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육아 체질이 아닌가봐. 육아휴직 기간동안 너무 힘들었어..."라고 말하면, 일부 엄마들은 "나도 나도! 그 마음 이해해..!"라며 격한 공감을 해주는 반면
"헉 난 육아휴직 때가 천국이었는데..?" 라는 엄마들도 있다.
그렇다. 육아휴직을 겪어 본 워킹맘들은 자신이 두 부류 중 하나에 속함을 알 것이다. 육아가 체질인 엄마와, 그렇지 않은 엄마.
출산 그 이전까지는 다들 어떠한 태도로 살아왔는지 모르지만, 엄마들은 기고 아닌게 확실하다. 내가 자신있는 분야와 젬병인 분야의 구분이 명확하다. 나같은 경우는 아이와 놀아주고 대화하는 건 자신이 있지만, 똥손이라서 아이 음식을 만들어 먹이는 데에는 전혀 소질이 없다.
따라서 아이의 식사 관련해서는 전적으로 친정엄마의도움에 의지하고 있다.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알아야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못하는 것은 나보다 나은 사람의 도움을 빌릴 수가 있다.아이를 키우는 데 투입되는 자원(시간, 돈, 에너지)은 한정적이므로, 모든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해서 최대의 효율을 추구해야 한다는 이치와 맞물려있는 사실이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의 육아휴직 기간은 총 14개월이었다.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12개월을 사용했고 휴직을 출산 1개월 전에 시작했다.
아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귀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내 모든 육체와 정신의 에너지를 다 쏟아내어 보살피며, 건강하고 바르게 키워내고 싶은 대상이었다.
체력이 딸리거나 우울감이 찾아올 때면, 가장 먼저 아이한테 미안하고, 아이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스스로 못하고, 엄마의 안좋은 기운을 그대로 받을 아이를 위해 내가 아프거나 침체되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이 매일 반복되었다.그러나 슬프게도 그러한 결심은 내가 늘 힘들고 우울하다는 반증이었다.
내 멘탈이 약해서가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세심하고 감성적인 면도 있지만, 내 몸과 내 감정이 도무지 내 맘대로 되지를 않았다. 때론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두려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침대를 짚고 일어나면서 바닥을 디딜 때 손목과 발목이 얼마나 아플지가 순간적으로 걱정된다. 걱정을 무시하고 움직이면, 이미 알고있는 고통을 맛본다.
오만하게도 내가 완전 건강 체질이고, 산후조리 또한 중요치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닥친 현실 육아에 정신이 팔려, 몸을 사리지 않고 팔목, 발목, 허리를 사용했다. 당연히 관절 부위들이 지끈지끈 욱신욱신 아파왔지만팔목보호대와 발목보호대, 허리보호대 등으로 임시 조치를 한 후 계속 육체 노동을 이어갔다.
우리 아이에게도 '100일의 기적'이 일어났다. 그 전까지 나는 남편의 수면과 출근에 영향이 가지 않게 하고 싶어,밤에서 새벽을지나 아침이 될 때까지아이 수유와 케어를 홀로 감당했다. 안방의 부부침대 옆에 아기침대가 있었고, 일정 시간이 되면 다 같이 밤잠에 들었다.
잠에 든 지 한 시간이 안 되어 아이는 울기 시작한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아이를 침대에서 꺼내 안고, 안방 문을 닫으며 거실로 나온다. 젖을 먹이거나, (젖이 돌 시간이 아니면) 분유를 타서 먹인 후 바닥에 깔린 요에 아이를 눕히고옆에 앉아 눈을 맞춘 채 한참을 바라보며토닥여준다.
아이는 안정이 되면 그대로 자기도 하지만, 때론 뭐가 불만족스러운지 누워서도 계속 운다. 아이가 계속 울면, 본능적으로 달래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다. 아이를 안고 바운스를 주며, 노래도 불러보고, 속삭여도 보고, 양이 모자랐을지 모르니 분유를 더 타서 먹여보고...
