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음악 속에서 발견한 뉴턴
사람들에겐 저마다 안정감을 주는 장소가 있다. 나에게는 ‘피아노 앞’이다. 새로운 일을 앞두고 긴장되거나 스스로를 압도하는 스트레스에 짓눌릴 때면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를 펼친다. 그리고 그 악보는 클래식 음악이어야 한다. 정해진 음표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덧 마음은 가라앉는다.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던 2024년 여름에도 어김없이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10년 만에 학교라니, 마음을 가다듬을 나만의 의식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때 선택한 음악이 ‘클래식 음악의 구약성서’로 불리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었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모든 조성을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도록 고안한 ‘평균율’이라는 조율 방식을 기반으로 작곡됐다. 장조와 단조 각 12개씩, 총 24개 조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각 조성마다 전주곡과 푸가가 하나의 쌍을 이루고 있다. 바흐는 이렇게 48곡의 전주곡과 푸가로 클래식 음악의 기본 언어와 음악적 원칙을 집대성했다. 베토벤과 모차르트, 쇼팽 등 수많은 후대 작곡가들이 작곡과 연주의 기초로 삼았고, 이 작품은 클래식 음악의 근간이 되었다.
바흐가 이 곡을 작곡하던 18세기는 ‘질서’와 ‘합리성’이라는 가치가 시대를 관통하고 있었다. 혼돈과 신비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세상은 이성적 탐구와 수학적 원칙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바흐는 음악에서 질서와 구조를 구현하고자 했다. 그것이 아름다운 예술에 도달하는 방식이라 믿었다. 이러한 철학을 담아 바흐가 탄생시킨 것이 ‘대위법’이다.
대위법은 두 개 이상의 독립된 선율이 동시에 움직이면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기법이다. 바흐의 음악은 철저한 계산과 정교한 계획 속에서 구성됐다. 그의 대위법이 가장 빛을 발한 것이 바로 푸가였다. 푸가에서는 하나의 주제를 제시하면, 다른 성부들이 엄격한 규칙 아래 이를 반복하고 변형하면서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바흐가 음표 하나하나에 철저한 질서를 담게 된 건, 몇 년 앞서 자연 세계에서 엄격하고 정교한 질서를 발견했던 한 사람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른다.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1643~1727)이다. 뉴턴 이전까지 사람들은 우주를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뉴턴은 관찰과 수학적 분석을 통해 자연이 명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밝혀냈다. 그는 『프린키피아』에서 지상의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과 행성들이 궤도를 그리며 움직이는 현상이 중력이라는 힘 때문이라는 점을 증명했다. 뉴턴의 운동법칙과 만유인력 법칙은 복잡해 보이는 자연현상 뒤에 숨겨진 명료한 수학적 질서를 드러냈다.
바흐와 뉴턴은 직접 교류한 적은 없지만, 질서와 조화를 향한 같은 시대정신을 공유했다. 뉴턴이 수학적 분석과 정밀한 실험을 통해 자연과 우주의 질서를 발견했다면, 바흐는 소리라는 무형의 세계를 정교한 수학적 질서로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러므로 내가 작년에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수많은 악보 중 바흐를 꺼내든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럽더라도, 나의 마음이 아무리 어지럽더라도, 바흐의 음악에 손가락을 얹어보면 그 명확하고 아름다운 질서로 인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이들에게, 바흐의 음악을 권하고 싶다.
*2025년 3월 18일 <카이스트신문>에 연재한 글을 다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