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올랐다. 한 손으로는 철제 난간을 잡고 다른 손에는 무거운 장바구니를 든 채, 오르내리는 행인들 사이를 비집고 육교를 건넌다. 육교 아래 8차선 도로는 자동차로 가득 차서 밀리고 서기를 반복한다. 사람보다 자동차가 편한 길, 서라 가라 지시하는 신호등도 없고 보행자를 우선해야하는 횡단보도도 없는 길, 사람은 사람대로 자동차는 자동차대로 제 갈 길로 가면 되는 길, 그 길 위에 육교가 있다. 아니, 육교가 있어 그렇게 되어 진 길이다.
길의 이편과 저편에 기둥을 세우고 오르고 내리는 계단을 걸친 육교는 바로 질러가지 않고 돌아가는 길이다. 그래서 오르내리는 걸음이 힘에 겹지만 또 한편 제일 안전한 길이다. 계단을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육교는 도시에 떠있는 섬 같다. 자동차의 물결이 비껴 흐르는 작은 섬 위로 무수한 삶들이 이편과 저편의 길을 스쳐지나간다.
땅위에서는 한 평의 점포도 갖지 못한 늙은 상인들이 야자수처럼 펼친 색색의 파라솔을 꽂고 콘크리트 섬 위에 뿌리를 내렸다. 번듯한 간판도, 진열대도 없다. 바닥에 쌓아둔 물건을 살펴볼라치면 허리를 깊숙이 숙이거나 아예 쪼그려 앉아야 한다. 초록, 분홍, 노란색이 선명한 이태리 타올, 부직포로 엉성하게 만든 선풍기 커버, 하얀 망사에 고무줄로 조이게 만든 장독 덮개, 굵고 기다란 검정 고무줄 묶음,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가끔씩 필요한 물건들이 널려있다.
그곳의 물건들이 주는 추억과 향수가 행인들의 눈길을 끌고 발길을 잡는다. 나도 쪼그려 앉아 검정고무줄을 당겨보기도 하고 나프타렌이 소복하게 담긴 주머니를 들어보기도 한다. 팔려고 들고 나온 것인지 원래부터 그렇게 꽂아만 둔 것인지, 양동이에 가득 담겨 나부끼는 태극기의 바탕색은 지친 상인의 얼굴색처럼 얼룩덜룩한 잿빛이다.
집에서 나설 때부터 날이 흐리더니 빗방울이 듣는다. 가을비 치고는 빗방울이 제법 굵다. 육교위가 분주해진다. 상인들은 벌여 놓은 물건들을 파라솔 아래로 끌어 모으고는 그칠 비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다가 커다란 가방에 물건들을 담기 시작한다. 파장이다.
미리 가방에 넣어온 접이식 우산을 꺼내 펼쳤다. 미처 우산을 준비 못한 행인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상인들이 하나둘씩 계단을 내려가 이편과 저편의 길로 사라진다.
가파른 계단 중간쯤에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그 남자의 등이 보인다. 한껏 오그린 모양새가 길고양이처럼 작고 초라하다. 때에 절은 낡은 점퍼 위로 빗방울이 떨어져 불규칙한 얼룩무늬를 그려낸다.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몇 일 전에도, 몇 달 전에도, 몇 년 전에도 그 자세로 그대로 그 곳에 있었다. 상인도 행인도 사라진 육교 위에 그만 동그마니 남아서인지 평소에는 존재감 없던 그의 행색이 선명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몸을 앞으로 조금 움직여 팔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동전 몇 개가 담긴 빨간플라스틱 바구니가 놓여있다. 아주 적당한 거리고 적절한 위치 같다. 그의 몸과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조금은 무심한 듯 조금은 태연한 듯 보여 지는 거리감이다. 행인의 발길에 차이지는 않지만 발길을 주춤하게 만드는 위치에 절묘하고 적당하게 놓여있다.
빗줄기가 더 굵어졌지만 그는 일어설 생각도 없이 몸만 더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다. 그의 몸은 마치 육교의 부속물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바구니 안의 동전처럼 그의 삶도 채워지지 않는 무엇 때문에 세상의 물결에 떠밀려 이 섬 같은 육교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일까?
이 가파르고 황량한 육교위에서 조차도 그는 비주류다. 꽂을 파라솔도 없고 팔아치울 변변한 물건도 하나 없다. 평평하고 반듯한 다리 위는 그나마 무언가 팔 물건이 있는 상인들의 차지다. 남루한 몸뚱이와 플라스틱 바구니가 밥벌이 도구인 그에게는 가파르고 좁은 계단 한 귀퉁이가 차지할 수 있는 한 점 땅이고, 삶을 이어가는는 터전이다.
한 손에는 우산을 다른 손에는 장바구니를 들었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칠갈까도 생각했다. 행인들이 많으면 그 사이에 묻어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이라야 뜨문뜨문 몇 명뿐이고 그나마 비를 피해 뛰어 가버린다. 나는 매몰차게 그를 지나치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주머니에 남은 돈을 생각했다. 빗속에서도 한 자세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그의 투철한 직업의식이 내 걸음을 느려지게 했고 가벼운 주머니에 손을 넣게 했다.
물기 묻은 손에 딸려 나온 건, 내가 꺼내려던 천 원짜리 지폐가 아니라 만 원 이었다. 비가 와서 택시를 타려고 미리 꺼내 주머니에 넣어 둔 거였다. 엉겁결에 다시 집어넣으려는 순간, 그 남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퀭한 두 눈과 당황한 내 눈이 플라스틱 바구니 위에서 마주쳤다. 그의 시선에 내 손은 얼은듯 멈춰버렸다. 그 강렬한 눈빛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얼른 시선을 거두었지만 손은 차마 거두지 못했다.
그 남자가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서더니 몇번이나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더니 잽싸게 바구니를 비우고는 이내 일어서서 가볍게 육교를 내려간다. 일어선 것도 걷는 것도 처음 본 그 남자의 발걸음은 가볍고 빨라서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리도 없이 서서 가는 버스 안에서 전혀 의도치않은 내 호의가 그를 일어나 걷게 한것에 웃음이 자꾸 나왔다. 비가 더 거세진다. 그전에 그가 계단을 내려간게 퍽 다행이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장바구니가 무거워서 팔이 아픈 건 어쩔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