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직후의 산부인과 입원기간이 끝나면, 바통터치로 산후조리원에서 산모와 아기를 맞이하여 케어를 시작한다. 조리원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지만, 나의 경우는 주변의 일반적인 케이스를 따라 퇴원 직후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을 예약했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위치(남편 직장과 집에서 오고 가기 편리한), 신생아실의 접근성과 개방여부(이모님들의 실시간 케어를 볼 수 있는지)와 산후마사지 프로그램이었고, 예산 내에서 모든 조건에 최적으로 부합하는 목동'레피리움'으로정했다.
조리원 입소시의 분위기는 프레쉬했다. 제왕절개 수술 후의컨디션은 입원기간을 지나며 꽤 회복되었고, 무엇보다 내 발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했다. 칙칙한 병실의 분위기를 벗어나, 아늑하고 넓은 조리원 산모방으로 들어가니 기분도 한결 좋아졌다. 남편도 방이 맘에 드는지 침대 옆의 커다란소파에 누워 여유를 즐겼다. 그 소파는 2주간 내가 앉아서 배식된 세 끼 밥과 간식을 먹고, 신생아 육아에 대해 검색하고 공부하며, 2-3시간 간격으로 유축을 하던 공간이기도 했다.
집과 회사를 오가며, 조리원으로도 부지런히 출근하던 남편에게는여러가지 미션을 줬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 이름 짓기와 집에 가자마자 아이를 케어할 환경 만들기. 시부모님과 함께 작명소에 다녀온 남편은 다섯 개의 이름을 받아왔고, 맘에 쏙 들었던 단 하나의 이름인 '시호'가 우리 아들의 이름으로 선택되었다. 아이 이름이 정해지자바로외출하여 주민센터로 가 출생신고도완료했다.
입소 후 첫 주말, 집에서 아이를 재우게 될 침대를 셋팅하고아이의 분유 수유를 도와줄 분유제조기(일명 '브레짜 이모님')의 세척과 조립을 완료한 남편은녹초가 되어 조리원으로 왔다.나 역시 일주일간 매일 유축을 하며 세 시간 이상 통잠을 자본 적이 없었던 터, 모자동실(:아이가 산모실로 와 함께 보내는 시간. 이외는 아이가 신생아실에 맡겨져 이모님들의 케어를 받는다.) 시간 또한 내가 원해서 최대한 많이 받았기 때문에(출산 직후 아이를 검진해주신 의사선생님께서, 조리원에 가면 모자동실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가지라 하셨다..갓 태어난 아이는 본인을 가장 오랜 시간 케어해주는 사람을 엄마로 인식한다고.) 피로를 전신에 뒤집어 쓴 상태였다.
해당 시기는 코로나가 절정이었던 터라, 조리원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산모 간 교류나 네트워크는 없었다. 각방에서 산모들이 개인 플레이를 했고, 따라서 남편들의 역할이 더욱 도드라졌다. 출산 직후 수술의 충격과 망가진 몸으로 인한 좌절,당장 시작될 육아에 대한 막막함,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는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를 홀로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옆에 있는 남편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내가 감정을 컨트롤하며 차분히 생각을 이어갈 컨디션이 아니었기에, 우리에게 허용된 2주의 시간동안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을 다잡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은 별 의지가 없는듯 했다. 조리원에 오면 소파나 침대에 말 없이누워있었고, 때로는 나보다 더 지쳐보였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보다 나와 둘이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도 물론 둘이있는게 편했지만..조금이라도 빨리 셋이 지내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내가 아무리 신생아를 데려와 수유를 하고 애써 교감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도 그다지 개의치 않던 남편이었다. 둘째주부터는 그런 남편이 차라리 없는게 편하겠다 싶어, 그냥 집에서 자고 평일 퇴근 후에는 조리원으로 굳이 오지말라고 했다.(그래도 계속 왔던 남편이다..)
