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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Dec 15. 2023

석호필의 속삭임이 그리운, <프리즌 브레이크>

* 방영 기간: 2005년 8월(시즌1) ~ 2017년 5월(시즌 5)

- 이 글은 스토리가 가장 탄탄했던 '시즌1' (총 22회, 회차당 40여 분) 중심으로 썼음

* 방영 채널: Fox TV(미국)

(국내에선 2007년~2008년 SBS에서 시즌1&2 방영했으나, 시대에 맞지 않은 더빙으로 인해 원작의 빛이 가려졌음)

* 장르: 범죄, 스릴러

* 주 시청 경로: 새벽녘, 컴퓨터 다운로드 파일로


지난 편에 언급했던 <하얀거탑>과 함께, 내 수험생활을 위로해 준 또 한 편의 드라마가 바로 <프리즌 브레이크> 시리즈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본디 Fox TV 드라마, <24>의 연기된 후속 시즌을 땜방하기 위해 짧게 편성된 작품이었으나, 기대 이상의 열광적 호응에 힘입어 시즌 5까지 제작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24>보다 <프리즌 브레이크>가 더 재미있었다. 시즌 2까지는.)



<프리즌 브레이크>는 제목 그대로 '감옥 탈출기'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마이크 스코필드(웬트워스 밀러)라는 천재적 주인공이 /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수감된 형을 구하기 위해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고 형이 있는 감옥으로 들어가 / 치밀한 계획을 통해 형과 함께 감옥을 탈출하는 이야기다. 스코필드는 '폭스 리버'라는 악명 높은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 복잡한 감옥 구조도를 등에 문신처럼 새긴 채 감옥으로 들어가고, 그의 화려한 문신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드라마 곳곳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위) 저 눈빛에 공기 반 소리 반으로 대사를 읊으니, 어찌 아니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었을까 (아래) 등 문신이 이토록 지적으로 보이다니

본방 한 지 한참 지난 미국드라마인지라, 나는 컴퓨터에 다운로드한 파일로 시즌1과 2를 보게 되었는데, 이러한 시청 경로는 내 수험생활에 숨통을 틔워 준 반면, 최적의 컨디션 유지에 치명적 장애물로써 작용했다. (아침이면 몰려드는 피곤과 함께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한 편만 보고 영상을 끊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는 것이다. 드라마 시청을 중단하는 '절제력'을 유지하는 것이 수험생활을 버텨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던 것 같다.

수험생이라는 신분으로, 가족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호젓이 드라마를 보고 싶었던 나는, 가족들이 모두 다 잠든 새벽녘 내 방 컴퓨터로 비밀 작전을 수행하듯 <프리즌 브레이크>를 시청했고, 이렇듯 드라마 시청에 최적화된 환경은, 드라마에 대한 집중력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그 집중력 공부에 쏟아부었으면 훨씬 더 좋은 점수로 합격할 수 있었을 것을.ㅡㅡ) 새벽에 끓이는 컵라면이 먹고 싶어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도, 혹여나 가족들이 깰까 봐 허기와 씨름하면서도 나는 굳세게 드라마 시청을 이어갔다.

(위) 매 에피소드 도입부인 감옥 전경 (아래) 스코필드의 방에서 내다 보이는 시카고의 야경

이 시리즈는 대다수의 미드들이 그러하듯, 새 에피소드에 들어가기 전 'Previously on Prison Break~'라는 멘트와 함께 지난 편을 요약정리하는 도입부로 시작하는데, '프리비어스~'라는 발음에 이어지는 '버드아이 뷰'의 감옥 전경이 등장하면 가슴이 마구 설레었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1은, 이제껏 내가 봐 온 미드 중 가장 흡인력이 강했다.

주인공 마이크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 발음상 유사하게 따온 것)를 연기한 웬트워스 밀러의 속삭이는 듯한 독특한 대사전달 방식과, 프린스턴 대학 영문학 전공이라는 그의 학문적 배경이, 지적인 스코필드 역과 어우러져 캐릭터에 사실감을 더해주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주인공 석호필의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공기 반 소리 반이 섞여 그의 발성기관을 통해 전해지는 대사는 은밀하고 섹시하며 매혹적이었고, 새벽의 은은한 공기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심지어, 한동안 그의 대사를 듣지 못하면 귀가 간질간질해지며, '이때쯤 한 번 들어줘야 하는데...' 하는 가벼운 금단현상까지 일으켰다.

