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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해공 Dec 19. 2020

남산

언제나 다정한 표정으로 맞아주는 친구

출퇴근 길에 만났던 남산은 감동 그 자체였답니다.

 

팍팍한 회사 생활을 버티게 해 준 건 가족도 친구도 아닌, 출퇴근 길에 만나는 남산이었습니다. 출근길에 402번 버스를 타고 한남대교를 지나 남산으로 올라갈 때면,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곤 했어요. 고소한 햇빛과 신선한 바람,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리드미컬하게 달리는 버스의 흔들림이 참 좋았답니다. 볕이 좋은 날엔 창문을 활짝 열고 광합성을 하며 출근했고, 제시간에 퇴근하는 날이면 소월로를 따라 걸으며 야경을 감상했어요.  


 '산이 꼭 내 마음을 아는 것 같아... 이런 기쁨을 여기서 얻을 줄이야!'


 남산이 내게 준 찰나의 감동을 글로 다 옮겨 적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만 782장! 다시 꺼내 보면 눈으로 봤던 것만큼 감동이 덜해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볼 수 있으니 만족해야겠지요. 언젠가 회사일로 분노하다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어 사무실에서 뛰쳐나왔던 일도 생각나네요. 굽이 7cm나 되는 뾰족구두를 신고 남산공원까지 미친 사람처럼 뛰어갔었던, 벤치에 앉아 후! 후! 숨을 내쉬며 육두문자를 내뱉던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네요.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만나온 남산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내 삶의 일부분이자 소중한 친구가 된 것 같습니다. 친구들은 회사를 그만두고 뭐가 제일 아쉽냐고 묻더군요. 답이야 뻔하지 않을까요?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도, 재미있는 캠페인을 만드는 일도, 티키타카가 되던 동료들을 못 보는 것도 아쉽지만! 제일 아쉬운 것은 남산을 예전처럼 자주 만날 수 없는 거랍니다. (요즘도 종종 남산을 찾아가지만, 매일 보지 못하는 건 여전히 아쉬워요.) 할 수만 있다면 남산 근처로 이사 가서 매일매일 만나고 싶을 정도로 나는 남산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사랑한다고 말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만나게 될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남산이 되고 싶다'라고. 회색빛 도시에서 숨통이 트이게 해주는 사람, 지친 누구에게나 품을 내어주는 동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너무 감성적이고 추상적인 대답일까요? 만약 이 글을 읽으시면서 그런 생각이 드신 다면 이렇게 말씀해드리고 싶어요. 일단 가보세요. 가슴이 꽉 막히고 위로가 필요한, 그런 날에요.

그러면 꼭 보게 될 거라고. 다정한 표정을 짓는 남산을, 그렇게 품을 내어주는 나의 친구를 말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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