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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기부기 Aug 28. 2024

공포의 제왕절개

쫄보의 난생 첫 수술과 산부인과 입원기

우리 아들의 태명은 '물꼬'였다. 

결혼의 물꼬를 텄다고 아버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물꼬는 입에도 착 붙고, 유니크한 태명이라 마음에 쏙 들었다. 가끔 "꼬물이는 잘 지내지?"라며 헷갈려했던 한두명 외에는, 한 번 들으면 모두 기억을 해주었다. 뱃속의 물꼬를 품고 지내는 8개월 간, 아이의 얼굴을 수시로 상상했다. 나와 남편이 믹스된 모습이려나? 부모를 안닮고 특출나게 잘생겼으려나? 누가 봐도 못생긴 얼굴이면? 아이가 태어나기 전 생김새를 확인 가능한 유일한 기회인 입체초음파 시간에도, 숨어서 얼굴을 가린 채 파파라치를 거부했던 철저한 신비주의자 우리 물꼬였다.

얼굴 좀 보여달라고 이 자식아!



물꼬의 출산예정일은 2022년 4월 15일이었다. 나는 무조건 자연분만을 원했다. 제왕절개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연히 자연분만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출산 일주일 전부터 라마즈 호흡법을 연습하며, 혼자 침대에 누워 머릿속으로 자연분만 시뮬레이션을 했다. 몸에 칼만 대지 않는다면, 진통은 얼마든지 감당해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엄마들의 경험을 통해 전해들은 가장 고대하는 순간인 산도를 빠져나온 아이가 첫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을 나는 어떻게 맞을 것인가를 상상했다. 모든 진통의 시간이 순삭된다는 그 경이로운 순간을, 그 감동을 꼭 체험해보고 싶었다.


2022년 4월 14일, 밤이 되자 일찍 잠자리에 들며 뱃속의 물꼬에게 속삭였다. "물꼬야~ 우리 내일은 꼭 만나자!" 딱히 기대나 설렘이 크진 않았고 (무의식의 걱정과 겁 때문이었으리라..) 그저 물꼬의 얼굴이 궁금할 뿐이었다. 진통을 기다리며 잠이 들었기 때문인지, 실제로 자정이 넘어가자 살짝쿵씩 시그널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50분, 40분, 30분 간격으로 잠에서 깼다. 새벽 두 시가 넘어가자, 진통의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남편을 깨웠다. 미리 챙겨둔 짐 덕분에 집을 떠나 병원으로 넘어가는 것은 수월했다. 앞서 소개했던 폭풍의 결혼 준비와 다른 바쁜 일들 때문에, 산부인과는 대학병원이나 유명한 병원이 아닌 집 근처의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무조건 정했었다. 덕분에 남편 차로 준비된 짐을 싣고 5분만에 분만실에 당도할 수 있었다.


(임신 트리거로 인한 폭풍의 결혼 준비) 03화 폭풍의 결혼 준비 (brunch.co.kr)

산부인과 입원-조리원 생활까지 고려한 2.5주치 짐과 분만실 도착 직후 가장 산뜻했던 상태.



분만실에 도착하자 갑자기 신이 났다!!!(?????) 대장정의 첫 발을 내딛듯 뭔지 모르는 흥분과 설렘이 짜릿하게 덮쳐왔다. 옆에서 잠이 덜 깬 채 나의 상태를 관찰하는 남편에게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진통은 점점 강해져 왔지만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고, 의사선생님 두 분이 번갈아 내진을 오셨을 때도 후기로 들었던 것만큼 끔찍하진 않았다. 생각보다 약해도 진통은 진통이었으므로, 배가 아픈 만큼 내진의 성가심 따위는 별로 신경쓸 것이 아니었다.


