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움켜쥐고 있으면 왜 썩을까?
어리석음을 돌아보며 1
나는 질문을 좋아한다. 질문을 하는 것과 받는 것 모두 그렇다. 특히 질문을 가지고 함께 삶을 이야기하는 걸 가장 좋아한다. 이런 특징이 둘씩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는 하브루타를 일상에 가져온 배경이다.
하루하루 일상에서 떠오른 질문과 이야기들은 오늘을 사는 즐거움이 되었다. 질문과 이에 대한 궁리한 흔적들을 글로 남기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았다. 책 출판에 대한 기대나 염두 없이 그냥 편하게 그날그날 블로그에 기록했다. 1년이 지나니 한 권의 책으로 낼 만한 분량이 되었다. 2014년에 고인이 되신 전성수 교수님께 제안을 받아 2015년 7월에 <질문이 있는 교실(중등편)> (경향BP, 2015) 을 공저를 하였다. 인생 첫 책이니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그런데 글쓰기 슬럼프는 아마 첫 책을 내고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전까지는 글을 꾸준히 쓰지 않았다. 일기 형식으로 하루 소회를 남기는 정도였다. 일정 분량의 글을 매일 기록하는 일상은 없었다. 첫 책을 낸 후로 내가 쓰는 글이 곧 아이디어가 되고,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가 내 아이디어를 보고 먼저 책을 낼 것 같은 막연한 걱정이 밀려 왔고, 더 이상 블로그나 카페에 글을 쓰지 못했다. 정말 그랬다. 노트북에 잘 모아 두었다가 두 번째 책을 내는데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런 나의 결정은 결국 두 번째 책, <하브루타 디베이트 밀키트> (글라이더, 2022)를 내기까지 7년을 낭비하게 했다. 첫 책을 쓰고서 두 번째 책은 길어도 2,3년 안에 쓸 것이라 예상했다. 왜 7년이란 공백이 생겼을까? 블로그나 카페에 글을 올렸을 때는 글 나눔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이 없었다. 일상과 삶을 기록하는 자체가 즐거웠고, 내 글에 대한 사람들의 댓글과 피드백이 재밌었다. 사람들의 질문을 받고 나는 다시 대답을 하고 또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런 과정이 결국 내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만들었다.
내 지식이나 경험을 움켜쥐고 있으면 썩는다는 걸 배웠다. 한동안 내가 경험한 깨달과 새롭게 알게 된 지식과 대단한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알고 보니 해 아래 새것이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렸다. 작년 8월에 출간된 두 번째 책이 어떻게 살아 있는지 궁금했다. 검색을 하여 책 있는 곳을 찾아갔다. 가정 분야의 맨 밑, 귀퉁이에 꽂혀 있는 걸 발견했다. 누가 이곳에 이런 책이 있는 걸 알까? 나는 책 위치 검색을 하여 겨우겨우 찾았는데 말이다. 내 책이 있는 책장에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야기들이 빼곡했다. 교보 문고 안에는 세상과 인간과 삶에 대한 기록들이 가득 가득 넘쳤다. 내가 가진 것이 뭐라고 왜 그렇게 움켜쥐고 다른 사람들이 먼저 책에 활용할까봐 아까워 했을까? 결국 내 경험은 고인물이 되어 썩어 버렸던 것이다. 노트북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글들은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여전히 서너 개의 폴더에서 잊혀진 채 머물러 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물론 나중에 책 출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지만 지식과 경험을 함께 나누면서 다른 사람들과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면서 소통하는 삶, 그것이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가정과 학교에서 경험한 소소한 일상은 기록 여부와 관계 없이 그 자체로 소중하다. 다만, 기록하면 소중한 삶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고 이렇게 살아 보니 괜찮았다고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도 있다. 움켜쥐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