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준비가 한창이던 2021년 9월의 어느 날, 토익시험을보러 간 남편이 불쑥 한 장의 사진을 보냈다.별이 잘 보이는 '국내 밤하늘 명소 TOP 5'를 소개한 잡지의 한 페이지였다.'으이구~ 시험을 보러가서도 놀 궁리를 하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그러한 남편의 여유와 행동은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인트였다. 남편은 항상 내가 지쳐 있을 때, 넌지시 혹은 무심한 듯휴가 내지는 휴식을 제안하곤 했다.
도대체 시험장 어디서 이걸 발견한 걸까?남편의 눈에는 그가 원하는 것들만 보이는 것 같다.
서울에 사는 우리는 주말이 되면 서둘러 서울을 빠져나갔다.남편과 나는 인구밀도가 낮고, 조용하고, 자연친화적인 곳을 좋아한다. 서울은 우리의 생활을 위한 공간이었고, 휴식을 위한 공간은 달리 찾아 나서야 했다. 집에서 뒹굴거리거나 잠을 자는 건 우리 스타일의 휴식이 아니었다.
여느 때처럼 강원도 춘천으로 놀러갔던 주말 저녁, 막국수를 먹던 중 남편이 별을 보러가자고 제안했다. 남편이 보냈던 잡지 사진 속 소개되었던 곳 중 하나가 춘천의 '건봉령 승호대'였기에, 남편은 애초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뜻밖의 별 구경을 하게 될 생각에, 식사와 커피타임을 즐겁게 마무리하고 목적지로의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여보 여기가 맞아?", "무서워..", "잘못 온 것 같아..돌아갈까?" 승호대로 가는 길, 나는 점점 불안감에 휩싸여 갔다. 칠흑같은 어둠 속 불빛이라고는 우리 차의 전조등 뿐이었고, 나는 온갖 무서운 상상을 하며 겁을 집어먹고있었다. 오르막 산길은 차가 한 대만 지나갈 정도의 외길이라, 길을 물릴 수도 없었다. 남편 또한 당혹감과 곤란함을 품은 채 직진만을 했다.
목적지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한 우리는 덩그러니 길에 차를 세우고, 창문으로 하늘을 보려 애썼다. 차의 루프창까지 열어보았지만, 구름 낀 하늘에 보이는 별은 없었다. 내려서 주변의 공기를 느껴보려 해도, 차 문을 열기는 커녕 잠금을 푸는 것조차 두려웠다. 잠복하고 있던 괴한이나, 산짐승이 갑자기 뛰어들면 어쩔 것인가? 그곳은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고 클락션을 울려도 닿을 데가 없는 외딴 곳이었다.
30분 남짓한 시간동안 남편과 나는 별에 대하여는 잊은 채 그곳의 오묘할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를 느끼며 차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겁을 먹은 채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오롯이 둘과 우리의 차만이 산꼭대기에서 유일하게 자연이 아닌 존재일거란 사실이 뭔가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비록 별은 안보였지만, 별을 찾는 모험으로 인해 남편과의 추억과 연대감이 한층 쌓인 느낌이었다.
건봉령 승호대로 가는 길을 검색중인 남편
당일치기에 제격인 춘천 여행(공지천의 야경과 로맨틱 무드♡)
별을 찾아 헤메는 우리의 모험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제주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섭지코지에서묵던 날 밤에도 근처 오름에 별 관람 명소가 있다 하여 찾아 갔었다. 가는 길은 승호대로 가던 길보단 덜 위험해 보였지만, 무서운건 매한가지였다. 가면서도 나는 이전과 똑같은 상상을 했다. '괴한이나 들짐승이 우리 차를 덮치면 어쩌지?' 물론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차 문을 열고 나가지 못했고, 차 문을 잠가놓은 채 남편과 두런두런 얘기만 하다 왔다. 데자뷰 같았지만, 분명 다른 풍경 속(제주에서는 별이 조금 보였던 것 같다..) 다른 상황이었다.
