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팬에서 나와 불속으로?! 02.
내가 오랜 기간 근무했던 직장은 20명 남짓 일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이었다. 업무량이 많은 곳이라 외부 사람들은 그 많은 일들을 하는 것을 보면 직원이 30~40명쯤 되느냐고 물어볼 정도였고, 야근도 정말 많이 했었다. 게다가 나는 전국 단위 사업을 많이 맡고 있어서 지방 출장을 다녀오는 날은 어김없이 밤 12시가 다되어서야 집에 도착하곤 했다.
적은 인원으로 항상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 일에 직원들은 다들 분주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번아웃 증상이 악화일로에 있었던 나는 휴직이나 장기 휴가의 옵션을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내가 쉬게 되면 다른 직원들이 그 일을 나누어하느라 고생할 것이고, 대체 인력이 임시로 온다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일을 가르쳐주느라 수고스러움을 끼치게 될 것이 뻔했다.
결국 사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후에, 코치 자격증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멘토 코치님 두 분과 상의도 하고, 지인 중에 코칭 관련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대표님들이 계신 지 세 분 정도 의사 타진을 해 봤다.
조언을 구한 모든 분들이 나에게 코칭을 하는 것이 너무 잘 어울리고 잘할 거라고 응원해 주셨다. 그중 한 분께서는 기존의 컨설팅 영역 이외에도 코칭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함께 일해 보자고 권하셔서 더 고민하지 않고 하겠다고 답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비효율인데, 겨우 5명과 상의했고 기간도 1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는데 이직할 곳이 정해지는 효율성(?)에 그저 만족스러울 따름이었다. 별도로 이력서를 보내거나 면접을 보러 가지 않았는데도 전화상으로 일사천리로 전개되는 상황에, 내가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구나 흡족해했다.
새롭게 일할 곳에서도 새로운 사업 영역을 만들어 가야 하는 부담도 있을 것이고, 나의 인건비에 대한 부담도 있을 테고, 나 역시 조금은 쉬엄쉬엄 일하고 싶은 마음에 하루 4시간 정도 일하는 것을 제안했더니 흔쾌히 오케이 반응이 왔다.
사실, 나는 당뇨 고위험군이어서 당뇨로 진전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2년 전부터 약을 챙겨 먹고 있고, ‘뇌하수체선종’이라는 희귀 난치질환 진단을 받아서 의료비 산정특례도 받고 있는 상황이라, 근무시간을 줄여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것은 나에게 큰 메리트였다. 근무시간에 비례해서 급여도 줄겠지만 나의 씀씀이를 줄이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
14년 2개월 근무한 정든 일터를 떠나고, 정든 동료들과 헤어지는 것은 큰 슬픔이었기에, 떠나는 입장이었지만 정성스럽게 선물을 준비해서 한 명 한 명에게 전달했다. 나의 건강 상태와 번아웃 증상을 알고 있는 동료들은 내가 근무 시간을 줄여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을 함께 기뻐하며 응원해 주었다.
드디어 새로운 곳에서의 새 일을 시작! 하기로 한 시점이 되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나에게 맡길 생각으로 디벨롭시켜 왔던 신규 코칭 프로젝트가 발주처 사정으로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입사 합의는 되었지만 근로계약서를 쓰기 전이고, 직원 채용 공고를 보고 응시한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신사업 제안을 한 상황이니 나의 고용을 책임지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곳과는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생각하며, 한 두 달 쉴 요량으로 첫 번째 대안이 되었던 회사와는 이별을 고했다. 비록 나에게는 계획이 있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아 씁쓸했다.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이탈했다고 경로를 다시 탐색하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