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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Dec 06. 2023

좋은 달리기 있으면 소개시켜줘

   한여름에 등록해 놓은 초겨울 하프 마라톤이 대회 하루 전날 저녁 전격 취소되었다. 이 하프 마라톤으로 말할 것 같으면, 타인과 마주한 우리의 모든 대화가 기승전 달리기로 마무리되는 그 기나긴 진상적 시간의 심오한 결실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러니까 우리와 함께 그의 생애 맨 처음 하프 마라톤을 뛰기로 결심한 이에게 감히 이런 실망을 안겨주다니. 하지만 인류가 각자의 마음대로 살만 하게 조각난 이 세상엔 셀 수 없이 많은 하프 마라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질 예정인 것이다. 우리는 재빨리 또 다른 하프 마라톤 대회를 새로 찾아 등록을 서둘렀다. 한 손에 쥔 스마트폰 위를 가로지르는 두 엄지로 정신없이 다급한 이 결재 과정에서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는 미지의 21km, 그 숫자 앞을 머뭇대오래 망설이기만 하던 한 여자가 아, 몰라, 될 대로 돼라, 우리의 여정에 합류한다. 순간 가만한 일상 속의 우리가 몇 달간 여기저기, 안락한 소파의 유혹을 떨쳐내며 겨우 달려온 거리를 한방에, 아니, 도대체, 왜, 심사받는 듯 비장한 기운이 우리 사이를 감돌고. 드디어 추수감사절을 온갖 음식으로 흥청망청 배 터지게 보낸 뒤의 토요일 아침, 4인분의 중년의 위기가 뉴욕 퀸즈의 어느 공원을 무리 지어 달린다.


   나이 들어 나 아닌 다른 어른의 어떤 첫 경험에 동참한다는 것은, 그게 낭만적인 사랑하고만 관계있다면 달리기는 이 세계의 쓸모없는 열기나 객기일 테지만, 사소해서 더욱 어려운 일을 반복하며 우리가 스스로 더 나아지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노쇠만을 향한 삶에 대한 반격이다. 아니면 타인을 자꾸 달리기에 끌어들여 21세기 달리기의 신선도를 유지하고자, 아기 달리기를 세상에 선보이는 그 떨리고 감격스러운 동반 완주의 찰나에 우리가 온통 사로잡혀 있다고 여기서 솔직히 고백해 보는 건 어떨까. 두 계절의 고민을 단 몇 시간 만에 그쳐 버린 언니 곁에서 나는 마치 늠름한 호위무사처럼, 어여쁜 치어리더 같이 달렸다. 고르지 못한 아스팔트 길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 바로 직전까지. 언니, 이것이야말로 달리기의 묘미입니다. 누구도 이렇게 달리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넘어질 거라고는 예상치 못하겠죠. 그리고 또 이런 식으로, 방금 무슨 일 있었나요? 벌떡 일어나 천연덕스럽게 달릴 거라고도 말이에요, 언니한테 떠들어 댈 여유라곤 하나도 없었다. 다만 언니의 걱정 어린 보살핌을 받으며 달리는 그 길은, 나의 돌발적인 넘어짐으로 인해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2시간 10분 완주 페이서 주변을 달리는, 모두의 안전한 발소리로 내내 평안했을 뿐. 전날 저녁 언니네 식구들과 먹은 마라샹궈가  아랫배를 묵직하게 짓눌러오기 전까지 말입니다.


   한편 하프 마라톤 완주 기록에 연연하며 지나온 나날의 훈련과 지금 이 순간의 신체 능력에 전적으로 의지한 두 남성은 자신들을 앞서 달리던 페이서를 결국 제쳐 버리고. 저, 먼저 가볼게요, 예의 바른 작별인사까지 남긴 뒤, 남은 거리를 전력질주, 따사로운 햇살아래 녹아가는 눈사람 같은 녹초의 모습으 만족스럽게 달리기를 마쳤다고 한다. 어느새 페이서를 멀리 떠나보낸 뒤, 언니, 저 화장실 좀, 먼저 가세요, 를 외치며 서로 만났다 헤어지길 반복하던 두 여성은 화장실이 시야에 잡히지 않는 곳에서 한 손을 배 위로 짚으며 엇, 야, 나도 신호 왔어, 의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최선의 질주로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 마지막 5km를 우리가 어떻게 걷고 뛰었는지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언니한테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자꾸 소리 지르다가 욕을 먹고, 아우, 더워, 윗옷을 벗어버린 언니는 순식간에 반팔차림이 되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나의 남편이 힘겹게 달리는 우리를 사진 찍네, 결승선을 앞에 두고 언니 옆으로 한 발 비껴손뼉을 치면서 감상하는, 감격과 환희에 찬 언니의 존재감이 아름다워, 결승선 너머 우리를 기다리는 배고픈 친구들의 목소리가 고맙고, 마침내   일을 다 한 두 다리가 멈춰 선 자리엔 우리의 포옹과 후회. 언니, 우리 어제 마라샹궈 왜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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