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을 풀었다

by 한유당

숨소리가 끊어졌다. 아버님이 떠나셨다. 간신히 붙어있던 희미한 숨소리만이 삶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숨이 끊어지자 세상과 연결된 모든 끈들도 끊어졌다. 염습사는 능숙한 손길로 나무토막처럼 굳어버린 육신위로 저승 가는 새 옷을 차곡차곡 입혀드렸다. 오랜만에 새 옷을 차려입은 아버님은 건강했던 예전의 모습처럼 정갈하고 온화해 보였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발위에 종이로 만든 버선을 신기고 대님을 맸다. 얼굴위로 멱목을 덮자 그 얇은 천 조각이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두꺼운 벽처럼 느껴졌다. 익숙했던 아버님의 모습은 사라지고 낯선 주검만이 눈앞에 있다. 두루마기 위에 얇은 삼베 이불을 덮고 끈으로 몸의 마디마디를 묶었다. 온몸을 천과 끈으로 겹겹이 감싸자 사람의 형체는 사라지고 깊은 잠에 드는 누에처럼 둥그렇고 하얀 덩어리만이 동그마니 누워있다.

우리는 뱃속에서부터 달고 나온 뜨거운 끈을 자르면서 세상과 묶이기 시작한다. 끈을 자르고, 끈을 잇고, 끈을 묶는 과정들이 관계로 엮이며 삶은 지속된다.

태어난 그때처럼 끈을 몸에 감고 아버님은 떠나셨다. 염을 하고 입관을 지켜보는 내내 삶과 죽음 사이에 가로놓인 수많은 끈들을 보았다. 한 사람의 흔적은 그가 지나온 삶처럼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집안의 곳곳에, 가족들의 마음에,

깊고 선명하게 새겨진 아버님의 흔적들을 치우고 닦아내는 일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누워 계시던 이부자리는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싸늘해졌다. 버석거리며 뒹구는 약봉지, 다리가 다 나으면 신으시라고 사드렸지만, 몇 년째 신발장에서 먼지만 담고 있던 새 구두. 원래 있던 자리에서 치워지는 물건들과 함께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망자의 흔적을 지워내고 있었다.

눅진해진 이불을 걷어내다 안방 벽에 늘어진 끈을 보았다. 땀에 절고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해진 끈을 붙들고 한참을 서있었다. 끈의 매듭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두 손으로 움켜잡고 입으로 물고 당기고 한참을 씨름한 끝에야 단단하게 엉겨진 고리가 천천히 풀려나왔다. 한때는 한 사람의 몸을 붙들어주고 지탱해 주었던 끈이었다 삶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 잡아당기던 것이었기에 그리 만만하게 풀릴 수는 없겠지.

오랜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해지자 누운 자리에서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일어날수 있게 아버님의 자리 옆에다 긴 쇠 파이프를 박고 질긴 끈을 매어 두었다. 끈을 당길 때마다 안간힘을 써야했다. 끈을 움켜잡은 손등위로 파란 힘줄이 터질듯이 툭툭 불거졌다. 끈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손이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면 바닥에 붙었던 등이 허공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휠체어를 타고 공원에 산책을 가고, 시장도 가고, 놀이터 앞에서 손자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서 그 정도만이라도 운신할 수 있음을 다행이라 여겼다.

기력이 점점 쇠해지고 끈을 당기는 힘이 느슨해졌다. 끈을 붙들고도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아버님도 매달린 끈도 애처로워 보였다. 끈이 한 번도 당겨지지 않은 채 매달려 있는 날이 잦아졌다.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 끈은 비에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바닥과 붙어있는 등에는 물집이 잡히고 피부가 벗겨지고 진물이 흘렀다. 성난 염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욕창은 서서히 온 몸으로 번져나가 육신을 헐어내고 있었다. 산 자의 육신이 썩어가는 냄새가 방안을 채워 나갔다.

네 살배기였던들은 할아버지 곁에서 온종일 놀다가 뼈만 앙상한 팔을 당겨 베고 낮잠을 자고는 했다. 잠든 손자를 바라보며 아버님은 아이의 통통한 볼과 작은 귓바퀴를 연신 쓰다듬었다. 생명이 서서히 빠져 나가는 순간에도 아들을 지나 손자에게로 이어지는 끈이 있기에 든든한 듯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쥐었다.


한 사람의 역사는 그가 죽음으로 당장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는 동안 이어 둔 끈들이 있다. 육신의 삶의 끊어지더라도 끈끈하게 이어지는 게 있다. 그 끈이 자식이 될 수도 있고, 평생 이룬 업적이 될 수도 있고, 그가 남긴 책이나, 사상이 될 수도 있다. 혹여, 잘못 이어놓은 끈 때문에 인생의 큰 오점을 남길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거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

아버님의 옷가지와 유품들을 리하면서 끈을 태웠다. 끈은 불길 속에서 오그라지며 녹아들었다.

삶의 끈은 끊어졌지만 세상에 남겨 놓은 가장 질긴 끈. 아버님의 뒷모습을 닮은 남편이 아들의 손을 잡고 비탈진 산길을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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