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봄, 산불이 났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당산 너머서부터 불이 시작됐다. 불꽃은 진달래 꽃잎마냥 여기저기 무더기로 너울너울 산을 타넘었다. 불은 바람에게 제 몸을 맡긴 채 훨훨 날아다녔다. 꽃잎 같던 불꽃이 이내 불화살이 되어 이 나무 저 나무로 퍼붓듯 내리 꽂혔다. 수 십 년 굵어진 소나무도 순식간에 허우적거리며 퍽퍽 쓰러졌다.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던 산위로 검은 연기가 솟구치고 조용하던 마을에 싸이렌이 울렸다. 불안이 산 그림자 사이로 매캐한 연기와 함께 짙게 깔렸다.
장정들은 논밭에서 하던 일을 던져두고 삽이며 빗자루를 들고 산으로 달렸다. 곧 읍내에서 몇 대의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다. 뒤를 따라 한 무리의 공무원들이 트럭 적재함에 실려 왔다. 이미 바람과 협공한 산불의 앞을 막아내기에는 인간의 몸과 그들이 들고 온 도구는 너무나 보잘 것 없었다. 겨우 불이 지나간 길을 따라가며 쇠잔해진 꼬리만 잘라낼 뿐이었다.
한참 만에 날아 온 헬리콥터가 공중에서 쏟아 붓는 물세례에 산불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 틈에 사람들은 일사분란하게 한 줄로 늘어서서 불의 허리를 끊고 불씨를 꾹꾹 밟으며 사냥감을 몰듯 개울 쪽으로 몰아갔다. 바람이 잦아지자 불은 쓰러졌다. 불씨가 사그라진 산은 온 몸의 숨겨진 속살들과 작은 주름까지도 훤히 드러낸 채 벌거벗겨져 드러누워 있었다.
산불은 꺼졌지만, 그날 밤부터 훨훨 나는 불덩이에게 밤새 쫓겨 다녔다. 일어나보니 자리 밑이 흥건히 젖어있었다. 아버지가 젖은 이부자리를 끌어내며 큰불을 보고 놀라 그런 거니 곧 괜찮아 질 거라며 등을 두드려 주셨다.
불덩이는 밤마다 나를 찾아왔다. 허우적거리며 도망치다 제 풀에 놀라 잠을 깨고는 했다. 어둠속에서 겨우 눈만 뜨고 겁에 질려 꼼짝도 못하는 나를 아버지가 일으켜, 요강위에다 앉혔다. 찔끔 찔끔 오줌을 누자 요강 속에서 들리는 쪼로록 거리는 소리에 아버지와 나는 마주보며 웃었다. 그 많은 별들은 파랗게 빛을 냈고 아버지는 그 먼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다려주었다.
그해 여름,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불에 그을린 산처럼 까매진 얼굴로 몇 달을 앓다가 돌아가셨다. 꽃상여를 따라 산으로 가는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나는 죽음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상여에 꽂힌 색색의 조화들을 보며 한 바탕의 축제 같은 날이라 여겼다. 땅속에 묻히는 검은 관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다시 오줌을 쌌다. 아무도 나를 깨워주지 않았고, 마루에 놓아두던 요강도 없었다. 새벽이면 혼자서 눈을 떴지만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방문을 열면 사방 어둠속에서 벌건 불덩이들이 내게로 덤벼 들것만 같았다. 아침마다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손으로 젖은 속옷을 빨았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손바닥으로 등짝을 후려쳤다. 아픔보다는 서러움에 학교 가는 길 내내 울었다. 아버지의 부재가 그제야 실감이 났다. 죽음이, 남겨진 자들에게 던져주는 아쉬움과 그리움에 대한 것들을 나는 그때부터 알아가고 있었다.
