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저편의 냄새

by 한유당

마당으로 들어서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올케언니와 어머니가 마주앉아 전을 부치고 큰오빠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돼지고기를 삶고 있었다. 그날은 아버지 기일이었다. 지방을 쓰기위해 펜을 찾느라 서랍을 뒤지다 스텐으로 작은 통을 발견했다. 오래전에 숨겨두었던 보물 상자를 찾아낸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렸다. 통 속에는 바싹 마른 나무 조각 몇 개가 들어 있었다. 나무 조각은 수십 년 동안 서랍 안에 갇혀서 화석처럼 단단해졌다. 코에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았다. 세월에 희석되 엷어졌지만 향나무 냄새였다.


그 향나무 조각 속에는 내가 기억하는 오래된 냄새들이 향수처럼 조합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가끔씩 그 통을 열어 놓고 냄새를 맡았다. 무슨 비밀스런 의식이라도 치르듯 아무도 없을 때면 그 냄새를 통해 아버지를 만났다.

잿빛 두루마기를 차려 입고 향나무를 잘게 쪼개고 있는 아버지의 등이 보였다. 뚜껑에 작은 구멍이 여럿 뚫려 있는 은색 향로에서 향나무 조각들이 타들어 가면 은은한 향내가 연기가 되어 날아올랐다. 두루마기 자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제기에 수저 부딪히는 낮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제사가 끝나면 양손으로 향로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가시는 아버지를 따라 향냄새도 사라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 해에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작은 어깨에 책가방을 메고 나서는 내가 안스러운 듯, 아버지는 날마다 마을 어귀까지 나를 업어주었다. 쉰이 지나 얻은 늦둥이라 애지중지 했다. 동네 어른들이 애가 못걷겠다고 농을하고 놀려도 아버지는 매번 등을 내미셨다.

봄비가 제법 굵게 내리던 날 오후였다. 우산을 준비 못했던 나는 비를 맞으며 교문을 나서려는 참이었다. 우산을 들고 아버지가 서 계셨다. 언제부터 거기 계셨는지 바지자락이 빗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아버지는 쭈그리고 앉아 내 앞에 등을 내밀었다. 작은 우산이 비를 다 가려주지 못해도 좋았다. 아버지의 등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로 내 배는 따뜻해졌다. 강아지처럼 목덜미에다 코를 박고는 아버지 냄새를 맡았다. 잠결에도 냄새를 쫓아 아버지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날 빗속에서 훅 끼쳐 오르던 아버지의 냄새가 지나온 많은 날 동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내가 유난히 민감한 후각을 가진 것도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아버지의 냄새를 잊지 않으려 애썼기 때문일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도 마당에서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겼다. 잔칫날처럼 솥을 걸어 고기를 삶고 전을 부치느라 마당이 분주했다. 진한 향냄새가 빈소를 채웠다. 아버지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냇가에서 옷가지와 아버지가 쓰던 물건들을 태웠다. 나는 멀리 떨어진 방천 위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하늘로 솟구치는 냄새를 맡았다.

아버지의 냄새는 집안 곳곳에 남아 있었다. 족들이 함께 쓰던 수건에는 빨아도 아버지 냄새가 남아있었다. 미처 버리지 못했던 빛바랜 모자에도 . 나는 아버지의 모자를 끌어안고 거기다 코를 박고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었던지 내가 없는 사이 어머니는 활활 타는 불 속에 모자를 던져 버렸다.


서랍속에 향나무 조각이 있었다. 아버지가 제사때 쓰려고 다듬어 놓은 나무 조각들을 내 앉은뱅이책상 밑에다 꼭꼭 숨겨 두었다. 혹여 어머니에게 들키기라도 할까봐 문을 꼭 닫아걸고 향나무 조각을 만졌다. 손끝에서 오랫동안 남아 있는 거친 나무의 느낌과 냄새 속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기억했다

한 두 해 지나면서 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희미해져 갔지만 냄새는 쉽게 잊히지가 않았다. 내 속에 각인된 아버지의 살과 땀냄새. 그 냄새로 인해 내가 살아온 많은 날 동안 아버지가 나와 함께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향이 나는 물건들을 모으는 걸 좋아한다. 예쁜 유리병에 담긴 향수를 사 모으고 한 번씩 뿌려 본다. 아로마 향초를 피우고 잠이 들기도 한다. 사철 푸른 향나무를 제일 좋아해서 오가는 길목에서 향나무를 만나면 꼭 손으로 잎을 만져 본다. 자잘한 풀꽃들의 냄새를 좋아한다. 막 씻겨 놓은 아이에게서 나는 비누 냄새, 퇴근한 남편이 벗어 놓은 와이셔츠에서 나는 땀 냄새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 모든 냄새의 밑바닥에는 기억의 저 편에서 마르지 않고 솟아나는 아버지의 냄새가 묵직하게 깔려있다.


엷은 향냄새가 젯상이 차려진 방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 때의 아버지처럼 회색 두루마기를 걸친 오빠가 무릎을 꿇고 앉아 아버지께 술을 올린다. 절을 하는 내내 두루마기 자락이 바스락 거린다. 향로에서 새어 나오는 향냄새 사이로 기억속 그날의 냄새가 올라오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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