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시간

몽유도원도

by 한유당


금빛 태양이 두루마리 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니 그것은 햇살 아래 뜨겁게 달구어져 제 몸의 각을 세운 모래의 흔적이었다. 굽이굽이 펼쳐진 비단 자락 위를 흐르는 깊고도 고요한 강물이었다. 그 강을 따라 손에 닿을 것만 같은 풍경들이 말간 유리 안에 갇혀 흐르고 있었다. 두루마리는 그렇게 오백년 동안 제 몸을 둥글게 말아 꿈을 가두고 있었다.


몽유도원도가 열흘 동안 국립박물관에 전시된다는 소식을 듣고 기차를 탔다. 타국의 박물관 지하 수장고에서 둥그렇게 말려 있던 오백년 전 왕자의 꿈이 눈부신 금빛으로 내 눈앞에 펼쳐졌다. 꿈속의 빛을 보기위해 모여든 인파는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안평대군이 꾸었던 꿈이 안견의 손에서 한 폭 그림으로 펼쳐졌다. 현실에서 이상의 세계로 나가는 길은 가파르고 험했다. 희미한 안개 사이로 높게 솟은 바위산을 넘어서면 복숭아나무 우거진 언덕이 나타난다. 바로 그곳이다. 무릉도원은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까이에 있었다. 꿈속의 시간을 더듬으며 읽어 내렸다. 엷은 금빛이 눈으로 스며들었다.


안평대군과 당대의 문장가들이 돌아가며 쓴 발문의 글씨체에는 힘이 있었다. 이상의 세계를 꿈꾸는 그들의 의지가 글씨체에 반듯하게 투영되어 있었다. 이상의 세계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현실과 맞붙은 곳, 바로 그 너머에 꿈의 시간이 펼쳐져 있었다.


그림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두 세계를 나란히 그려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세속의 공간과 이상의 공간이 공존하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견은 그림 속에 두 세계를 공존시켰다. 그들이 꿈꾸는 낙원에 시간이란 개념은 없다. 그곳에는 평면적인 공간만이 있을 뿐이다. 시간은 그림 속에서 정지되었다.


그림의 금빛 속에서 나는 눈부시게 반짝이던 오래 전 그 강가의 모래밭을 기억해냈다. 어린 시절 가끔씩 어머니를 기다리며 방천에 쭈그리고 앉아서 강이 흐르며 밀어올린 모래의 무늬들을 오랫동안 바라다보았다. 여러 가지 빛깔로 반짝거리던 모래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명체처럼 보였다. 금빛의 무늬들을 보면서 머릿속에 많은 그림들을 그리고는 했다.

다른 세계, 또 다른 나를 그렸다 지웠다 하면서 나만의 세계를 키워나갔다. 앞이 안 보이는 깜깜한 현실에서 뭐든지 가능한 꿈의 세계를 찾아 빠져들었다. 나를 이끈 것은 도서관의 책이었다. 닥치는 대로 읽고 또 읽었다. 나의 유토피아는 책 속에 있었다. 주인공들은 손을 내밀어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손을 잡아 줄 책을 쓰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안평대군이 서 있던 현실은 한치 앞도 안 보이는 갈등과 혼란의 역사 속이었다. 삶과 죽음의 길을 선택해야하는 위태로운 시기였다. 그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이상의 세계를 꿈에서 찾으려 한 것이다. 이념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곳, 인간의 욕망이 잠 재워지는 곳.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향을 꿈꾼다. 이상이 없는 사람, 꿈꾸지 않는 사람에게 미래란 없다. 험난한 바위산을 넘어서 다다른 무릉도원. 오백년 전 그들이 꿈꾸던 이상향은 바로 미래였다. 오래전 금빛으로 반짝이던 모래밭에서 내가 본 것도 미래였다. 막연했지만 미래에 대한 꿈이었다.


몽유도원도를 보고 나온 사람들은 모두 꿈을 꾼 듯한 얼굴이다. 그 얼굴에서 감동으로 빛나는 금빛이 엷게 묻어 나온다. 두루마리처럼 내 앞에 펼쳐진 길을 따라 걸어 나왔다. 가을볕이 눈부시다. 나는 걸으며 꿈꾼다. 매일 같은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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