그 해 가을, 밤마다 나를 찾아오던 무서운 불덩이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야윈 몸이 불덩이로 변했다. 고열에 시달리며 수많은 헛것들을 보았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 꽃상여를 타고 놀았다. 걸어도 걸어도 불이 난 산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손을 놓으면 안 된다고 있는 힘을 다해 아버지를 따라 걸었다. 서늘한 바람에 까무룩 의식이 돌아왔을 때 어머니의 슬픈 얼굴이 보였다.
“망할 놈의 영감, 혼자 갔으마 그만이지. 와 이 어린 걸 델꼬 갈라카노. 나는 우예 살라꼬 이카노.” 서늘한 바람 사이로 별빛이 선명하게 보였다. 며칠이 지나도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온 몸에 선홍빛 반점들이 돋아났다. 목구멍으로 음식을 넘기기가 무섭게 다 토해냈다.
홍역이었다. 어머니는 축 늘어진 나를 이불에 싸서 리어카에 싣고 읍내 병원으로 달렸다. 어머니에게 무슨 힘이 있어 그리 빨리 내달리는지 귓전으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폐렴 증상이 있다는 말에 어머니가 휘청거렸다. 며칠 입원을 하고 집으로 들어서는 길에 불이 나 시커멓게 그을린 산을 올려다 보았다. 그 날 산을 태우던 불덩이가 내 안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저 산처럼 아버지처럼, 나를 까맣게 태워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떨려왔다.
내가 안팎의 불덩이와 싸우는 동안 어머니는 모든 일을 던져두고 내게만 매달렸다. 다정했던 아버지와 달리 무뚝뚝하고 잔정이 없던 어머니는 자식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밤마다 내 옆을 지키고 계셨다. 어린 막내딸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눈을 부릅뜬 어머니 앞에서 불덩이도 지쳤는지 슬며시 사라졌다. 열이 몸에서 빠져 나갔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는 새벽이면 나를 깨워 요강위에 앉히고는 옆을 지키고 계셨다. 그렇게 힘든 가을이 지나고, 겨울 동안 나는 몸을 추스렸고 포동하게 살이 올랐다.
다시 봄이 왔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처럼 나는 여리지만 강하게 여물어가고 있었다. 봄비가 그친 토요일 오후, 어머니와 나는 보자기를 하나씩 손에 들고 산불이 났던 당산으로 올라갔다. 겨울에 내린 눈과 몇 번의 봄비로 쌓여있던 검은 재는 많이 씻겨 있었다. 어지러이 널려진 잡목들 사이로 연둣빛의 보송송한 싹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고사리였다. 주위가 온통 고사리 밭이었다. 어머니는 보자기를 허리에 묶고 반으로 접어 그 사이에 끼웠다. 커다란 주머니가 만들어지자 고사리를 꺾기 시작했다. 비릿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손가락 사이에 배어들었다.
여름이 되자 고사리 잎들이 넓게 벌어지고 그 그늘 아래로 곤충들이 모여들었다. 바람은 멀리서 씨앗들을 싣고 왔다. 수런수런 거리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다. 어느새 산을 뒤덮었던 검은빛이 서서히 밀려나고 초록빛으로 꿈틀거렸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마을 어귀 당산에는 산불이 났던 흔적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숲이 우거져있다. 온갖 새들과 산짐승들이 우거진 숲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다. 가끔씩 멧돼지가 내려와 산비탈의 고구마밭을 파헤쳐 놓는다. 울창하던 산이 불길에 휩싸이던 그때, 나는 열살도 안된 어린 아이였다. 회복되고 치유 되어 가는 산을 보며 자랐고, 어른이 되어갔다.
사는 일이 팍팍해 안팎으로 열이 날 때면 산을 오른다. 내 안에 불덩이는 가끔 들썩거리다가도 산을 오르면 이내 수그러진다. 사람 사는 모양은 각각이지만 속에다 불덩이 하나씩 두고 그 불씨를 꺼트리지 않게 바람도 불어넣고, 때로는 그 불꽃이 자신을 태우지 않도록 다독여 가며, 속의 불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것일게다.
다시 봄이다. 비가 많아 올해는 고사리가 많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