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귀 기울이는 피아노
우리는 지금 ‘네 번째 물결’ 위에 서 있다. 궁금한 것은 AI가 곧바로 찾아주고, 내 관심에 맞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추천해주는 서비스가 넘친다. 더 많은 일을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주 지친다는 느낌이 든다. 높아진 효율과 동시에 받아들이고 처리해야 할 정보가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일까?
200여년 전 산업혁명이라는 ‘두 번째 물결’을 겪은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거라 짐작해본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대량생산 체제를 가능하게 했지만 인간은 스스로 소외감을 느꼈던 시기다. 열역학 원리의 발견은 증기기관의 효율을 끌어올렸고, 제임스 와트는 연료 낭비를 줄이는 구조를 개발해 기계를 끊임없이 작동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방적기와 방직기 같은 기계는 수공업을 대체하며 대량생산 체제를 만들었다.
대량생산 체제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바꾸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생산 과정에 있는 인간은 점점 ‘대체 가능한 존재’처럼 다뤄지기 시작했다.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같은 동작을 반복했고, 기계의 리듬에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로 인해 인간은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맞닥뜨려야 했다. 바로, 인간 소외다. ‘소외’란 인간이 자신의 노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감정조차 기능으로만 다뤄지는 상태를 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낭만주의가 도래한 건 바로 이 시기였다. 예술가들은 산업화된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성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성보다 감성, 질서보다 상상력을 강조했다. 그 흐름에서 인간의 이성을 반영하던 음악도 내면을 조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대표적인 음악가가 바로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이다.
폴란드 출신인 쇼팽은 조국의 독립운동이 실패하자 프랑스 파리로 망명해, 생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파리는 예술과 철학의 중심지였다. 동시에 효율과 소음이 지배하는 산업화된 도시의 표본이기도 했다. 쇼팽은 대규모 교향곡이나 외향적인 오페라 대신, 짧고 섬세한 피아노곡을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작곡가다. 이방인인 쇼팽이 산업화의 한복판에서 내면의 조용한 고백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때마침 피아노도 건반 수 확장과 페달의 섬세한 조작 덕분에, 감정 표현의 악기로 급부상한 시기였다. 쇼팽은 피아노를 단순한 악기가 아닌, 내면의 감정을 가장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다뤘다.
쇼팽의 이름이 각인된 장르로 야상곡(Nocturne), 발라드(Ballade), 전주곡(Prelude)을 들 수 있다. 야상곡은 부드러운 선율로 고요한 밤과 같은 우수 어린 감정을 표현한다. 쇼팽은 루바토(자유로운 리듬 표현)를 활용해 음표 사이의 여백과 느린 호흡으로 감정을 흘려보냈다. 발라드는 보다 극적인 감정과 서사를 담는 형식이다. 중세 서사시에서 유래한 이 장르를 쇼팽은 피아노 독주곡으로 정착시켰다. 감정의 흐름과 전환이 드라마처럼 전개되고, 서사적인 감정의 확장과 대조가 특징이다.
전주곡은 바흐의 평균율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정서의 단편과 감정의 순간을 압축한 형식이다. 쇼팽의 손을 거쳐 전주곡은 도입부가 아닌, 그 자체로 완결된 연주곡으로 완성됐다. 특히 30마디도 안 되는 짧은 곡 <전주곡 Op.28 No.4>에는 깊은 상실과 슬픔이 담겨있다. 음 하나하나에 실린 감정의 밀도가 높고, 침묵과 하강을 반복하며 감정을 전한다.이 곡은 쇼팽의 장례식에서도 연주됐다고 한다.
쇼팽의 피아노곡은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무시되기 쉬웠던 인간의 감정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지 않았을까. 그의 피아노곡은 대서사시 대신, 감정의 파동을 헤아리게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킨 것 같지만, 번아웃을 호소하는 현대인은 줄지 않는다. AI와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감정과 선택조차 기술에 위임되고 인간 스스로 내면을 돌아볼 기회조차 사라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기술은 똑똑해지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과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혹시 너무 지쳤다면, 잠깐 멈춰 서 내면의 목소리를 만나보면 어떨까? 쇼팽을 듣기에 최적의 순간이다.
정제된 깊이의 마우리치오 폴리니, 더 서정적인 울림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 쇼팽을 처음 만나기에 모두 좋은 선택이다.
*2025년 4월 29일 '카이스트 신문'에 실린 글을 다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