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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Sep 01. 2024

그 여름의 끝에서 만난 문장들

[밑줄독서] 이성복 - 고백의 형식들

글은 자기가 살아낸 만큼 쓸 수 있는 것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시는 언어의 진부함과 돌연함에 기대고 있다는 말. 행복한 삶도 그래야 할 것임을 믿는다. 여름이 한창이던 일요일 오후에 좋은 시공간에 대한 욕심이.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대낮에 술 한잔 하며 책을 읽고 싶은 마음. 예전에는 그렇게도 무료 모임과 공간을 찾아다녔는데 시간은 흐르고 적당히 돈도 벌고 있다. 책은 혼자 읽는 것이고, 장소는 크게 중요치 않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을 뒤로한 채 나이를 먹을수록 제대로 된 시간과 공간에 돈을 쓰는 것에 거부감이 약해지는 중이다. 결국 제대로 된 시간과 공간에는 제대로 된 인간을 만날 가능성도 높기에.


재즈가 흐르는 곳에서 하이볼 한잔과 함께 돌연히 만난 이성복 시인의 <고백의 형식들>. 폴 데스몬드의 색소폰과 피아노 선율이 조화의 쿨재즈. 사각의 종이 위에 바래진 시간을 머금은 문장은 한 여름의 끝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이제 가을이 오면 여름의 끝에서 채우지 못했던 당신의 부재를 소중한 문장들로 가득 채우리라.   


시 언어의 유동성과 가변성은 현실이라는 무정형의 덩어리를 한 순간에 부수어놓는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삶에 대한 열정에서 태어나지 않는 시는 없다.  

시는 더 이상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삶이 궁지에 내몰려 내지르는 외마디 소리이다. 좋은 시는 그 부르짖음에 의해 읽는 사람 자신의 삶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다.  

시에서는 착안이 절반이다. 시 정신은 대상을 뒤집으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뒤집는다.  


 불행한 글쓰기는 변비이거나 설사인 경우가 많다.  

 좋은 글쓰기에는 (공기처럼) 항시 손바닥과 손등을 뒤집는 순간이 존재한다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에 오래 젖어 있는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헛농사를 짓게 된다.  

 글쓰기는 항상 작은 데서 큰 데로 나아가야 한다.  

 글쓰기의 한계는 인간 의식의 한계다  

 좋은 글쓰기는 한 곳으로 계속 몰아두어야 한다.  

부드러운 글쓰기는 항상 힘을 갖지만, 부드러운 글쓰기를 위해서는 최대한 힘을 빼야 한다.
문제는 힘 있는 사람만이 힘을 뺄 수 있다.  

글쓰기는 대상을 향해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나는 내 몫으로 찾아내야 할 세계가 무엇인가를 깊게 고민하게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人間)은 '사이'에 있는 존재이고 사랑도 아름다움도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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