이도 저도 안되면 아이를 안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집안의 모든 사물을 보여주면서 "이건 뭐고, 저건 뭔데, 엄마 아빠가 ~할 때 쓰는거야. 저건 엄마꺼고, 이건 아빠꺼야~" 등의 아무말 대잔치를 시전한다. 이 방법까지 쓰면아이는 멀뚱멀뚱,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눈으로 나를 보며 울음을 그치곤 했다.
아이와 난리 부르스를 한 바탕 추고 나면, 보통 2-4시 사이다. 이미 잠은 달아났다. 미칠 것 같은 피곤은 진짜 미친 것 같은정신력으로 물리쳐버리고, 책을 집어 든다. 아이의 신생아 시절 내가 유심히 보던 책은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라는 제목의 원더윅스(: 아기가 급성장하며 울고, 보채고, 쉽게 잠에 들지 못하는 시기) 증상과 원인, 대응법을 분석한 책이었다.
당시에는 백그라운드가 없었으니 지식과 정보를 최대한 많이 투입해야 그 중 양질의 정보에 대한 변별력이 생기고, 그것이 나의 육아 효율과 퀄리티를 높여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책을 덮으면 폰을 들고, 유튜브또는 육아 블로그를 미친듯이 검색했다.
정보의 바다는 그야말로 망망대해 같아서 헤엄을 칠 수록 더 깊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심지어는 내가 모르고 아이에게 행하는 것 중에 아이에게 해가 되는 게 있을까봐 불안한 마음까지 들었고, 역설적으로 정보 습득과 공부를 할 수록 점점 내가 바보가 되어가는 것같았다.
정보에 대한 집착으로 애를 보는 중에도 핸드폰을 보기에 이르렀고, 내가 너무 따박따박 매뉴얼대로 구니 엄마가 급기야 나에게 "맘충 되고 싶냐"라는 직언을 날리셨다.
당신이 이렇게 와서 도와주시는데, 뭔 걱정이 그리 많고 뭔 공부할 게 그리 많고, 유별나게 까다롭게 구냐고. 아이 키워가면서 셀프로 배우는 거라고. 경험적 지식이 이론적 지식보다 우월할 수 있다고. 유튜브에서 배웠다는 지식으로 엄마 당신을 가르치려 하지 말라고...
엄마의 이 말씀이 터닝포인트가 되었고, 그제야 나의 잠을 빼앗아가는 또 하나의 요인이었던 정보 집착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로는 새벽 수유 때 아이가 잠들면, 나도 잠시나마 잠을 보충했다. 그렇게 100일 가량이 지나니, 나도 통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3-4시간 단위로 늘어났다.
엄마는 육아에 있어 절대적인 조력자이자 전문가였다. 물론 매사에 아기 엄마인 나의 의견을 물으시고 반영해서 행동을 하셨지만, 대부분 엄마의 방법이 아이를 편안하게 해주었고 육아에 도움이 되었다. 이젠 또 엄마에게 의존도가 커지다 보니, 엄마가 계신 낮 시간 동안은 내가 찍소리도 안하고 지내는 일이 많아졌다.
엄마 의견을 따르고, 별 말도 안 하며 지내다 보니,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는 저녁시간만 기다렸다. 남편에게는 내 이야기를 편안하게 할 수 있고, 더 전문가인 내가 나서서 육아를 코치할 수 있으니까... 내가 주도권을 갖는 시간이라 생각해서 더 편하고 좋았던 것 같다.
남편 역시 퇴근하고 쉴 틈 없이 바로 육아에 투입되는 일상에 지친 것 같았다. 나는 남편이 오면 반갑고 설레는 마음에 잠시 살아났다가, 밤이 되면 또 새벽수유에 대한 전투력으로무장해비장하게 쪽잠을 자고, 우는아이와 새벽 내내 실랑이를 벌이다가 거실 소파 또는 바닥에서 혼미한 상태로 아침을 맞는 일상을 반복하며, 점점 성격도 이상해져 갔다.