게다가... 출산 후 금욕기를 꼭 지켜야한다 당부했거늘, 남편은 조리원에서 당장의부부관계를 원했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뿌리기만 하고 거둘 생각은 없는건가? 이 사람 애기아빠로서 믿고 의지해도 될까?아니 진짜 애는 나혼자 낳고나 혼자 키우는 건가? 자기 아들이 좋기는 한가????? 아이를 가졌을 때 남편의 반응을 보고 문득 들었던 회의감이 갑자기 엄습해왔다.
언제나 누워있어서 때론 짜증나기도, 때론 안쓰럽기도 했던 남편. 그래도 남편이 없었으면 홀로 외로운 조리원 생활을 못 버텼을 것이다.
신생아는 남편의 도움 없이 나 혼자 케어할 수가 없다. 손이 많이 가고 극도의 조심성을 탑재하여 다뤄야 함은 물론이고, 앞으로(수면 패턴이 잡힐 때까지) 나는 잠을 포기하고 모유수유를 할 것이기에, 나의 불안정한 컨디션과 육아 전반을 보완해 줄 남편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남편에게는 이제부터 아이를 지키고자(?)하는 내가 '을'이 되어 저자세로 나가야한다는 계산이 섰다.
그 이도 아기아빠지만 당시 신생아를 낯설게 대하는 모습과 힘들어하는 나를 옆에 두고 더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그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아기는 내가 열 달을 품고 내 배를 찢어서 나왔으니, 내가 느끼는 모성은 너무도 당연하고 본능적인 것이다. 남편은 아직 아빠가 되었다는 실감을 하지도, 본능적으로 부성이 작동하지도 않을 수 있다. 서서히 아이가 당신의 아들이고, 당신은 아이의 아빠임을 깨우쳐 가게 하자.. 가족을 위해 본인이 힘들어도 귀찮아도 참고, 다시 박차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내는 법을 가르치자..!
조리원은 상당한 비용 지불을 요하지만, 그만큼 얻는 것이 있다. 우선 2주라는 시간동안 나의 몸이 그렇게나 많이 회복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이를 딱 힘들지 않을 만큼만 직접 케어하면서도 관찰과 보고를 통해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었고, 노련한 원장님과 이모님들의 조언과 설명으로 신생아 육아에 대한 상식과 스킬을 배울 수 있었다. 육아와 가사노동 없이 2주의 휴식을 취하며, 매 끼 제공되는 균형잡힌 식사로 영양을 보충할 수 있었다. 또한 회당 30만원에 달하는 산후마사지의 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한 번 받고 나면 1-2kg씩 빠져, 조리원을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몸무게는 정확하게 9kg 차이가 났다. 출산 직후 남편이 놀렸던 코끼리 다리는 일주일만에 원래의사이즈로 돌아왔다.
산모실 문을 열고 나가면, 열 걸음 남짓한 곳에 자리한 신생아실의 통유리로 24시간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리원 생활은 나름 바쁘다. 2-3시간 간격으로 유축을 하며, 젖병에 담아 라벨링한 모유를 (우리 아이 먹여달라고) 신생아실에 갖다주고, 소독기로 가서 세척된 다른 젖병을 다시 가져오고, 마사지 타임이 되면 마사지실에 다녀오고, 유축으로 혹사당한 손을 뜨끈하게 찜질해 줄 파라핀 마사지기 또한 수시로 사용하러 다녀오고, 조리실에 가서 매일의 남편 식사 주문 넣고, 산후 요가 선생님도 스케쥴에 따라 방문하시고, 원장님께 매일의 아기 수유량과 배변량 등을 포함한 기타 컨디션을 브리핑 받고.. 이 모든 스케쥴에 나는 엄청나게 집중하며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며 가는 모든 동선에 꼭 물꼬(아들)를 보러 신생아실에 들렸다. 내가 가면 이모님들께서도 "물꼬 엄마 오셨네요~" 하면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조리원 입소 첫날과 일주일 후의 다리 상태 변화. 참으로 신기방기하다.
