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에 관하여
2023년 새해가 밝았지만 사람이 일관성이 있어야 하기에 여전히 게을리(..) 업로드를 해봅니다..
새해고 나발이고 감당할 수 없는 상실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인데요, 오늘은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을 달래줄 책을 소개해보려 해요.
론 마라스코와 브라이언 셔프 지음, 김설인 옮김, 《슬픔의 위안》, 현암사, 2012.
— 이 책에서 주로 말하는 슬픔은 "사별"입니다. 사랑하던 혹은 곁에 있던 누군가를 사고로, 병으로 잃은 사람들이 느끼는 강력한 슬픔에 대해 말하는 책인데요. 읽다 보면 이 슬픔이 사별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별만큼은 아니더라도 그것과 비견할 수 있는 슬픔을 겪을 수 있으니까요.
— 이 책을 쓴 론 마라스코와 브라이언 셔프는 예술 쪽 종사자들이랄까요..? 그래서 책 자체가 슬픔의 원인이나 치유 같은 학구적인 이야기를 하진 않아요. 그저 슬퍼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느끼는 슬픔에 집중할 뿐입니다.
— 이 책은 슬픔을 단계별로 얘기하고 있어요. 갑작스럽게 슬픔이 찾아왔고 그 슬픔을 어떻게 마주하는지, 그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려 하는지, 사라지지 않는 슬픔이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등입니다.
— 그럼 가장 첫 번째는 대체 슬픔이 무엇인가이겠죠. 이들은 루이 암스트롱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 루이 암스트롱에게 재즈를 정의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 루이 암스트롱은 "재즈가 뭔지 물어야 한다면 당신은 영영 재즈를 알 수 없을 겁니다"라고 답했다. 슬픔도 마찬가지다. 당신에게 슬픔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면 그건 슬픔이 없다는 이야기다. (26~27쪽)
이 부분을 읽으며 아주 정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무언가 때문에 슬퍼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슬픔은 보통 슬픔이 뭐지?라고 물을 새도, 정신도 없이 찾아오잖아요. 그러니 "슬퍼한다는 게 뭔데?"라고 되물어보셔야 하는 분이라면 이 책을 읽으실 필요가 없을 겁니다.
— 앞서 쓴 것처럼 이 책의 슬픔은 주로 사별입니다. 그래서 사별 이후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슬픔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나와 있어요. 아시다시피 그것은 주로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입니다. 왜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이 갑자기 빨래하려다 말고 옷을 안은 채 혹은 늘 걷건 거리를 지나다 왈칵 울곤 하잖아요. 바로 그럴 때 우리는 처절하게 무너집니다.
삶은 한 잔의 커피처럼 소소한 것들로 연결된다. 모든 관계는 서로 관련이 있는 특이한 성벽들이 뒤섞여 이루어진다. 진정한 사랑은 큰 것들이 살짝 뒤섞이는 게 아니라 작은 것들이 마구 뒤섞이는 것이다. (32쪽)
— 커피를 마시다 보면 생각이 나는 거죠.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차갑게 식었던 혹은 얼음이 녹으며 챙그랑 소리를 냈던 순간, 커피잔을 쥐던 그의 손가락 같은 것들이요.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과거의 모든 순간과 함께 그와 함께할 미래까지 모조리 잃어버리는 것이라 더 슬픈 거고요.
— 극심한 슬픔을 겪는 사람들은 인지적 오류를 겪어 많은 걸 잊고 무기력이나 우울을 겪어요.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은? 혹은 새롭게 안? 거지만 슬픔에 젖어 지내는 사람들은 "큰 고통을 못 느낀다기보다 큰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고통보다는 기쁨에 무감해지는 겁니다.
— 이 외에도 슬프기에 관계를 끝낸다거나(이혼 혹은 이별 등)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사람이 되기도 해요. 어떤 사람들은 슬픔에 관련된 책을 찾기도 합니다. 내 슬픔을 마주하려는 시도인 거죠. (저도 이 책을 슬플 때 집어들어서 아주 놀랐답니다..)
— 이 책은 슬픔이 사라지진 않는다고 말했던 것 같아요. "아무런 경고도 없이 삶에 틈입"한 슬픔은 기약 없이 사람을 갉아먹거나 지치게 하고 시간이 지나도 문득, 불현듯 그 슬픔이 찾아오니까요.
— 다만 슬픔을 마주하며 슬픔이 주는 상처가 "사랑의 기쁨"이 있었기에 받는 거라고 생각한다면(사랑하고 애정하지 않았는데 슬플 리가 없으니까요!) 슬픔에 잡아먹히진 않을 것 같아요.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슬픔과 기쁨은 모두 병원과 인간관계의 삶의 일부로, 서로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슬픔은 떠난 사람을 사랑했기에 치러야 할 계산서다. 사별의 슬픔으로 입는 상처는 두 사람이 나눈 사랑의 기쁨만큼이나 깊다. 에밀리 디킨슨의 말을 빌리면 애통해하는 모든 이들의 운명은 "사랑과 대비되는, 더 큰 고통을 깨닫는 것이다." (305쪽)
— 책은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분량인 것 같아요. 게다가 한 글의 길이가 길지 않은 편이라 끊어 읽기에도 좋은 것 같고요.
— 어려운 주제를 다루지만 쉽고 편안하게 쓰였습니다. 다 읽고 나니 뭔가 괜찮은 사람과 좋은 대화를 나눴단 느낌이 들더라고요. 계속 살아남아 팔리고 있는 이유가 뭔지 알았답니다..ㅎ
여러분이 느끼고 있는 슬픔이 좋았던 어떤 것의 흔적이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