진통이 오면 서서히 자궁경부가 열리기 시작하고, 아기가 나올만큼 열릴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산모에 따라 다르다. 이 때 실시간으로 자궁경부의 열린 정도를 의사의 손을 통해 측정하는 것이 내진인데, 분만을 위해 몇 번은 필요한 과정이다. 몇 차례의 내진을 통해 이제 물꼬가 나올 때가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런데 들리는 청.천.벽.력. 같은 의사샘의 말씀. "아기가 안 돌아서 수술해야겠는데~?" 순산을 하려면 아이가 엄마 꼬리뼈 쪽을 보고있어야 하는데, 물꼬는 하늘을 보고 있는 아기였던 것이다.



"네?! 수술이요???!!!" 내 배를 칼로 가르고, 내 아가를 직접 꺼낸다니!!! 나는 어떻게든 아이를 돌려보겠다고 시간을 달라 했다. 의료진은 퇴장하고 남편과 '하늘 보는 아기'의 위치를 돌리는 자세를 검색해서 좋다는 방법을 닥치는 대로 시도했다. (분만실에서 진통중인 산모가 아주 파이팅이 넘쳤다.. ) 심해지는 진통으로 무통주사를 척추에 꽂은  고양이 자세로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데, 다시 내진을 오신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계속 버티면 아이가 너무 힘들고 위험해질 수 있으니, 수술을 하자는.


나의 진통이야 앞으로 몇 시간이든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바로 수술을 결심했다. 그리하여 곧 수술대 위에 올라간 나는 새하얀 조명 아래 바들바들 떨며 누워있었다. 너무나도 차가운 수술대와, 시나리오에 없던 예상치 못한 전개가 공포심을 극대화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제왕절개 과정에 대해서는 검색을 해본적도 없었다. 온 몸을 타고 전해지는 바이브레이션이 감당이 안되어, 옆에 계신 의료진께 마취는 언제 하실 거냐고 물어봤다. "지금 마취합니다."라는 대답과 함께, 나는 모든 것을 의료진의 손에 맡기기로 다짐하고 잠에 들었다.



마취의 시간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현실의 소음을 느끼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나의 의식을 깨운 건 남편의 목소리였다. "여보, 물꼬 장군이야!" 뒤이어 인지되는 아기의 울음소리, 데시벨은 작지만 나름의 힘이 있어 '우렁차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나의 귓가에 닿았다. 이것이 나의 아들의 목소리인가? 내 아들이 세상에 나와 내 옆에 있다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옆 자리 카트의 조그마한 투명 바구니 안에 담긴 물꼬가 눈에 들어왔다. 온 몸에 감각은 없고, 머리는 뇌가 잠든 것처럼 멍했지만, 두 눈에는 본능적으로 눈물이 가득 차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소리 없이 나의 뱃속에서 함께 지냈던 아이, 생김새와 목소리가 너무도 궁금했던 아이, 모든 것이 멀쩡한 모습으로 세상 밖으로 무사히 나와 준 나의 아들이 너무 대견하고, 고마웠다. 물꼬는 4.24kg의 우량아였고, 어깨도 넓은 편이라 자연분만이 어차피 어려웠을거라 한다. 초음파로 측정되었던 사이즈보다 훨씬 우람한 모습으로 등장한 물꼬 장군이었다.


아기천사 물꼬야, 너에게 우린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어떻게 살면 이 축복에 보답할 수 있을까? 천사는 물음표를 던져주었다.



감동의 시간도 잠시, 물꼬는 간호사 선생님들과 함께 신생아실로 들어가버렸고 만신창이가 된 내 몸만 남았다. 입원실 침대로 옮겨져 마취가 풀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새벽 두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수술 직전까지 이어졌던 15시간의 진통은, 진통제의 힘을 빌려 나름 참을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취가 풀리며 덮쳐온 뱃속의 통증은, 참을 수가 없는 고통이었다. 이미 긴 시간의 진통에 무통주사의 효과를 소진해버린 나는, 후불로 지급되는 수술의 고통에는 어떠한 진통제도 쓸 수 없었다. 몸 안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도 못할 정도로 너무 강렬하고 복합적인 통증에 한 시도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정신줄을 잡고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지금 떠올리면 그 정도가 얼마였는지 회상도 불가능한 그 때의 통증은, 나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이 몸으로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나는 괜찮아질 수 있을까? 수술 후유증은 없을까? 남편도 나의 절망과 고통을 이어받았는지,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다. 부부는 일심동체,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슬프게도 이 상황에 와 닿았다. 물꼬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고, 너덜해진 나의 심신에 채찍질을 하듯 간호사 선생님이 유축기를 들고 병실로 와 젖을 짜라고 했을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아픈데도 웃통을 까고 젖을 짜야 하다니, 게다가 초유는 먹이는 것이 좋다고 하여 망설일 것없이 열심히 유축을 시작했다.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기 위한 유축에 집착하는 시간동안 다행스럽게도 수술의 고통은 잊혀져 갔다.