조리원 퇴소 전 마지막 날 밤, 남편과 나는 신생아실로 불려가 아기를 목욕시키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매일 심드렁해보였던 남편은 그 때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한 모습이었다. 폰으로는 영상 촬영을 하며 목욕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던 남편은 나름 이모님께 질문도 하면서 아이 목욕은 마치 본인이 도맡을 것 같은 책임감을 보였다. 이 때 나에게도 한 줄기 빛이 내린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줌 빛을 뿌려준 남편은 신생아실 문을 닫고 나오며 급 피곤해진얼굴로 돌아왔고, 다시 말이 없어졌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남편에게 나의 불안과 걱정(분명 호르몬 작용이 컸을 것이라 믿는다)에 맞서는 포부를 밝히고 싶었다. 도무지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남편에게 내가 먼저 각을 잡고 대화를 신청할 여력이 없었다. 테이블에 놓여있던 정체 모를 종이와 펜을 들고 나의 마음이 함축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때의 절박함과 답답함은 이유를 알 수도,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저 남편이 내게 따뜻하고 힘이 되는 말 한마디 건네주며 안심시켜주길 바랬고, 그를 위한 혼자의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아마 내가 조리원에서 써 준 편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진심을 전하기에 때론 말보다 글이 편할 때가 있는데, 받는 사람 또한 그 마음을 느낄 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녹취되지 않지만, 글은 기록된다는 효과가 있다.
예상 외로, 조리원을 퇴소하고 집에 돌아오니 훨씬 좋았다. 역시 내 집이 최고인 것이다. 조리원은 나의 건강 회복 측면과 아이를 전적으로 케어하기까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시간을 번다는 점에서, 딱 낸 돈의 값어치만 했다. 조리원에서 남편과 아이와 분리되어 혼자 쉬는 시간이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거나 행복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외로움을 극대화시킨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둘째를 갖는다면(?) 90% 이상의 확률로 조리원을 다시 갈 것 같다. 순전히 나의 건강 회복을 위해서다. 내가 회복될 때까지 아이를 봐주고, 나와 남편의 식사를 챙겨줄 전문가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만, 다시는 주체 불가능한 감정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을 것이다.
남편은 지금까지도 아이 목욕을 전담하고 있다. 물론 중간에 내가 맡았던 시기도 있었지만, 대부분 남편이 담당해왔다. 목욕을 통해 스킨십과 놀이를 하며, 아빠와 아이의 친밀도가 높아지는 것이 확실히 보인다. 그것이 남편에게 목욕을 맡기는 나의 목적이기도 하며, 또 다른 의도에는 아들이 성 정체성을 아빠와 함께 만들어갔으면 하는 것도 있다. 이제 아들은 "아빠랑 남탕갔다 올게~" 하며, 거실 화장실로 목욕을 하러 들어간다. 안방의 엄마 전용 화장실은 아이에게 '여탕'이다. 허리디스크로 고생한 적도 있는 남편인데, 꾸준히 아이 목욕에 신경을 써주니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 육아를 하다보면 생기는 남편에 대한 시시콜콜한 불만들은 아이 목욕으로 퉁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남편은 조리원에서의 기억을 잊었을까? 나에 비해서는 기억이 약할 수도 있겠다. 나에게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던 시기지만, 남편에게는 육체의 피로만 가득했던 시기였을테니. 그 때와 지금의 남편을 비교하면, 남편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완벽에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육아 과정에서의 갖은 부부갈등과 우여곡절을 거쳐, 남편도 비로소 와이프도 만족시키고 본인 육아관에도 맞는 아빠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 완성형은 아니지만, 내 남편이자 시호아빠의 잠재력을 믿는다. 그리고 만약의 일이지만 두 번째 조리원을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또 다시 처음과 같은 곳으로 선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