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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솔지책 Feb 21. 2023

친구는 없지만 진짜진짜 아무렇지 않아

(내 얘기 아님)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왜 좋은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냥 좋았던 《인간의 제로는 뼈》라는 책입니다.


마이조 오타로, 정민재 옮김, 《인간의 제로는 뼈》(민음사, 2022)

어쩐지 멍하지만 아주 확실한 표정이 정말 딱 주인공 같은 느낌..



내 이름은 카오리! 친구? ㄴㄴ

—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카오리’라는 15세 소녀입니다. 조금은 폐쇄적이고 어쩌면 차가운 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읽지 않는 인간”은 “무엇이 진부하고 깊이가 없는지” 구분할 수 없다 믿고, 피는 그저 “다른 가족과 우리를 구분지어 주는 것일 뿐, 우리를 서로 이어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카오리는 반에서 한두 명쯤은 있는 시니컬한 친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친구들이 대개 그렇듯 친구는 없지만 별로 개의치 않죠.



우리 집 이야기

— 카오리 집은 4인 가족이지만 어느 순간 아빠가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아요. 여자친구가 생겼기 때문이죠. 엄마는 아빠가 집을 나간 뒤로 딱히 뭔가를 하지 않고 두문불출해요. 카오리는 이 상황이 딱히 불만은 아닙니다. 가족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카오리는 가족이야말로 다양한 형태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 하지만 카오리가 이렇게 된 건 어른들 잘못이기도 해요. 카오리는 아빠의 깊이 없는 말이 싫었고 “나는 배요, 당신은 나의 항구” 같은 말을 하는 아빠도 싫었습니다. 그런 말을 그냥 듣고만 있는 엄마도 싫었고요. 그래서 연애와 결혼을 비웃었고 그러다 보니 또래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어려워졌거든요. 카오리는 마음 한구석에 어떤 어둠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내 동생 토모노리: 거의 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

— 카오리에게는 토모노리라는 남동생이 하나 있어요. 토모노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일본도 동양답게.. 카오리는 J장녀로서 토모노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이혼할지도 몰라! 난 토모노리랑 떨어질 수 없어! 이런 마음이요.

— 게다가 둘은 죽이 좀 잘 맞기도 해요. 이런저런 상상을 내뱉기도 하고 if 놀이를 하며 밤을 보내기도 합니다. “100억엔이 생기면 뭐할 거야?” “아빠가 돌아올까?” 같은 얘기부터 별별 얘길 다 하죠.


박솔뫼 작가의 추천사가 좋았어요!


그런데 일상을 비집고 들어오는 이상하고 특별한 일들

— 카오리의 일상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마 특별히 나쁘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토모노리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또 대학을 간 후 우연히 아빠의 불륜 상대를 만나며 조금씩 일상이 변합니다. 평소처럼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남동생의 자위를 보게 된다던가, 아빠의 불륜 상대와 친해진다던가 하는(역시 쓰면서도 이상하지만요.. 그게 또 읽다 보면 마구 이상하진 않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과 맞닥뜨리게 돼요.

—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겪어보지 않았던 일들을 겪고, 만나보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카오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조금씩 바뀌게 돼요. 시답잖은 얘기들을 하는 사람들을 혐오했고, 진부하고 별볼일없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뭐라도 좋으니 목표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느껴요.



우리의 제로는 어차피 뼈니까

— 카오리는 어느 날 낯 모르는 이의 장례식에 참여했다 화장 이후 절차까지 보게 돼요(네, 역시 이상한 부분인 거 압니다..). 일본은 화장을 하고 난 후 나온 뼈들을 머리뼈부터 차례대로 주워 유골함에 넣는데요, 이걸 보면서 카오리는 “아, 인간의 제로는 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어요(이것마저 귀여운 부분입니다..). 뼈는 그저 뼈일 뿐이고 그마저 어딘가에 뿌려질 테니, 이 세상에 남는 건 그저 뼈에 붙여질 살들, 그러니까 우리의 이야기뿐이라는 생각을 하죠. 그리고 뼈를 가진 모두에게는 그 뼈에 무엇이든 붙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요.



아니 이게 뭔 얘기야 그래서..?

— 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이 책 자체가 사실 좀 난해한 면이 있어요. 시간이 아주 급히 흐르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굉장한 의식의 흐름대로 쓰여 이게 진짜인지 상상인지 분간이 안 되는 부분도 있어요. 게다가 제 설명이 미흡하기도 하고요..ㅠ

— 하지만 어쩌면 카오리 이야기는 그렇기에 더 큰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저희 모두 뭐가 뭔지 모르겠는 어린 순간들을 지나왔고 지금도 가끔은 대체 이게 뭐야? 싶은 감정을 느끼잖아요. 이 책은 그런 혼란스러움을 카오리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잘 풀어내요. 그게 설사 혼란 그 자체라도요.


종이책 252쪽에는 이렇게 대문짝 만하게 “기분 나빠!”가 들어가 있어요. 무려 36포인트라고 합니다. 왠지 저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에요. 기분 나빠!


꼭 소개하고 싶었던 문장

“나쁜 소문 때문에 네 이미지가 추락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네가 공격을 받더라도 너의 본질이 바뀌는 건 아냐. 도발에 응해서 네 본질과는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면 그쪽의 전략에 넘어가는 셈이야. 그쪽에서는 네가 무너지는 걸 끈질기게 기다리면서 여러 방면에서 양동작전이나 다른 작전을 걸어오겠지만 결국에는 단 한 가지 방법으로 승부하는 쪽이 강하거든. 너는 네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돼. 네 주변에서는 너 때문에 자기들도 피해를 입었다는 식의 모호한 불평을 하는 녀석도 나올 수 있을 거야. 그 애들도 자기도 모르게 아카리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는 거거든. 튕겨 내면 돼. 끝에 가서 친구들의 숫자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나 평가에 크게 관계없으니까. 친구는 양보다 질이야. 진정한 친구라면 있는 그대로인 너를 봐줄 거야. 힘내.”



사족

—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왠지 이 책이 되게 좋았어요. 이유는 정말 모르겠지만.. 어쩌면 카오리의 어렸을 때 모습이 저희 모두를 약간씩은 닮아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 하나도 어렵지 않고 아주 잘 읽히는 책이에요. 재밌는 책 뚝딱 하고 싶다 하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 원제는 “비치 마그넷(BITCH MAGNET)”이에요. 후반부에 이게 무슨 얘긴지 나오는데요, 어쨌든 원제보다 한국 제목이 좋은 것 같아요. 제목만 보고도 사고 싶은 느낌!



부디 다른 책들도 얼른 소개할 수 있길 바라며…

제 게으름을 제발 극복할 수 있길 바라며…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손 번쩍 들어 인사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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