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면 닫힌 창문틈으로 빗물이 줄줄 샌다. 이것이야말로 쏟아지는 폭우가 온통 밤하늘이던, 올여름 어느 불면 사이로, 나지막이 들려오는 무질서한 빗소리와 연약하고 규칙적인 물방울 소리에 밝혀진 40년 넘은 주택의 중년의 위기. 그날 밤, 나는 집 안에 불도 켜지 않은 채 수건 무더기를 품에 꼭 끌어안고 문제의 창문이 위치한 두 개의 방으로 차례차례 들어섰다. 플라스틱 대야에 레고를 하나, 둘 던져 넣다 우르르 쏟아붓는 소음 속에 창틀 위로 잘 마른 수건들을 차곡히 쌓아 올려놓으면서 이 순간이 한여름 단 하룻밤의 폭주이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올해 여름은 천둥 번개를 동반한 돌발적인 집중 호우의 계절이었잖아요. 그리하여 날씨로 신음하는 우리 집 창틀에게 갓난아기 기저귀 수발들 듯하며, 낮이나 밤이나, 창문 교체, 창문 교체 비용 견적, 갖은 구글 검색 끝에 이곳저곳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여보세요, 왜 말 안 하니* 아니, 저기 비만 오면 창문에서 물이 새서 그러는데요.
나 하나로도 버거운 일상에 낯선 타인의 중요한 등장은 영영 불가피하다. 그러니까 빗물이 새는 창문 교체 비용 견적을 내기 위해 지금까지 3인의 아저씨들이 똑똑 우리 집에 저벅저벅 방문했다는 말이다. 이 아저씨들은 생김새부터 복장까지 모든 면에서 서로 전부 달랐는데 그중 나를 유독 사로잡은 한 가지는 신발 벗기에서 드러난 그들의 양말, 발냄새, 아니 태도였다. 아저씨 1, 열린 현관문을 통해 들어와 곧장 바로 서서, 제가 신발을 벗어야 되나요? 아저씨 2, 남편이 정중하게 신발을 벗어달라고 부탁하자 인상을 찌푸림. 그리고 나의 아저씨 3은 저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신발 좀 제발 벗어주시옵소서, 더듬거리는 내게 정색하며 자기가 도저히 그럴 수는 없겠다고 대답하는 동시에 천천히 허리를 수그려 신발을 벗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 1이 신랑감이라면 아저씨 3은 연애 상대고 아저씨 2는 아드님이시네, 창문과는 전혀 무관한 생각에 빠져 있던 나날 중에 받아본 이메일 견적서에는 사람마다 부르는 게 값인 콧대 높은 창문의 존재감이 숫자로 압도적이었다.
우리가 창문 교체에 대한 결정을 미루고 한숨을 쉬면서 주저하는 사이 비가 오다 말다 맑게 갠 하늘이 하루 이틀 이어지더니 계절이 바뀌었다. 창틀 위로는 여전히 수건탑이 건재하지만 가을비는 여름비와 다르게 쌀쌀맞고 낭만적이어서 집안으로 함부로 들이치며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세 개의 방과 화장실, 지하실 곳곳에서 이름 모를 한 종류의 벌레가 식구들의 비명과 함께 출몰하고. 이미 아는 그곳으로 당장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나야. 저기 저희 집에 전에 못 보던 벌레가 자꾸 나타나가지고요. 사람과 집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그의 이름은 노린재. 아저씨는 우리 집 주변에 해충약을 쳐주고 난 다음 이런 말을 덧붙였다. 창문이 오래되어 보이는데 창틀마다 작은 틈들이 벌어져 있네요. 창문을 새로 바꾸면 집안으로 벌레가 덜 들어올 겁니다. 아저씨 1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너 저번에 우리한테 견적서 받았잖아. 아, 네, 그때는 방 두 개 창문만 견적 받았는데요. 이젠 집 전체 창문 견적이 필요해지고 말았다고요.
우리가 차마 더 견딜 수 없는 건 세탁 아닌 살생일까. 빗소리 아니고 비명? 생명의 근원 보다 생명 그 자체인가. 아니, 아직은 미지한 견적서의 기다란 숫자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