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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영 Feb 15. 2019

지난 사랑은 다 그런 건가 봐.

나는 이제 너없이도 가뿐히 걸어.



너와 첫 데이트를 하던 그 날, 굉장히 예쁜 눈이 내렸지.

그때 난 우리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어.

가로등 아래로 분분히 내리는 눈만큼 고요하고 소복하게, 미래를 쌓아갈 거라고 생각했어.

눈 쌓인 길목을 걸어가며, 미끄러울 땐 잡아주고, 의지하며 어떤 길도 함께 걸을 거라고 생각했어.


우리의 계절은 여전히 눈 내리는 예쁜 날인데, 어느 날인가부터 우린 함께 걷지 않았어.

눈은 그쳤고, 나는 앞으로 가려는데 넌 자꾸만 걸음을 멈췄어.

그러다 말하더라. 더는 너와 함께 걷지 않겠다고. 

아프고 힘든 '눈 길'은 지겨우니까 우리의 계절을 흘려버리겠다고.


발이 얼어가는 줄 모르고 무작정 괜찮다고 했어.

함께니까 이겨낼 거라고 설득했지만, 사실 나도 자신이 없었어. 그런 척했어.

그 마음을 들켰나 봐. 

넌 등을 돌렸고, 난 견뎌낼 수 있는 걸 증명해 보이겠다며 혼자 발목까지 쌓인 눈을 밀어내며 앞으로 걸어갔어.

내 노력에 감동한 네가, 내가 만들어놓은 그 길 위를 따라오지 않을까 기대했어.

발은 아주 얼어가는데, 넌 오지 않았어.


눈은 계속 내렸어. 시간이 자꾸 흘렀어.

우리 사이에 벌어진 간격만큼 그 사이에 새로운 눈이 쌓였어. 너는 보이지 않았어.

내가 어렵게 헤친 길은 완전히 사라졌고, 더 이상 난 돌아갈 수도 없었어. 너를 잃었어.


당장 걸어온 길 위는 여전히 비어있어서, 그 자리가 너무 허해서 추웠어.

그제야 동상으로 얼어붙은 발이 보였어. 난 만신창이가 되었어.

빳빳해진 몸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이 눈이 다 녹길 기다렸어.

너를 두고 온 자리가 쓸쓸하지 않게 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파묻었어.




봄이 왔어. 한 계절이었던 네가 사라지고, 내 온기는 따뜻해졌어.

발자국은 눈으로 덮어야만 사라지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겨울 안에 갇혀 있었는데 시간은 결국 모든 걸 녹게 하더라.

너와 나눈 계절이 밉다가, 아프다가, 이젠 '한 계절'로 그쳤어.


나는 이제 미끄럽지 않은 길을 가뿐히 걸어. 네가 없어도 잘 걸어.

눈 길 같던 우리의 지난 연애는 그렇게 의미 없는 계절로 끝났고, 나는 이제 그 추억이 시리지 않아.


지난 사랑은 다 그런 건가 봐.

눈처럼 예뻤다가, 얼었다가, 시렸다가도 어느새 녹는 건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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