게다가, 까까머리 마저 멋있어 보이게 하는 그의 외모는, 극 중 그의 담당 (여) 의사가 주인공 일당이 감옥을 순조롭게 탈출하도록 돕게 만드는 상황에 절대적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 <프리즌 브레이크>는 내게 시카고에 대한 환상을 심어 준 드라마이기도 하다.

형을 감옥에서 빼내기 위해 고심하는 석호필이 내다보던 시카고의 야경은, 익히 들어 본 명성만큼이나 밤의 매력으로 가득해 보였다. 화면 속 어둠이 내린 시카고는 어쩐지 재즈를 연상케 하는, 자유분방하고도 지적인 사유를 하기에 특화되어 있는 도시 같았다.



또한, <프리즌 브레이크>는 내 어린 시절을 환기하게  만든 시리즈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석호필을 보며 나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나의 영웅과도 같았던 '맥가이버' 떠올렸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동사니들을 이용해 문제적 상황들을 척척 해결해 나가던 맥가이버처럼, 쓸 수 있는 도구가 제한적인 감옥에서, '종이학(오리가미, Origami)' 하나에도 기가 막힌 지적 능력을 활용해 탈출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천재성과 행동력에 감탄하며 박수와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90년대에 <쇼생크 탈출>이 있었다면, 21세기에는 진일보한 탈출기를 보여준 <프리즌 브레이크>가 있었다.

<쇼생크 탈출>의 탈출 도구는 숟가락이었다. 부지런하게 파고 또 파는 우직한 노동력으로 정직하게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준 게 <쇼생크 탈출>이었다면,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들은 머리를 굴려 최소한의 노동력을 사용하며,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장면들을 선사한다.



수수께끼 같은 작은 나사 하나에서 시작되는 대탈출기는, 미로 같은 문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집단 지성(?)이 합쳐져 거대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사공이 늘어나는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그렇기에 이야기가 더 박진감 넘치게 흘러간다. 흡사 <주유소 습격사건>의 마지막 신을 보는 것처럼, 생각지도 못하게 온갖 사람들이 탈출에 합류하게 되며, 우디 앨런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처럼 잊을만하면 뜻밖의 인물 - 개인적으로 '티백'이라는 캐릭터가 무척 인상 깊었다 - 과 사건이 끼어드는 이야기는, 곧잘 시청자들의 예상을 보란 듯이 비켜간다. 종종 핸드헬드 방식으로 실감 나게 촬영된 영상은, 이곳이 실재하는 감옥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감옥에서 탈출하며 끝나는 시즌1에 이어지는 시즌2는, 감옥을 벗어난 넓은 세상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신을 통해 시청자들의 오감을 쥐락펴락한다.

혹여 <프리즌 브레이크>를 보고자 한다면, 시즌2까지 볼 것을 추천한다. 시리즈를 시청하기 전, 에피소드를 과감히 중단할 수 있는 '절제의 미덕'을 단단히 준비하고 입장하실 것도.

최근 시즌6 제작이 언급되고 있다고 하는데, 주인공 역을 맡은 웬트워스 밀러가, 동성애자인 자신의 성향에 반하는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하니, 앞으로 <프리즌 브레이크>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보기는 힘들 것 같다.

DVD를 구매할 만큼 재미있게 봤던 시즌1&2

- TMI -

2000년대 후반 '석호필'이라고 친근하게 불리며 한국에서 인기를 구가하던 웬트워스 밀러는, 한동안 국내 B사의 의류 모델로도 활동했다. 그가 방한했을 당시, 공중파에 나온 그의 모습을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던 추억이 있다. 그는 <프리즌 브레이크> 촬영을 위해 머리를 깎은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짧은 머리를 유지하는데, 그의 머리가 심한 곱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놀랍게도 그에게는 아프리카계 혈통이 섞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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