내가 이렇게 미친듯이 홀로 고생하는데, 남편 배려한다고 힘든 티도 안 내고 같이 하자고도 안 하니, 진짜 새벽수유가 개껌인줄 아나? 인간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안 드나???
가끔은 새벽에 아이를 안고 자고있는 남편의 방으로 들어가 소리지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 나 혼자 개고생을하고 있냐고!!! 애가 이렇게 우는데 편히 잠이 오냐고!!!?"
남편은 도와달라 했으면 바로도와줬을사람이다. 그러나 티를 안내면 또 절대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남편에게 가끔씩 폭발한 나의 모습은 성격파탄자 같았을 것이다.
남편도 어이없고 억울한 순간을 많이 참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 또한 우리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급발진의 위험이 느껴지는 순간들에 가까스로 셀프 컨트롤을 해야 했다.
우리는 살얼음판 같은 순간들을 겪으면서도, 신혼 버프로 갖은 애정표현과 티키타카를 주고 받으며 나름 러블리하고 웃긴 나날들을 보냈다. 너무나도 큰 존재감을 가진 귀염둥이 아들과 함께, 우리 부부 또한 각자의 속도로 성장해갔다.
내 생각에 나는 육아가 체질인 사람은 아니다. 여지없이 노력형이지만, 사실 육아휴직 기간동안 나의 정체성이 뭉게진 채 살아가는 느낌에 굉장히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엄마와 시댁가족들, 동생(아들의 이모), 그리고 나를 격려해주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다시금 확인시켜준 너무 고마운 내 대학 친구들..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급격한 환경 변화에 매몰되어 중심을 잃고 방황했을 것이다.사람이 가진 자산 중 가장 가치있는 것은 역시 사람이라는 걸, 내게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동안 절감했다.
그래도 내 사람 중에 최고는 남편이었다. 남편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귀엽고 웃긴 사람이다. 남편의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기를 보면 너무 사랑스러워 웃음이 나듯이, 남편의 얼굴을 보면 웃음 버튼이 눌린다. (그 역시 나를 볼 때마다 환한 웃음을 보여주기 때문일까?ㅎㅎ)
가끔 남편 때문에 속이 터지기도, 울화가 치밀기도 했지만 결국 나의 마음에 뚫린 구멍을 메워주는 사람은 항상 남편이었다. 남편은 한결같았고, 늘 나를 사랑해줬고 표현해줬다. 그는 나를 나 자체로 보았다. 아이엄마보다는 자신이 사랑한 와이프의 모습 그대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나에게 딱히 바라는 게 없다.
얼마 전, 출근준비로 아이와 실랑이를 하던 중 남편에게도 불똥이 튀어 남편과 다투고 출근했다. 기분이 너무 안좋아 같이 점심을 먹던 직장 선배에게 남편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더니, 같은 워킹맘이자 남편 분과도 항상 깨를 볶으시는 그 분이 또 나의 아집에 절여진 뇌를 깨우는 말을 하신다.
"아이는 다 키우면 내 품 떠나지만, 남편이랑은 평생 갈거잖아? 육아보다 중요한게 부부간의 애정이야. 그게 안되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데~!"
맞다. 우리 남편은 육아 관련해서는 나를 짜증나게 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마음과 표현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갑자기 남편이 보고싶어진다. 퇴근 후에 보게 될 장난기 가득한 남편의 얼굴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일을 하는데, 남편의 전화로 폰이 울린다. "여보~" 하는 목소리를 빨리 듣고 싶다.
이 맛에 회사를 다닌다.
워킹맘의 고달픈 면도 있지만, 분명 순기능도 있다. 가족과 떨어져 서로의 소중함을 생각해 볼 시간이 주어짐으로써 더욱 열심히 살게 되는 것이다. 그 시간에는 집에서 났던 화를 한 김 식히는 효과도 있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는 효과도 포함되어 있다. 타인의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는 것들이 우리 가정을 평화롭게 꾸려가는 데 엄청난 영감을 주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