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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물리에 Jan 25. 2024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스물네 번째 절기, 대한

2024년 1월 20일, 24절기의 마지막 절기인 '대한'이었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라는 말을 입증하듯 서울에는 눈 대신 비가 내렸다.


ktx에서 내려 서울역 밖으로 나가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는 눈치도 못 챌 만큼 조금씩 내리는 비였다.

괜히 우산 사는 것이 아까워 비를 맞고 돌아다녔다.

한 시간 정도 걸었음에도 젖지 않을 만큼의 비였지만 대신 쉬지 않고 내렸다.


비를 맞고 돌아다니는 내내 생각했다.


소한이 아닌 대한이라 눈 대신 비가 오는 걸까.


혹여나 올해처럼 포근한 날이 잦은 겨울에는 

이렇게 겨울비까지 오게 되면 식물들이 착각할 수 도 있겠다.


겨울은 식물의 모든 영역이 잠시 휴면을 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봄이 오면 길어지는 낮과 올라간 기온을 눈치채고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겨울의 온도가 평년과 다른 양상을 보이면 식물들이 헷갈린다.

실제로 순진한 몇몇 친구들은 벌써 봄이 왔다고 착각한다.


2023년 12월 @덕수궁


지난 10월, 수원에서 수목 예찰할 때 부끄러운 듯 한 두 송이 피어있는 벚꽃을 봤다.

12월쯤에는 철쭉이 피었다는 제보(?)를 여기저기에서 카톡을 받았고

12월 15일 덕수궁 산책에서도 겨울비를 맞고 있는 철쭉을 봤다.

지난 1월 낙산공원 산책길에서도 개나리가 곧 필 것 같은 모습이라 너무 안타까웠다.


일찍 핀 꽃은 결실을 맺기 어렵다. 

불가능하다.


식물을 구성하는 기관은 영양기관과 생식기관으로 나뉘는데

꽃과 열매, 씨앗이 생식기관에 해당하며 

특히 꽃은 생식과정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수분'에 특화된 기관이다.


꽃은 매혹적인 모습과 향기, 맛있는 꿀로 자신의 꽃가루를 옮겨줄 곤충을 불러들인다.


그런데 겨울에는 아무리 매력을 뽐내도 찾아오는 이가 없다.

대부분의 곤충들도 기온이 떨어진 겨울에는 휴면기를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는 손님 없이 열린 가게는 쓸쓸하게 셔터를 내릴 수밖에 없다.


때를 맞춰 피지 못한 꽃이 지는 일은 꽤나 마음이 아프다.


개나리 / 2023년 1월 6일 @낙산공원 가는 길 


이 글을 남기는 1월 25일 목요일은 며칠 째 최고 기온이 영하이다.

그래도 월요일부터 이어진 강추위가 오늘부터 점점 누그러질 듯하다.


그전까지는 날씨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나무의사로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날씨에 민감해지게 되었다.

날씨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이렇게 소소하게 기록도 시작했다.


앞으로 매 절기마다 기록을 꾸준히 남길 예정인데

할머니가 되었을 때의 24절기가 지금과는 너무 다를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고 무섭다.


부디 지금과 비슷해주길 바라며, 다음번 절기이자 24절기의 시작인 '입춘'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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