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듣는 베토벤 '합창' 교향곡

베토벤이 그린 인간 '이성'의 가능성

by isnon

지난 연말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권력자에게 권력을 위임할 권리를 가진 시민들의 목소리가 광장을 채우는 광경을 보면 자연스레 루드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의 음악을 듣고 싶어진다. 권력이 신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소수에서 다수로 옮아 온 과정이 베토벤의 교향곡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활동했던 18세기 유럽, 사람들은 신과 왕의 권위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마주하고 있었다. 뉴턴 이후 자연의 질서가 과학이라는 언어로 설명되면서, 교회와 왕실이 독점하던 이성이라는 도구를 시민도 쥘 수 있게 된 덕이다. 이는 곧 지식의 평등을 외친 계몽주의로 이어졌다. 계몽주의는 지식이 더 이상 소수만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는 선언과도 같았다.

과학의 발전은 위생과 의학, 농업 혁신으로 이어져 인간의 건강과 생활수준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렸다. 에드워드 제너의 백신 개발은 천연두라는 공포에서 인간을 해방시켰고, 사람들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게 됐다. 비료의 활용과 윤작 같은 과학적 농업 기술로 식량 생산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자 더 많은 이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됐다. 계몽주의가 말한 진보란 ‘앎의 권리’를 나누는 혁명이자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음을 사회 전체가 함께 인정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시대정신은 예술에도 이식됐다. 베토벤의 음악엔 진보, 자유, 혁명이라는 계몽주의의 가치가 담겨 있다. 베토벤은 음악이 아름다운 예술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음악가다. 베토벤은 교향곡을 개인의 투쟁과 인류애가 담긴 ‘예술적 선언문’으로 변화시켰다.

교향곡 3번 「영웅」은 본래 프랑스 혁명의 영웅 나폴레옹을 기리며 작곡됐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자 베토벤은 그 헌정을 철회했다. 베토벤은 개인이 아닌 인류 보편의 자유와 이상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교향곡 5번 「운명」은 인간이 고통과 운명을 극복하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운명」은 4악장에서 C장조로 전환되며 승리와 해방이라는 장대한 팡파르로 마무리된다. 교향곡 9번 「합창」은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인용해 인간의 평등과 형제애를 노래하며 그 정점을 찍었다. 교향곡에 인간의 목소리가 들어간 것도 「합창」이 최초였다.

베토벤은 진보라는 철학적 신념을 음악에 담은 동시에 음악 형식 자체를 진보 시킨 작곡가이기도 했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오케스트라와 독주 악기의 위계를 허물고 수평적 소통을 구현하고자 했다. 하이든과 초기 모차르트의 고전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와 독주자 간에 명확한 역할 구분과 위계가 있었다. 그러나 「황제」에서 피아노는 시작부터 오케스트라의 테마 위에 화려한 연주를 얹으며 등장한다. 전통적 위계를 해체하고 음악 속 민주주의를 실현한 것이다. 베토벤은 귀족의 후원에 의존하던 전통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예술적 신념에 따라 작품을 발표하고 대중과 연결되는 방식을 택한 음악가이기도 했다.

과학에서 시작된 진보는 사회를 바꾸는 감각과 인간을 존중하려는 태도로 이어졌고, 그 믿음이 곧 베토벤을 혁신가로 만들었다. 해마다 연말이면 각국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은 베토벤의 「합창」을 연주한다. 한 해를 보내며 음악으로 인류애를 되새기는 시도일 것이다. 올해는 봄이 가기 전, ‘환희의 송가’를 들을 수 있길.

https://youtu.be/OX-rOkmjiPE?si=dK_2Xt6nYTATi0NI

*2025년 3월 31일 <카이스트신문>에 연재한 글을 다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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