 몰랐지만, 알아두면 좋았을 여행 팁을 몇 가지 담았다. 앞의 글이 2박 3일 여행의 막바지를 담았다면, 여행 첫날과 둘째 날의 이야기가 여기에 더 많이 담겨 있다.
탈린 구시가지는 전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과거 탈린의 모습이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많이 만나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른 분들이 썼던 탈린 여행기를 읽어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침 일찍 날이 더워지기 전에 탈린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는 구 시가지의 가장 높은 지대까지 올라가고, 내려오면서 박물관 한 두 개 정도를 보는 계획을 세웠다. 날이 아주 덥지는 않았지만 올라가야 할 계단과 언덕이 조금 있었기에,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올드 타운 여행의 시작은 Viru Gate에서 시작했다. 이곳은 탈린 구도심 방어체계의 일부이며, 14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탈린 구도심 방벽이 오늘날 모두 남아 있지는 않고, 정문에 해당하는 Viru Gate 역시 구도심이 확장되면서 일부를 허물었지만, 사진에 찍힌 부분은 보존되어 있었다. Viru라는 이름은 오늘날 북부 에스토니아를 의미하는 지역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해당 지역 근처에 무역에 쓰였던 점토가 많이 난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설명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지만, 구글링을 해 보면 그런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고, 그냥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명도 있다.
Viru Gate를 통해 구시가지로 들어가니 큰 광장이 나왔고, 그 광장에서 알렉산더 네프스키 대성당 (Alexander Nevsky Cathedral)과 에스토니아 국회의사당이 있는 언덕 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가니 먼저 알렉산더 네프스키 대성당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1900년에 지어진 러시아 정교회 성당으로, 헬싱키에서 봤던 러시아 정교회 성당의 모습과 다른 면도 있었지만, 또 비슷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내부에 들어가니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사제와 미사를 보는 신도들이 있었고,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이미 유럽의 여러 성당과 교회를 방문했기에 큰 감흥은 없었지만,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는 확실히 이런 정교회 성당을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국적인 정취가 느껴졌다.
성당 맞은편에는 과거에는 에스토니아를 지배했던 세력들이 사용했었고, 현재는 에스토니아 국회 건물로 쓰이는 에스토니아 국회 의사당의 전면부가 있었는데, 청소 혹은 공사 중이어서 많은 것을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건물 밖에 있는 안내판에 있는 내용을 읽고 건물의 간략한 역사는 알 수 있었다. 에스토니아 주요 관광지와 박물관에는 에스토니아어 표기와 함께 영어 표기가 대부분 잘 되어 있어서, 건물이나 유적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관광객들은 어렵지 않게 자료를 찾아볼 수 있었다.
성당과 국회의사당 건물을 구경한 다음 10분 정도 걸으니 탈린 도심을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가 두 곳 나왔다. 가는 길에 단체관광객 무리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인도, 독일, 프랑스, 중국에서 온 가이드 투어 팀을 만날 수 있었다. 아침에는 날이 흐렸지만, 전망대에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날이 맑아서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내려가는 길에 역사박물관에 들어가서 특별 전시와 상설 전시를 관람했다. 특별 전시는 왜 에스토니아가 왕국 체제를 갖추지 않았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나는 이 특별 전시가 더 흥미로웠다. 상설 전시 내용은 사실 조금 부실했다. 에스토니아 탈린의 경제권을 쥐고 있던 길드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는데, 내가 더 관심을 가졌던 근현대사 관련 내용은 아무래도 다른 박물관에서 보아야 하나 싶었다. 전시 규모에 비해 입장권 가격은 상당했는데, 3일 차에 방문한 에스토니아 국립 미술관과 입장료가 동일한 것으로 보아 국립 박물관은 모두 14유로 정액제로 운영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공항에서 내려서 티켓을 구입하지 말고 버스/트램에서 찍기: 공항에서 내려 입국장에 도착하면 버스 정류장에 나가기 전에 대중교통 티켓 자동판매기를 볼 수 있다. 여기서 티켓을 사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1시간에 2유로, 24시간권은 5유로, 3일권은 9유로 등으로 가격이 다양한데, 그냥 버스나 트램에서 카드, 혹은 페이로 결제할 경우 가장 싼 요금제로 알아서 계산이 되기 때문이다. 버스나 트램에 찍는 곳은 여러 군데가 있지만, 비자, 각종 페이 서비스, 마스터 카드 로고가 있는 단말기만 내 카드를 인식하는 것 같았다 (애플페이는 비자카드, 일반 신용카드는 마스터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신호등이 없더라도 당황하지 말기: 탈린 시내에는 가끔 4차선 이상인데도 불구하고 신호등이 없이 횡단보도만 있는 경우가 있었다. 차들이 사람을 보면 잘 서는 편이니 당황하지 말고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건너면 될 것 같다. 신호등이 있는 곳에서는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 아무래도 낫다. 일부 신호등은 버튼을 눌러야 신호가 바뀌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는데, 웨덴에서 쓰는 시스템과 같은 시스템이라서 역시 당황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현지인들은 무단횡단을 많이 했지만, 나는 원래 되도록 무단횡단을 꺼리는 성격이다 다소 우둔하게 신호를 기다렸다.