두 번째 별 모험을 하며 영혼이 탈탈 털리고, 내 옆의 드라이버(남편)에 대한 믿는 구석만 커져 갔다. 어쩌면 남편과 외지고 험한 곳을 찾아 모험한다는 사실 자체가 별을 만나는 것보다 특별한 경험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우리는 별 구경을 포기할 법도 한데, 출산 이후에 또 다시 도전의 기회가 생겼다. 나의 생일을 맞아 시부모님께서 아이를 봐주실테니 둘이서 여행을 다녀오라며 시간을 주셨고, 강원도 평창으로 놀러 간 우리는 주저없이 그 날 밤 '강릉 안반데기'로 향한 것이다. 이번에도 별을 만나러 가는 길은 적막했고, 아리송했다.
"우와아아아~~!!" 나는 차에서 탄성을 지르며 총알같이 내렸다. 안반데기 별 명소는 이미 주차된 차들로 꽤 활기가 넘쳤다. 이런 곳에 주차장이 있을 거라 상상도 못했지만 정확하게 찾아왔고, 그 곳은 제대로 된 스폿이었던 것이다.
밤하늘을 수 놓은 찬란한 별들, 명확하게 보이는 북두칠성, 거대한 실루엣을 뽐내며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들과 그들을 움직이는 힘찬 바람까지. 신선한 경험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듯 했다. 바람을 느끼며 별을 따라 걷는 동안 지나간 수 많은 여정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가장 아름다운 기억들과 비교해도, 그 날의 경험은 뒤쳐지지 않는 스케일이였다. 남편과 별 구경을 실컷 하는 사이 한여름밤의 열기는발전기의 회전음에 실려 시원하게 날아가 버렸다.
안반데기에서의 (1)북두칠성, (2)슈퍼블러드문일까?해를 방불케 하는 달, (3)신이 난 애기엄마.
대관령의 하늘과 평창 방문 시 가는 맛집(황태구이와 더덕구이와 황태국의 쓰리 콤보) 별 따라 맛 따라~
별을 보는 경험은 누구에게는 흔할 수도, 감흥이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공통된 로망이었다. 누구나 꿈꾸고 찾게되는 힐링 모먼트가 있듯, 우리에게도 밤하늘에 흩어진 별을 보는 경험이 그러했다. 템플스테이를 즐겨 하는 우리가 처음 방문했던 절이 강릉 '보현사'였는데, 그 곳에서도 불빛 한 점 없는 밤 하늘에 쏟아지던 별을 보며 감탄을 했었고, 충만해지는 감성을 느꼈었다. 절에는 헤어 드라이어가 없기에자연 바람에 머리를 말리러 나왔다가마주했던순간이었고,그 때의 뷰와 분위기는 남편과의 연애 역사상 최고의 장면으로 남아있다.
선호하는 음식, 음악과 영화를 포함한 예술 장르에 관한 취향, 취미, 여행스타일 등이 잘 맞으면 서로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러한 보통의 것들을 초월한 탈일상의 경험에대한 니즈와 코드가 잘 맞는다면, 함께 추구한특별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일상적인 합이 맞는 것보다 훨씬 큰 임팩트와 로맨스를 선사할 수 있다. 나는 그러한 힘을 믿기 때문에, 앞으로도 남편과의 딥한 취향 공유와 탐색을 통해 함께할 특별한 경험을 설계할 생각이다.
별을 쫓아다니던 우리는, 비로소 성지를 발견했다. 그 곳은 무려 우리만이 알고, 우리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바로 경상남도 고성에 계시는 우리 시부모님의 댁이다. 재작년에 완공되어 시골길의 드문드문한 인가들 사이에 자리한 우리 시부모님의 전원주택은 밤마다 깨끗하고 반짝이는 하늘을 자랑한다. 야외 데크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는 밤이면, 까만 하늘에 수 없이 박힌 별을 보는 낭만은 옵션이다. 별 구경은 이제 고플 때마다 쉽게 가능하게 되었으니, 남편과 나는 머지 않아 또 다른 판타지를 찾아 나서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