자연분만을 예상했던 것보다 입원은 길어졌지만, 수술 후의 입원기간을 채워도 내 발로 걸어나가는게 불가능할 것 같았다. 소변줄을 꽂고 누워만 있다가, 입원 4일차에 안간힘을 쓰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몸 속의 장기들이 밑으로 쏟아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이지 병원에 대한 겁이 너무 많았던 나는, 수술은 커녕 주사 맞는 것도 무서웠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산모들은 선택해서 받는 제왕절개인데 나는 정말 엄청난 죽을 고비를 넘긴 것 같았다. 누가 보면 엄살이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심각하고 진지했다. 유튜브로 제왕절개 후유증과 회복법 등을 검색하며, 한 손에는 폰을 한 손에는 링거 폴대를 잡고 한 걸음 두 걸음 걷기 시작했다. 물꼬가 있는 곳까지 내 발로 걸어가 아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물꼬야 안녕?" 신생아실의 유리창으로 보이는 물꼬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인사를 건네보았다. 물꼬는 눈을 감은 채 작은 입을 쉴새없이 오물거렸다. 이따금씩 인상을 쓰기도 했다. 머리털은 모히칸 스타일로 모아 밤톨 모양을 연출했다. 신생아가 잘생기고 예뻐봐야 얼마나 그렇겠냐만, 내 눈에는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물꼬였다. 실하고 건강한 모습이 눈물이 날 정도로 기특했다. 이목구비가 오목조목 자리잡은 얼굴은 자라면서 엄청나게 잘생겨질것만 같았다. 물꼬를 보며 통증은 급속도로 완화되기 시작했고, 불타오르는 의지와 함께 나의 걷기는 한층 수월해졌다.


입원실의 환자 두 명. 잠깐 방문한 물꼬를 바라보는 남편의 표정은 지금 봐도 상당히 복잡하다..ㅎ



출산 직후 부어오른 나의 다리를 보고, 코끼리 다리로 살아야 하는 거냐며 짜치는 소리를 하던 눈치제로 남편은 아프기까지 해 하루는 병실에 나를 홀로 두고 집에서 자고 오기도 했지만 (남편이 집에 간 이후 친정엄마에게 전화해 눈물을 쏟으니, 출산 직후에 눈물을 흘리면 눈이 평생 시려진다고 뚝 그치라 다그치셨다.) 나머지 기간동안 내 옆 간이침대에서 선잠을 자며, 밑으로 피를 철철 흘리는 나의 오로패드를 열심히 갈아주고, 다리마사지기도 시간 맞춰 끼웠다 뺐다 해주고, 유축을 위한 젖마사지도 열심히 도와주며 나름 수고로운 서포터 역할을 했다. (너무 열심이다가 병이 난 것이라 생각한다..ㅎ)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남편의 고생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에 미안하고, 감사하다.


미우나 고우나 의지할 사람이라곤 남편 뿐인 입원 기간 중 먼저 출산을 했던 친구(선배맘)한테 카톡으로 남편에게 내가 여성성을 잃어가는 것 같다 했더니, 그렇게 생겨난 전우애를 바탕으로 더욱 험난한 공동육아를 해 나가야 한단다. 로맨스는 어디가고 갑자기 전쟁터? 닥쳐올 현실에 순간 서글퍼졌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찌되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니깐!




(슬기로운 조리원 생활은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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