생각보다 현금 쓸 일이 없음: 어딜 가나 카드 결제, 혹은 페이 결제가 가능했기에 나는 에스토니아 여행을 하면서 현금을 1유로도 사용하지 않았다. 나처럼 유로를 쓰지 않는 국가에 거주하는 사람에게는 환전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고, 비록 7년 전이기는 하지만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에서는 현금을 사용할 일이 꽤 있었기에 탈린은 어떠려나 싶었지만 모두 기우였다. 물론 굳이 현금을 쓰겠다는 사람을 말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현금을 받지 않는 가게는 없었다 (필자가 거주하는 스톡홀름 시내에는 현금을 받지 않는 가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생각보다 자전거 도로가 잘 구축되어 있음: 생각했던 것보다 시내에는 자전거 도로가 잘 구분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자전거보다는 전동 킥보드 이용자들이 주로 자전거 도로를 이용했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딜 가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여기도 전동 킥보드 이용자들의 운전 매너가 험하다. 그래서 길거리에서는 되도록 이어폰을 착용하지 않고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려고 노력했다.
7월 중순 탈린 날씨: 날씨는 매년 다르고, 매년 더워지고 있지만, 7월의 탈린은 스톡홀름과 비슷한 수준이되, 좀 더 바닷바람 (그리고 특유의 바다냄새)이 강한 느낌이었다. 아침저녁으로는 바람막이가 알맞은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중간에 비가 오면 제법 내리는 광경도 목격했다. 비 예보가 있다면 방수가 되는 바람막이와 방수가 되는 신발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장 놀랐던 점, 탈린 시내 물가: 내가 가장 놀랐던 점은 탈린 시내 물가였다. 대중교통 비용이라든지 숙소는 저렴한 편이었기에 물가 수준이 스웨덴보다는 낮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유로가 스웨덴 크로나보다 비싼 것을 감안하더라도 탈린 물가가 비슷하거나 심지어 더 비쌌다. 빵이나 물은 스웨덴보다 저렴했지만, 단순 비교가 더욱 쉬운 공산품들의 가격은 전반적으로 탈린이 더 비싼 느낌을 받았다. 탈린 교외로 나가면 물가가 조금 더 저렴할까 싶기도 하지만, 필자는 탈린 시내에서만 2박 3일을 머물러서 비교하기 어려웠다. 외식 물가 역시 만만치 않았다. 탈린 임금이 스톡홀름보다는 평균적으로 낮을 것이 분명하지만 스톡홀름에서 비슷한 음식을 먹는 것과 비교하면 양과 음식의 질을 고려할 때, 탈린이 확실히 싸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에스토니아의 실질구매력을 반영한 1인당 GDP는 2022년 기준 약 28,200 달러, 스웨덴은 약 56,300 달러로 스웨덴의 1인당 소득이 에스토니아보다 두 배 정도 높음은 감안할 때, 아마도 탈린 사람들이 스톡홀름 사람들보다 살기 더 퍽퍽하다고 느낄 것 같다. 어쩌면 코비드 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 유럽을 강타한 인플레이션이 에스토니아에게는 더 혹독했는지도 모르겠다.
시내에서 매우 가까운, 작고 아담한 공항: 시내와 공항이 매우 가까웠다. 탈린 시내의 내 숙소 기준으로는 4km가 채 되지 않았는데, 4km 정도면 스톡홀름에 필자가 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버거킹 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트램과 버스를 이용하면 시내에서 공항까지 30분 안팎이 걸린다. 게다가 공항의 규모가 작은데, 보안검색대는 물건을 일일이 꺼내 놓지 않는 신형 기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공항에서 소요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다. 만약 체크아웃과 출국 일정 사이에 시간이 난다면,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공항에서 보내는 시간은 최소화하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공항은 단일 터미널로 운영되고, 규모에 비해서는 게이트가 적지 않는 편이라서 꽤 붐볐다. 그리고 노트북을 이용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아서 시간을 보내기에 썩 좋은 곳은 아니었다.
탈린 여행을 끝으로 나는 스웨덴의 이웃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러시아를 제외하고 모두 방문했다. 논문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주말 치기 여행을 한 번은 가자는 목표는 이로서 달성했다. 과거 에스토니아의 수도였던 타르투를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특별한 일이 없으면 타르투 방문을 위해서 또 에스토니아를 방문할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이곳은 정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하는 곳이 될 수도 있겠다. 한국에서 에스토니아만 구경하고자 15시간이 훌쩍 넘은 비행을 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지만, 필자와 달리 잠깐 배 타는 것이 괜찮다면 헬싱키에서 페리를 타고 반나절이라도 구경하는 것은 적극 추천할 만한 곳이다.
사진 출처: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