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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xtHaDes Apr 10. 2018

망각도 기억만큼이나 중요하다

레테의 거울 :

Blessed are the forgetful for they get the better even of their blunders
망각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다
- Friedrich Nietzsche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는 망각을 축복이라 여겼다.


하지만, 나는 잊혀지는 것, 잊는 것이 두렵다.


내가 일상의 사진을 SNS에 올리면

기업은 거기 언저리에 광고를 보탠다.

일상이었으면 하는 비 일상적 게시물의

틈바구니 속에 말이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이 태생부터

다른 두 가지 ‘기억보조게시물’은

서로가 서로를 닮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한다는 점이다.

일상은 특별한 화보처럼, 광고는 평범한 일상처럼.


물론, 부자연스러움을 감추기란 쉽지 않다.

차라리 몇몇 브랜드는 아예 대놓고


“그래, 나 광고야”


하며 이야기를 전개하기도 한다.

이 솔직함이 지금은 나에게 신선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물론 이런 신선감新鲜感은 몇몇의 전문가들 입에서

트렌드로 규정된 후 팔로워들이 열심히 물어다 나르는

시점에서 생을 마치겠지만 아직은 질소처럼

내 삶을 차지하고 있다.




니체는 정말 망각을 축복이라 여겼을까


Gott ist tot
“신은 죽었다”
- 니체


화장실 낙서로 더 유명한 “신은 죽었다” 를 외친

니체의 어릴적 별명은 ‘작은목사’였다.

목회자의 집안에서 성실하게 신학을 공부하던 그는

성인이 되서 엄마와의 다툼 끝에

자신의 신앙과 목회자의 꿈을 버렸다.

무엇을 두고 다퉜는지, 홧김에 그럴 수도

있는 문제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게다가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인들을

약자의 강자에 대한 병적인 복수심,

르상티망(Ressentiment)의 존재로 치부할 것 까지야.

놀라운 태세전환이다.


니체에 의하면 르상티망이란 도덕감정은 의미 없는
고난이나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조건과
자신이 처한 부정의한 사회환경에 대한 분노와 복수의 정신이다. 그것은 감정 경험의 만성적 특성과 함께
이를 활용하지도 해소하지도 못하는 무능력이란 특징을 가지며, 빼어난 비방의 능력으로 권위를 잠식한다.
또한 르상티망은 나약과 무능력의 표현으로서 (생략)

- 한국현상학회 철학과 현상학 연구 제61집 2014.6


어쩌면 니체는 자신의 지난 날-신앙을 공부하던-을

간절히 잊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태세전환' 이후 마주한 지난날의 기억은

니체로선 불행했던 날들로 여겨졌을테니.


그래서, 결국 니체는 '망각'에 성공했을까


망각에 실패하여 "망각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다"

(나는 내 실수를 잊으려해도 잊지 못한다. 그래서 괴롭다) 라고 말한 것일까


아니면


망각에 성공하여 "망각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다"(나는 지난날의 실수에 대한 감정을 모두 지웠다. 그래서 행복하다) 라고

한 것일까


앞 뒤 문맥과 상황을 알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어찌됐든 '망각'은 니체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것

이었으리라는 짐작만 가능 할 뿐이다.


망각은 기억만큼 중요하다


사실, 잊지 말아야할 것을 잘 기억하는 것 만큼이나

잊어야할 것을 잘 잊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잊어서 과오가 반복된다는 점을 들어 ‘망각’ 자체를 죄악시 한다.

그럴때마다 튀어나오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단재 신채호

이 레퍼런스는 우리가 망각을 얼마나 죄악처럼 여기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 말을 신채호가 했다는 고증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혹자는 윈스턴 처칠이 한 말이라고 하지만, 그것 역시 확실치 않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망각=미래삭제’ , 여기에 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될 것을 잊는 것이 위험하듯

잊어야 할 것을 잊지못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망각은 인지를 잃었다는 점에서 무지와 죄악의 이면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우리가 내일을 향해 살수 있었던 건 무언가를 지금껏 잘 기억해왔기때문만은 아니다.

공의 절반은 어떤 것을 잘 잊어왔던 것에 있고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을 만나고 또 떠나보내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상처를 주고 또 받고

배신당하고 또 모든 것을 잃고,

이 모든 것에 아파했던


내가,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무엇을 다시 꿈꾸고 희망하는

이 미친 원동력은

인간이 지닌 모든 유틸리티 중에서

오직 ‘망각프로세스’만이

가능하게 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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